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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칼국수집 ‘밀숲’에는 혼자나 둘이 가도 좋지만 셋이 가면 더 좋다. 박 대리, 배 대리와 나는 셋이 밀숲에 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박 대리가 지난주 월요일에 출산휴가에 들어갔으니까 그때는 박 대리가 휴가 가기 전이었다.



점심 메뉴 결정은 출산친화적 식사를 위해 만삭의 임신부인 박 대리에 맞추게 된다. 우선 몸이 무거워 먼 곳의 식당은 가지 않게 된다. 가령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음악국수’는 비 오는 날에도 못 간다. 평양냉면 생각이 간절해도 지하도와 건널목을 건너야 갈 수 있는 ‘을밀대’나 ‘봉피양’에도 못 간다. 향이 강하거나 맛이 자극적인 음식도 피하게 된다.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는 곳도 당연히 건너뛴다. 추어탕, 순대국, 뼈해장국, 돼지국밥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김상득의 행복어사전

강남이 넓다고 하나 막상 점심때 갈만한 식당이 별로 없다. 매일 점심때만 되면 고심하지만 결국 갔던 곳만 간다. 늘 가던 곳은 안전하고 편하지만 그만큼 밋밋하고 지루하다. 그러던 차에 회원관리부 정 팀장이 알려준 곳이 ‘밀숲’이다. 근처에 괜찮은 칼국수 가게가 있다고. 가격도 겸손하다고.



식당에는 이미 식사하고 있는 동료들도 두 팀이나 있었다. 눈이 마주친 동료들과 목례를 나누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칼국수 가격은 겸손해서 한 그릇에 4000원이다. 거기다 한 접시에 만두 세 개가 나오는 만두를 주문하면 한 사람이 하나씩 사이 좋게 나눠 먹을 수 있다. 만두 가격은 3000원이다. 칼국수와 만두 한 개를 먹고도 한 사람 점심 가격이 5000원이다. 강남에서 점심 한끼 가격으로 5000원이면 아름답다.



대화도 없이 열심히 칼국수와 만두를 먹고 있는데 다른 자리에서 식사하던 동료 중 한 사람이 우리 자리로 온다. 손에는 밥그릇을 들고. 이거 드세요. 깨끗하게 먹은 건데.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먹으면 든든할 거에요. 혹시 불쾌하신 건 아니죠? 그릇에는 먹다 만 밥이 반쯤 남아 있었다. 나는 과장해서 손을 저었다. 어휴, 불쾌하긴요. 아닙니다. 이러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저 이런 거 좋아해요. 제가 왜 대머리겠어요?



그 동료는 평소에도 다정한 사람이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항상 웃는 얼굴로 진심이 담긴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분이다. 깨끗하게 드셨겠지만 밥에는 김치 양념이 살짝 묻어 있었다. 동료들이 주고 간 밥을 박 대리와 배 대리에게 권했지만 생각이 없다고 한다. 박 대리와 배 대리는 원래 국에 밥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한다. 나는 반 공기의 밥을 남은 국물에 말아 탐욕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칼국수 국물에 만 밥을 먹으니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옛날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늙고 병들어 외동인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다. 왕자는 나라 다스리는 일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왕이 조기교육을 시켰으나 실패했다. 왕은 학식 높은 선비들에게 지도자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과 지혜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오도록 명령했다. 선비들은 못 한다고 했다. 도저히 한 권으로 만들 수 없다고,



열 권으로도 모자라고 백 권으로도 모자란다고. 신하들도 반대했다. 왕은 반대하는 신하와 선비들을 죽이고 다시 명령을 내렸다. 목숨이 아까운 선비들이 어찌어찌 국정교과서 한 권을 만들었다. 한 권의 책도 공부를 싫어하는 왕자에겐 너무 많았다. 읽기 힘들었다. 한 쪽으로, 그것도 너무 많다고 해서 결국 한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 문장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지혜는 없다. 그걸 알고 싶다면 열 권의 책, 아니 백 권의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두드리면 북소리가 날 것 같은 배를 쓰다듬을 때까지 나는 몰랐다. 우리가 그 밥값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계산할 때 보니 원래 우리가 주문한 음식값보다 1000원이 더 나왔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식당에서 밥값을 이중으로 계산했을 수 있다. 또는 식탁에 놓여있는 밥그릇만 보고 우리 쪽으로 계산했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주 희박하지만 아까 그 동료가 계산하면서 밥 한 공기 값을 우리 쪽에서 낼 거라고 넘겼을 수 있다.



우리는 더 나온 그 1000원에 대해서 식당에 끝내 묻지 못했다.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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