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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인들 선거로 공산당 심판… 통일은 민주절차 따라야”

“통일은 갑자기 시작된다. 짧게 찾아오는 기회의 틈을 놓치지 말라.”



요하네스 게르스터(74·사진) 전 독일 기독민주당(CDU·약칭 기민당) 최고위원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우리에게 던진 조언이다. 게르스터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90년 10월 독일 통일에 이르는 격변기에 서독의 집권당인 기민·기사당(CSU) 연합 대변인으로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와 함께 통일을 위한 제반 작업을 주도했다. 그는 한국정당학회(회장 임성학)와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한국사무소(소장 노르베르트 에슈보른)가 지난달 30일 공동 주최한 동독 최초 자유선거 25주년 기념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했다. 29일 게르스터 전 최고위원을 만나 통독 과정에서 정치권의 역할을 들어봤다. 생생한 그의 경험은 한국 정치권에 교훈이 될 만했다.



독일 통일 경험에서 배우는 정치권 역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불과 11개월 만에 정치적 통일이 완수됐다.“장벽이 무너진 89년 11월 9일 저녁에만 1만 명의 동베를린 주민이 서베를린으로 넘어왔다. 우리들은 ‘당장 동독의 생활 수준을 서독처럼 만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동독이 텅 비고 서독도 대혼란에 빠질 것’이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조급함이 원동력이 됐다. 처음엔 ‘1연방 2체제’의 국가연합이 주류의 생각이었다. 국제사회가 통일에 동의할지도, 동독인들이 통일을 원하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12월 19일 콜 총리가 동독 드레스덴에서 ‘역사가 허락한다면 나의 목표는 통일’이라고 최초로 선언하고, 거기에 모였던 20만 군중이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화답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독일 전 국민이 순식간에 통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올라탔다.”

동독에서 첫 자유선거가 열린 1990년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단상 가운데)가 동독 청중 앞에서 유세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벽 붕괴 넉 달 만에 자유선거 실시-그 후 어떤 정치적 과정을 겪었나.“당장 이듬해(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인민의회 자유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후보 선정에만 3개월이 걸리고 선거 4주 전까지 투표용지가 나와야 하는 촉박한 작업이 이어졌다. 새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논의도 했으나 3년은 걸릴 작업이라 당시 서독 여당은 동독이 서독 헌법체제에 편입되는 쪽으로 설득에 나섰다. 선거 이후엔 통일 사전 작업으로 1만 개의 법률이 제·개정됐다. 90년 10월 3일 마침내 새로 구성된 동독 인민의회가 독일 연방하원에 편입됨으로써 정치적 통일이 완성됐다.”



-통일 과정에서 서독 정당들의 역할은.“3월 선거를 준비하며 서독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다. 장벽 붕괴 당시 동독은 공산당 계열인 사회주의통일당(SED·사통당) 1당 독재였고 위성 정당으로 동독 기민당(Ost-CDU)과 동독 자민당(Ost-LPD)이 있었다. 1600만 동독인 중 사통당원이 무려 220만이었다. 이들은 선거에서 ‘사회주의 동독 유지’를 내걸었다. 사통당이 과반을 차지하면 통일은 물 건너 가는 상황이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는 동독 기민당과 손잡은 것은 물론 동독 내 민주화 운동 그룹들의 창당을 지원했다. 서독 사민당(SPD)도 동독에 새로 창당된 사민당을 돕는 등 서독 정당들은 동독 당들과 자매 관계를 맺고 도왔다. 선거까지 3개월 동안 콜 총리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사민당)를 비롯해 장관과 의원 등 2000명의 서독 정치인이 동독을 방문해 찬조 연설을 하고 홍보 등 각종 컨설팅도 해줬다. 동독 기민당은 사통당의 ‘2중대’에 불과했었지만 우리의 도움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선거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2월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사회주의 정당들이 앞섰으나 콜 총리가 5군데의 대규모 군중 연설을 통해 분위기를 바꿨다. 결국 콜이 지원한 기민당이 48.1%를 획득, 자유주의 정당과 연정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사통당에서 이름을 바꾼 민주사회당(PDS)은 16.3%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당시 동독에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여론이 상당히 남아있지 않았나.“40년간 사회주의 사상이 주입됐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사회주의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여행의 자유와 ‘서독 마르크화’를 원했기 때문에 콜의 통일 주장을 지지했다. ‘나는 줄곧 사회주의자였고 미래에도 사회주의자겠지만 통일을 원하기 때문에 기민당에 투표한다’는 말이 동독에서 유행했다.”



-서독의 중도 좌파 유력 정당인 사민당은 이념적으로 동독인과 더 가까운데 왜 선거에서 힘을 못 썼나.“사민당은 통일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공약이 없었다. 오히려 강령에서 ‘통일은 역사에서 가장 큰 거짓’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사민당은 동독인들이 서독인과 다른 자체 시민권을 발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기민당은 서독인과 동일한 시민권을 주자고 했다. 많은 동독인이 ‘진보를 택해야 한다면 공산주의를 택하겠다. 사민당은 위성정당 같은 복제품’이라고 생각했다. 서독 기민당은 오히려 동독 사민당과 더 잘 맞았다. 사민당은 ‘최고의 공산주의자들은 동독이 아니라 서독에 있었다(기민당을 지칭)’고 평가할 정도였다.”



-통일 과정에서 독재정당이었던 동독 사통당에 대한 정치 보복은 없었나.“당시 사통당의 정치 금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당 강령이 명백히 독일 연방헌법에 위배됐기 때문이다. ‘슈타지’라 불렸던 정보기관인 국가보위부도 문제였다. 180만 명이 공식 조직원이었고 350만 명이 슈타지의 첩자로 활동했다. 결국 우리는 이들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로 했다. 경찰을 비롯한 공공기관 직원, 교사로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구속과 고문·살인에 직접 관여한 이들만 배제됐다. 이 조치가 통일 독일에 평화를 가져온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 30년 내 통일 반드시 이룰 것”-한국은 독일과 달리 정치권에서 합의의 문화가 부족하고 이념 갈등, 특히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 갈등이 심하다.“한국의 정치문화를 잘 모르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다가도 통일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는 시점에선 갈등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내가 볼 때 30년 안에 한국에서 통일은 반드시 이뤄진다.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이 부리는 말썽 때문에 피해를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국에선 통일을 위한 조건이 갖춰져 있나. 미국은 공해상에서 얼마든지 한국을 보호할 수 있다. 굳이 3만의 지상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을까.”



-미군 철수가 통일에 유리한 조건이란 뜻인가.“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에서 중요한 점은 얼마나 많은 주변국의 지지를 등에 업느냐다. 미국의 지지만으로 가능할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조언하고 싶은 건 첫째, 미국의 차기 정권과 통일 시나리오를 짜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러시아와도 대화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의 우군이 될 수 있다.”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탈퇴하지 않고도 통일할 수 있지 않았나.“당시 미국과 영국·프랑스만 통일 독일의 나토 회원국 유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 내 동구 회원국들도 독일의 나토 잔류에 동의했다. 동구 공산권이 와해되기 시작하던 때여서 그들도 나토에 편입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독일이 나토에 남는 것에 찬성했다. 당시 동독 경제는 파산지경이었는데 소련도 비슷한 처지여서 동독 파산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독은 거액의 동독 내 소련군 철군 비용까지 댔다. 하지만 고르바초프 뒤에 들어선 러시아 정권이었다면 독일 통일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기회의 틈을 놓치지 않은 것이 통일에 성공한 요인이다.”



-통일에 대해 걱정하는 한국민이 많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비용을 지불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좋다. 통일은 무궁무진한 기회를 제공한다. 통일의 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동독민은 선거를 통해 정당을 지지하고 심판했다. 이처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통일이 이뤄져야 후유증이 적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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