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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짧은 시 긴 감동

광화문 네거리에 큰 사옥을 가진 어느 기업이 건물 외벽에 초대형 ‘글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광화문 글판’이라 불리는 공익성 글 게시 캠페인이다. 짧은 시 전문 또는 시의 한 구절을 선정해 계절마다 바꿔 거는데, 그 세월이 벌써 25년이다. 이 걸개 시화전은 도심의 미관을 시원하게 하고, 광화문을 지나는 하루 100만 명의 시민들을 즐겁게 한다. 25년, 사반세기를 기념하여 설문조사를 했더니, 1위로 꼽힌 시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었다고 한다.

짧은 시다. 모두 석 줄이어서 전문을 새길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경구처럼 짧은 시 한 편이 각자의 가슴에 남기는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가슴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짧은 시의 힘과 쓸모에 관해서다. 심금을 울리는 감동은 많은 말이나 긴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짧은 시의 문면에 진중한 생각을 담는 데 능숙했다. 한시에 있어 절귀(絶句)나 율시(律詩)의 형식이 그렇고, 시조 또한 기본이 3장으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그 짧은 문면에 우주자연의 원리와 인생세간의 이치를 담아 후대에 남겼다. 한국문학사를 풍성하게 장식하고 있는 그 많은 시조 가운데, 하나를 들어 보라면 이조년의 작품을 선택하겠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조지훈은 이 시조의 종장을 빌려 그의 시 '완화삼'의 끝막음에 썼다. 청구영언에 전하는 황진이의 시조들은, 시대적 한계와 신분의 제한을 넘어서는 절창이다. 그 기량에 있어 사대부 선비의 시조에 굴하지 않는 기생들의 시조가 많은 것은, 이 문학의 형식이 난해하지 않고 길지 않다는 데 일말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짧고 쉬우면서 깊은 뜻은 안고 있는 글이 결코 만만할 리 없다. 조금 범위를 넓혀서 보면, 인간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종교의 경전은 그 가르침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짧고 쉽지만, 교훈과 감동을 함께 가진 글이 오래 간다. 더욱이 요즘처럼 팍팍한 삶과 고단한 정신을 견뎌야 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시단의 대가들이 남긴 짧은 시가 사람들의 입술에 오래 머무는 현상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다. 다음은 조병화의 '해인사'라는 시다.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고은의 '그 꽃'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짧은 시가 대세라는 말은, 근래에 ‘극(極)서정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군의 시인들에 이르러 효력을 얻는다. 일반적인 독자를 시의 이해로부터 멀리하는 난해함을 배격하고, 인간의 서정적 감성을 발양하는 시를 쓰되 짧고 울림이 있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소통 불능의 장황하고 난삽한 시의 유행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짧고 간결하게 쓰자는 시운동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최동호, 시인 조정권, 오세영, 문인수 등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정신도 바뀌어서 이제는 문자문화 활자매체의 시대에서 영상문화 전자매체의 시대로 문화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때에 짧고 감동적인 시의 새로운 장르로, 이른 바 ‘디카시’라는 것이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시의 합성어인 이 새로운 시 형식은,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순간 포착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밀착하는 짧고 강렬한 몇 줄의 시를 덧붙이는 것이다.

이상옥을 비롯한 경남 일원의 시인들로부터 시작된 이 시운동은, 누구나 디카시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보편성이 강점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이렇게 손쉽고 독자친화적인 시가 시드는 법은 없을 터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들의 행렬이 보람을 다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 시에서 삶을 읽는 우리 마음의 수준이 아닐까 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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