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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칼럼D] 노벨상, 이렇게 하면 받는다

올해 일본과 중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자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뭐하냐”라는 탄식과 함께 언론들은 기사와 사설을 통해 각종 비판과 주문을 쏟아냈다. 정부는 지난 10월 22일 열린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노벨상 받을만한 과학자를 천명 정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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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 요구를 요약하면 간단하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자, 실용화 너무 보채지 말고 기초과학에 투자하자, 조기성과를 요구하지 말고 장기간 지원하자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던 얘기라 정부도 더 이상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좀 더 근본적으로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깨진 그릇에 아무리 물을 부어봐야 다시 새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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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과학은 「논리와 실험으로 이루어진 긴 여정(旅程)」이고 노벨상은 그러한 ‘역사’의 축적으로 생기는 산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오랜 기간 다른 과학자들이 쌓아놓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내고, 가설을 만들고,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상당수 노벨상 업적은 당대 과학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좋은 가설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시대의 가장 궁금한 수수께끼가 뭔지를 파악하여 가설을 세우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교육환경과 문화가 중요하고, 실험을 실제 수행하는 데는 시설과 인프라 즉 돈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뛰어난 개인을 찾아 집중 지원하겠다는 현재의 지원책들은 우선 순위를 잘못 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실험 인프라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골프나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끊임없이 세계적 명성을 날리는 한국인들이 나오지만, 왜 피겨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의 후계자를 찾기 어려운지를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전자는 대학이나 연습장 등 교육을 포함한 각종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만 연아의 후계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빙상장 조차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놀라겠지만 우리나라의 기초과학계가 이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생리·의학 분야에서는 동물실험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최고 대학들조차 제대로 된 동물실험실이 없다. 정부에서 이런 시설을 지으라고 주는 지원금도 거의 없지만, 있더라도 운영할 예산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어디선가 설립 비용을 마련하더라도 대학에서는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런 실험과 관계없는 다른 대학들이나 교수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첨단 연구에 필요한 고가의 영상장비나 분석기기도 비슷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중앙시설에서 공급해줘야 할 공기, 가스, 물 등도 교수 개인이 마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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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요즘 정부로부터 받는 연구비의 20%정도를 ‘간접비’로 징수한다. 선진국에서는 간접비의 대부분을 연구 인프라에 투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대학 재정에 도움이 되는 짭잘한 ‘수입’으로 간주하고 다른 분야에 쓴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 및 운영 인프라 지원에 대한 투자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개인에 대한 집중 지원은 그 효과를 볼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은 과학계에서도 ‘스타’를 좋아한다. 스타는 대부분 유명 국제학술지에 결과를 발표하면서 등장한다. 이런 학술지에 성과가 실릴 정도면 뭔가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점은 그게 무슨 내용인지,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용 가능성은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방향성이 없이 우수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개인에게 지원하는 일이 20여년 간 계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과학기술계는 큰 줄거리는 없고 이런 저런 일을 하는 잡화점만 즐비한 형국이 되어 비용대비 생산성이 매우 낮고 제대로 된 성과도 못 내고 있다.

개인을 띄우면 좋은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황우석 한 사람이 무너지자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지원 자체가 사라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스타 의존성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와 과학계조차 어느 분야가 더 중요하고, 또 어떤 분야는 좀 나중에 투자할지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우니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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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지금은 없다"고 폭로한 가운데 황우석 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서울대 수의대 연구실로 출근하고 있다.

자꾸 이웃나라들과 비교하며 감정적 접근을 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과 언론의 열화에 못 이겨 세우는 대책들은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기인 과학을 100미터 달리기로 보고 접근하도록 만든다. 단기성과를 기대하며 사회의 아우성을 일단 넘기려고 나오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일본을 자꾸 비교하지만 이 나라는 우리나라가 쇄국에서 겨우, 그것도 일본의 강압으로 마지못해 벗어날 때인 1880년대부터 이미 서양과학자들과 어깨를 겨룰만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의 대스승 격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는 동양인이 아니었다면, 1901년 독일의 에밀 본 베링과 함께 노벨상을 받았을 정도이다. “중국도 노벨상을 받는다”고 자조하지만 이들은 자체 실력으로 창어 3호를 만들어 달로 보냈고, 항공모함과 스텔쓰 비행기도 국내 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이웃나라와 비교하고 싶다면 그들의 전략과 문화를 배워야할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20년, 중국은 개방화가 공고해진 1990년대 후 20여년이 지나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국이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처를 만들어 집중 지원을 시작한지 50년이 되었지만 일부 산업 분야에서 상용화 기술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핵심 역량이 쌓인 과학 분야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R&D 예산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무엇이 문제일까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통렬한 반성이 없으면 과학의 기반은 쌓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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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를 탓하기 전에 먼저 노벨상 분야인 물리, 화학, 생물학, 의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거의 100%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연구에서 그들은 과학계와 사회가 필요한 과제를 하고 있는가, 국내 이공계의 최고급 인재를 데려가는 의대는 도대체 어떤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는가, 교수들은 권위적 위치에서 젊은이들의 창의적 시도를 묵살하고 있지 않은가, 뛰어난 인재들을 교수로 뽑고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그들의 소중한 첫 5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등이다. 게다가 연구자들 간의 반목과 갈등, 과제 선정 때마다 불거지는 투서와 음해들은 결과적으로는 과학계를 저자거리처럼 소란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자 스스로가 과학적인 문화를 만들어야할 때다.

노벨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가 ‘기초과학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초과학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는 논의가 별로 없다. 노벨상 상당수는 실용적 가능성이 매우 높은 기초과학의 성과이다. 많은 분야에서 기초와 응용의 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초과학 분야 중 어디에 우선 투자해야 할지에 이르면 과학계는 자멸할 정도로 분열하여 싸운다. 과학계의 이전투구에 난감해진 정부는 결국 적은 돈을 여러 분야에 분산투자하여 정치적 갈등을 피한다.

기초과학의 성과로 나오는 지식에도 등급이 있다. 세계가 주목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 그저 지식의 점진적 증가에 해당하는 데이터, 논문에 수록될 기록의 의미 정도를 가지는 성과 등이다. 우리 기초과학자들은 어떤 수준의 결과를 내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성과를 묻지 말고 꾸준히 장기간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9년짜리 사업들이 상당수 있다. 그런데 자리를 자주 바꾸고 윗사람에게 실적을 보여야하는 공무원들은 연구자들의 능력과 진정성을 의심하며 실적을 재촉한다. 뚝심을 갖고 장기 연구를 밀어줄 만한 용기를 가진 공무원은 사라지고, 연구자는 해마다 보여줄 계량적 성과와 언론기사 거리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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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즉 관(官)의 역할에 대해 공무원 스스로가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도 있다. 과거에는 ‘관’이 개혁과 변화를 주도했는데 이제는 그들도 이해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R&D 예산규모가 커지면서 관은 사업의 기획과 선정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이는 달콤한 ‘권력’이 되었고, 부처 간에는 양보할 수 없는 이권으로 변질되어 상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예전처럼 분야가 적고 과학에 대한 상식적 이해가 가능했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전문가조차도 동일 분야에서 다른 과제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세분화되었다. 과학계의 사분오열과 과도한 개인 이기주의를 감안할 때 관의 역할은 확실히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형태는 아니다. 이제 관 스스로가 복잡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나올 때마다 똑같은 비판과 요구가 나온 지 벌써 십수년은 된 것 같다. 이제는 정부와 과학계, 과학자 개인 모두가 차분히 자신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토록 노벨상을 타고 싶다면 사회적 대토론과 대합의가 필요한 사항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및 출연연구소 개혁, 정부 역할 재고, 연구사업의 기획 및 선정 과정의 선진화이다. 급한대로 ‘땜질’ 처방을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질그릇을 아예 새로 구워내는 총체적 개혁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할 주체가 있어야 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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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