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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통신-최고의 유산 ①] 로봇박사 데니스 홍 가족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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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농장을 남겨줄 수 있는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두 글자가 있어 너희에게 주노니 이를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총 3권으로 돼 있는 하피첩을 지난달 13일 국립민속박물관이 공개했습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부인 홍씨가 보낸 치마를 잘라 서첩 ‘하피첩’을 만들고 거기에 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가치를 담았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유산(遺産)이라고 하면 집이나 땅, 건물, 돈 같은 걸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최고의 유산은 생활습관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1762~1836년)이 두 아들에게 경작할 땅 대신에 ‘근검’이라는 두 글자를 남겨준 것처럼 말입니다. 아래 한문은 그 내용을 담은 ‘하피첩’의 일부입니다. 새 인터뷰 시리즈 ‘최고의 유산’을 시작합니다. 돈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로봇박사 데니스 홍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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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서울대에서 특강을 마친 데니스 홍(오른쪽)이 아버지 홍용식씨, 어머니 민병희씨와 교정을 거닐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이원제]


새 TV 분해하고, 집안 난장판 만들어도 … 데니스 혼낸 적 없어요

호기심 키워준 데니스 홍 부모

아이가 말썽부리는게 아니라 과학탐구라 생각
겁먹은 데니스에게 차근차근 원리 설명해줬죠
‘안 돼’라고 말하려면 ‘왜냐하면’ 이해 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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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 아래 사진은 지난달 17일 한국공학한림원 창립 20주년 행사에서 ‘Bridge to the Future’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데니스 홍. [사진 데니스 홍]

지난달 17일 오후 3시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 한국공학한림원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데니스 홍(44·한국명 홍원서)이 ‘Bridge to the Future’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었다. 데니스 홍은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미국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이자, 로봇연구소 로멜라(RoMeLa) 소장이다.

그는 자신이 세계 재난구조 로봇 대회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온갖 고난을 뚫고 결선에 출전했지만 결국 로봇이 넘어져 부서지면서 수상권에서 탈락했던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했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않는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모든 로봇은 넘어지고 부서집니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거죠.” ‘You can’t always win, but you can always learn’은 탈락 후 눈물 흘리던 자신의 로봇 개발팀 동료와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그의 메시지였다.

수백 명의 청중 가운데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가 있었다. 데니스 홍의 아버지 홍용식(83)씨와 어머니 민병희(78)씨였다. 인하대 명예교수인 그들은 이날 아들의 강의를 처음 지켜봤다. 두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개구쟁이 데니스가 이렇게 성장했다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인하대 홈커밍데이를 맞아 한국에 다니러 온 길이었다.

강의를 마친 후 데니스 홍과 그의 부모를 따로 만났다. 부모는 아들 데니스 홍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개구쟁이 막내아들의 인생에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 됐던 가르침이 그 속에 있었다. 이제 데니스 홍 자신도 일곱 살 이산(Ethan)의 아버지가 됐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아들을 거쳐 손자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라

“와장창.” 거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 놀라 뛰어 나간 어머니 민병희씨의 눈에 산산조각이 난 거실 유리탁자가 보였다. 도둑이 든 것도 아니고,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깨진 유리 옆에는 막내아들이 토끼 같은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이제 글자를 더듬더듬 읽는 네 살 데니스 홍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과학실험을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그림책에서 본 지렛대의 원리를 실험해보려고 거실탁자에서 유리를 빼내 그 위에 올라갔다는 거였다. 민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를 안았다.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데니스 홍은 말썽꾸러기였다. 세 살 때는 마법의 약을 만들겠다며 부엌을 인스턴트커피, 설탕, 밀가루, 꿀로 난장판을 만들었다. 유치원생 때는 땅끝을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자정 넘어까지 흙을 판 적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로켓 실험을 하고 남은 폭약을 태워 큰불을 낼 뻔도 했다. 하지만 부모는 한 번도 그를 혼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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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방학숙제로 작성한 ‘비행기의 기본 원리’. 글라이더에 빠져 색다른 비행체를 설계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다. [사진 데니스 홍]

-그렇게 심한 말썽에도 혼을 낸 적이 없었나.

“난 아이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과학적 원리를 탐구하는 거로 생각했다. 데니스가 유치원에 다닐 때 아이 아버지는 톱, 망치, 드라이버, 펜치, 칼 같은 공구들이 있는 공작대를 직접 만들어 줬다. 과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뜻이었다. 그 공작대는 유년시절 세 아이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데니스는 틈만 나면 공작대에 앉아 이것저것 만들고 분해했다. 집안에 있던 모든 전자제품을 뜯어봤을 거다. 라디오, 믹서기, 청소기, 세탁기 등을 다 분해했다. 심지어는 산 지 이틀밖에 안 된, 당시엔 굉장히 고가였던 컬러TV를 해체해 고장 내기도 했다.”(어머니 민씨)

-그런데도 혼내거나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나.

“사실 컬러TV가 고장 났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먼저 데니스에게 ‘TV를 건드렸느냐’고 물어봤다. 겁먹은 얼굴로 자신이 그랬다고 고백하더라. ‘총천연색이 어떻게 나오는지 너무 궁금해 뜯어봤다’고 말이다. 나는 혼내는 대신 ‘원리를 파악했느냐’고 물었다. ‘아직도 모르겠다’는 데니스를 앉혀놓고 컬러TV의 작동원리를 차근차근 알려줬다.”(아버지 홍씨)

홍씨는 “나 자신이 과학자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 보잉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일하기 위해 1974년 귀국했다. 데니스가 세 살 때였다. 80년부터는 인하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일했고,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을 지냈다. 그는 세 자녀의 과학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데니스가 초등학생이 됐을 때는 유리 비커, 시험관, 플라스크 등을 선물했고, 마술에 관심 있는 아이를 위해 외국 출장 땐 마술 재료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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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에서 가족들과 함께 로켓 발사 실험을 하는 모습. [사진 데니스 홍]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질산나트륨과 숯, 황을 섞어 만든 화약이 터지면서 옥상 콘크리트가 녹아버릴 만큼의 엄청난 불기둥이 솟아오른 적도 있었다. 한강 둔치에서 밤늦게까지 무선조종 비행기를 날리다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데니스는 경찰서 취조실로 끌려가 ‘누구한테 사주받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과학 실험은 그렇다 치고, 다른 문제로도 꾸중한 적이 없나.

“내 로션에 달린 펌프를 사용하고 싶던 데니스가 나 몰래 화장품 버리다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데니스에게 로션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원자재와 그걸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설명하며 엄마가 로션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고 혼을 냈다. 혼을 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 돼. 하지 마’에서 끝낸 적은 없다. 항상 ‘왜냐하면’을 말해줬다. 아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이해하지 못하면 부모가 아무리 귀가 닳도록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자녀는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하고 이해시켜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어머니 민씨)
 
-데니스 홍이 로봇과학자가 되는 데는 어린 시절의 그런 경험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전자제품을 분해하며 기계를 이해했고,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게 아닐까. 어렸을 때 호기심 어린 행동을 제재하거나 문제를 일으켰을 때 크게 혼냈다면 오늘의 데니스 홍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까지도 즐기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로봇 하나를 개발하려면 몇천 번의 실패와 실수를 거듭해야 하니 말이다.”(아버지 홍씨)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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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은 “창의력을 키우려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필요하다”며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고 했다. 올해 갔던 터키 카파도키아 가족 여행의 한 장면.

 

대통령 미팅보다 중요한 아들과 약속

믿음 주는 아빠 데니스 홍

아무리 바빠도 부모 자식 간 신뢰가 먼저
아들 영상전화 받으려 인터뷰 중에도 양해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절대 엇나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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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사진촬영을 위해 데니스 홍을 두 번째 만났다. 평소 익살스러운 장난을 즐기는 그는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김경록 기자 [촬영 협조 파크하얏트]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만약에 인터뷰 중에 아들한테서 영상전화가 걸려오면 전화를 받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데니스 홍이 인터뷰 전에 구한 양해였다. 그는 아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데 영상통화 연결도 그중 하나다. 대통령이나 삼성이나 구글의 CEO와 미팅을 하고 있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아들에게 ‘사랑한다’(I Love You)고 말하고, 집에 있을 땐 매일 5시간씩 아이와 놀아준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논다. 본인이 진짜 신나서 아이와 즐긴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이와 약속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상전화를 받는 것도 그렇다. 100번 전화를 받다가 한 번만 전화를 놓쳐도 부자간의 믿음이 사라질 수 있다. 동영상 버튼을 누르면 아빠와 연결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내가 한국에 있든, 학교에 있든, 지구 반대편에 있든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쁜 부모들은 자녀와의 사소한 약속을 잊거나 미뤄두기 쉽다.

“며칠 전에는 행사 때문에 한국에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바로 미국에 가서 아들과 놀았다. 그 다음 날 다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그냥 한국에 있으면 편할 걸 왜 그렇게 무리하게 이동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아들과 보드게임을 하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두 나라를 오가느라 정신없긴 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일종의 투자다. 지금은 ‘아빠가 최고’라고 생각해도 나이가 들고 사춘기를 겪을 거 아닌가. 유년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아이들은 절대로 엇나가지 않는다고 믿는다. 혹여 나쁜 길에 빠진다고 해도 금방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부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의 아버지 홍용식씨도 그랬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주말에는 꼭 자녀와 함께 글라이더나 호버크라프트(공기부양선)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던 70년대에 아버지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드문 일이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일하는 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다. 홍용식씨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니스 홍은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같은 입장이 돼보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며 “새삼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홍씨와 민씨는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머니 민병희 교수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사랑한다’ ‘응원한다’ ‘자랑스럽다’는 손편지를 수시로 써서 세 아이의 점심 도시락에 넣어줬다. 단 한 번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내용을 쓴 적은 없었다. 현재 형 홍준서(49)씨는 미국 국방연구원으로 누나 홍수진(46)씨는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암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학교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나.

“공부를 가르쳐주기는커녕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신 적도 없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과목 간 편차가 심했다. 성적표를 보면 ‘수’와 ‘가’뿐이다. 좋아하던 과학과 미술은 ‘수’였지만 왜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사회·지리·도덕 등의 과목은 ‘가’였다.”

-과학 공부는 열심히 했나 보다.

“부모님은 공부를 직접 가르쳐주신 적은 없지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닫게 도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글라이더의 삼각날개를 만드는데 날개 안의 지지대의 길이를 알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수학 시간에 배운 비례를 이용하면 된다’고 하시더라. 또 큰 나무 옆을 지나갈 때 삼각함수를 이용하면 나무 그림자의 길이만으로 나무의 높이를 계산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이상한 암호 같은 기호가 실생활에 널리 이용된다는 걸 안 뒤로 그 어떤 과목보다 열심히 수학 공부를 했다. 교수가 된 지금도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이론과 수식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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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형 누나와 함께 무인조종 비행기를 만들고 있는 모습. 오른쪽이 데니스 홍. [사진 데니스 홍]


-본인의 아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나.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실컷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야 창의력이 생긴다고 믿는다. 공부를 가르치는 대신에 다양한 실험을 함께한다. 이제 일곱 살 된 아들은 어렸을 때의 나처럼 세상의 모든 걸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산다. 답을 알려주는 대신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돕는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어떤 실험을 하나.

“별의별 실험을 다 한다. 아들이 ‘낮과 밤은 왜 있는 거야’라고 물으면 야구공과 전구를 찾아 지구와 태양을 만든다.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지구의 자전’에 대해 알려준다. 또 ‘냉장고 불은 언제 꺼져’라고 물으면 ‘우리 함께 알아볼까’라고 말하며 휴대전화의 동영상 버튼을 켠 채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스스로 원리를 깨달을 수 있게 돕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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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이 아들 이산에게 전하는 메시지. 인생을 살면서 기억해야 할 네 가지 원칙을 담았다. 한국어가 서투른 아들을 위해 영어로 썼지만, 한국 독자를 위해 다시 한글로 적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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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갈림길에서는 정도를 선택해라

항상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데니스 홍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2년 전이었다. 버지니아공대에서 UCLA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버지니아공대에서 11년을 근무한 그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UCLA 쪽에서 좋은 제안을 해왔고,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회사를 이직하는 것처럼 학교를 옮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주변 교수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하나같이 “개발한 로봇을 가져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데니스 홍이 그곳에서 개발한 로봇들은 버지니아공대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미리 챙겨 놓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윤리적으로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부모님이 어렸을 때 귀에 못이 박이도록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반드시 정도(正道)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 얘기처럼 정도를 따르는 게 옳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른길을 선택한 대가로 버지니아공대에서 쌓아올렸던 많은 것을 잃었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

“그때 정말 괴로웠다. 로봇, 학생, 기자재, 연구비 등 11년간 쌓아온 커리어가 사라진 것보다 나를 더 힘들 게 한 건 42년간 나를 지탱하고 있던 가치관이 흔들린 거다. 내가 옳다고 믿은 게 잘못된 길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캘리포니아 태양이 없었으면 우울증 걸렸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나.

“얼마 후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털어놨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 말이다. 원망 아닌 원망이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며 ‘어려운 결정 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하셨다. 지금 당장은 후회할지 몰라도 언젠가 먼 훗날에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거라는 얘기였다. 2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덕분에 UCLA에서의 연구가 순항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떳떳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본인이 아들에게 당부하는 가치관이 있다면.

“항상 네 가지를 강조한다. 친절해라(Be Kind), 현명해라(Be Smart), 용감해라(Be Brave), 건강해라(Be Strong)다. 어렸을 때 바른 가치관을 길러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산이는 길거리에 꼬마가 울고 있으면 다가가서 ‘괜찮아’라고 말하며 등을 쓰다듬어 준다. 청소부 아저씨부터 선생님까지 모든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한다. 얼마 전에 열린 태권도 대회에서 1등을 한 후 시무룩해져 있는 2, 3등 애들한테는 이렇게 말하더라. ‘애들아, 봐봐. 트로피의 높이는 모두 똑같아. 우리는 모두 똑같이 잘했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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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77년 반포초 입학
83년 방배중 입학
86년 서울고 입학
89년 고려대 기계공학과 입학
91~94년 고려대 2학년 마치고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 기계공학과 유학
1994~2002년 미국 퍼듀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석·박사
2003~2013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로봇매커니즘연구소 로멜라(RoMeLa) 소장
2007년 미국 NSF 젊은 과학자상
2009년 미국 자동차공학회 교육상
2009년 제8회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 선정
2014년~현재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 로봇매커니즘연구소 로멜라(RoMeLa) 소장
인생의 롤 모델: 아버지 홍용식 인하대 명예교수
내 인생을 바꾼 영화: 스타워즈(일곱 살 때 스타워즈4를 보고 ‘로봇공학자’를 꿈꾸게 됨)
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스타워즈(올해 12월에 개봉하는 스타워즈7을 같이 볼 예정)
좌우명: 에너지는 몸이 아닌 가슴에서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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