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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1998년 오부치 첫 제의 주룽지가 퇴짜 … 이듬해 DJ “차 한잔 합시다” 성사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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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27~2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때 국제회의장에서 환영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 주룽지 전 중국 총리(왼쪽부터). [중앙포토]


“우리 차나 한잔 합시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김대중 대통령(이하 당시 직책)의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됐다. 1999년 11월 2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 때였다. 당시 김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에게 조찬회동을 제의했다. 한·중·일 정상들만 따로 만난 최초의 이 만남이 3국 정상회의의 씨앗이 됐다.

이 씨앗이 줄기를 뻗고 잎을 내 다음달 1일 서울에서 3국 정상이 다시 만난다. 3국 정상회의는 2008년 공식 출범했다. 매년 만나기로 했지만 3년 반 동안 공백이 있어 이번 만남이 여섯 번째가 된다. 2012년 9월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인해 3국 관계가 크게 악화돼 만남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모처럼 열리는 ‘동북아의 큰 잔치’를 앞두고 3국 정상회의의 과거와 현재,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3국 협력의 태동은 위기에서 비롯됐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독자노선을 걷던 중국이 다자외교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또 한·중·일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졌다. 마침 97년은 아세안이 창설 30주년을 맞은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의장국인 말레이시아가 한·중·일 정상을 초청했다. 3국이 한 묶음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한 최초의 메커니즘이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아세안+3 정상회의’의 시작이었다.

사실 3국 정상 회동에 대한 최초 제안은 98년 나왔다. 오부치 총리에 의해서다. 김대중 대통령은 찬성했지만 중·일 관계가 껄끄러웠던 터라 주룽지 총리는 동의하지 않아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99년 오부치 총리는 ‘재수’를 결심한다. 하지만 일본이 주도하면 중국이 또 꺼릴 것을 우려해 김 대통령에게 대신 제안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김 대통령은 중국 측에 의사를 타진하고 좋다는 답을 듣고 3자 회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결국 그해 11월 28일 마닐라에서 결실을 보게 됐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마닐라 조찬에서 세 정상은 정치가 아닌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나 북한 문제는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3국 정상은 2000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다시 만났다. 역시 아세안+3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조찬회동이었다. 여기서 김 대통령은 “앞으로 아세안+3 정상회의 때마다 우리 세 나라 정상은 꼭 만나자”며 정례화를 제안했다. 중·일 정상도 찬성했다. 그러면서 “다음 회동은 일본이 초대하는 형식으로 하자”고 정했다.

여기서 지금도 적용되는 3국 정상회의 의장국 순서가 결정됐다. 99년 마닐라 조찬회동을 김 대통령이 제의한 이후로 한-일-중 순으로 돌아가면서 조찬회동을 주최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3국 정상회의의 공식 명칭이 ‘한·일·중 정상회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최국 순서대로 해서 이번 의장국이 첫 번째, 차기 의장국이 두 번째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번엔 한·일·중 정상회의이고 내년에는 일·중·한 정상회의가 공식 명칭”이라고 설명했다.

3국 정상들의 회동은 진화를 계속했다. 외교장관들도 별도로 모임을 열기로 했다(2001년 11월 브루나이). 조찬 회동에서 정식 회담으로 격도 높였다(200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2003년 10월엔 3국 협력을 명시한 최초의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그러나 3국 협력은 곧 암초를 만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우경화 행보에 한·중이 반발하면서다. 2005년 12월 초 중국 외교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하려고 했던 한·중·일 정상 회동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과도 사전에 협의한 결과였다.

 2006년 고이즈미 내각이 퇴진하면서 3국 협력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 2007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때 노무현 대통령,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아세안+3 정상회의 때가 아닌 3국 내에서 별도로 열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08년 12월 처음으로 아세안의 틀에서 벗어났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3국 정상회의가 열린 것이다. 이 회의를 공식적으로 1차 회의로 간주한다. 동남아가 아닌 지역에서 열린 첫 회의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에서 서열 1위인 국가주석이 아닌 2위인 총리가 참석하게 된 것도 이유가 있다. 아세안+3 정상회의에 총리가 참석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97년 덩샤오핑(鄧小平) 사망 이후 권력 집중을 막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후 국가주석은 국방·외교를, 총리는 경제·내치를 전담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지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여러 국가가 모이는 회의에선 경제 이슈가 주로 논의되기에 총리가 정상 자격으로 참석한다”며 “이런 관례가 한·중·일 정상회의에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찬 회동에서 싹을 틔운 지 16년 만에 3국 협력은 외형적으로는 단단한 틀을 갖춰 가고 있다. 정상회의 이외에도 19개 장관급 회의, 50여 개 실무자급 회의, 100여 개 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초대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을 맡았던 신봉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은 “이번에 3년 반 만에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면서 그동안 과거사 문제 등으로 정체됐던 다양한 협의체들의 활동도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며 “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기금(TCF·Trilateral Cooperation Fund) 조성까지 합의되면 3국 협력이 더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S BOX] 광화문에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 사무총장 돌아가며 맡아

서울 광화문에는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있다. TCS는 3국 정상회의 지원을 포함해 3국 간 진행되는 다양한 협력사업을 발굴·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2010년 제주도에서 열린 3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들이 설립을 합의한 후 2011년 9월 서울에 사무국이 마련됐다. 지리적으로 중간에 있고, 한국이 중·일 모두와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TCS에는 사무총장을 포함해 한·중·일 3국에서 온 직원 28명이 일하고 있다. 3국에서 모인 만큼 공식 언어는 영어다. 사무총장은 3국 정상회의처럼 한·일·중 순으로 돌아가며 맡는다. 임기는 2년이다. 초대 사무총장은 신봉길 현 외교안보연구소장이었고, 일본의 이와타니 시게오(岩谷滋雄) 전 케냐 대사가 2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올해 8월부터는 중국의 양허우란(楊厚蘭) 전 주미얀마 대사가 3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사무총장은 3국 정상회의 출범의 계기가 된 아세안+3 정상회의에도 참석해 다른 정상들과 함께 라운드테이블에 앉아 현안을 의논한다. 3국은 TCS에 필요한 예산도 3분의 1씩 분담한다. 예산을 똑같이 내는 만큼 협력 사업의 혜택도 동일하다. 3국 협력기금(TCF·Trilateral Cooperation Fund)이 조성될 경우 기금 운용을 TCS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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