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11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드디어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합니다. 굳이 ‘드디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번 회담이 두 정상의 취임 후 처음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나라들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유독 이웃끼리 만나지 않은 건 매우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한일관계가 험악한 상태였다는 뜻이지요.



주지하듯 단초는 과거사 문제입니다. 식민지 지배,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야스쿠니신사, 역사 교과서 등을 둘러싸고 양국의 여론은 평행선을 달려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경우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탓에 외교와 내정(內政)의 최대 쟁점이 모두 역사인식으로 집중되는 양상입니다.



그럼 역사인식이란 과연 무엇인가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미 확정된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통일된 역사인식은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겐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남들은 반대로도 해석합니다. 한일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침략에 대한 인식입니다. 일본의 보수층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일제에 의한 한일 합병을 불법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제법상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전쟁을 처음으로 금지한 1928년의 부전(不戰)조약입니다. ‘켈로그-브리앙 조약’이라고도 하는 이 조약은 국가정책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하고, 분쟁해결을 위한 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일본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그 이전의 침략전쟁은 문제시하지 않고, 그 이후의 전쟁에 대해선 불법으로 인정한다는 논리입니다. 식민지 지배로 이어진 한일합병(1910)은 당시로선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들도 그때는 다 식민지 지배를 했다, 일본은 뒤늦게 유럽 국가들을 따라했을 뿐이다…. 불과 몇 년 차이로 불법과 합법을 가르려는 저들의 단순논리를 침략의 피해자인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에 비해 1931년 일본 관동군이 일으킨 만주사변은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시인합니다. 지난 8월 ‘아베 담화’를 위해 구성됐던 자문기구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자문위원 16명 중 14명이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 대해서만 침략이었다고 인정하는 데 동의했다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일본의 중국에 대한 태도와 한국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런 비판은 우리와 중국이 같은 입장이므로 일본에게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중국과 과연 동일선상에 설 수 있을지, 스스로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이미 확정된 불변의 사실입니다. 위안부, 강제징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역사인식이 한일관계의 중대한 장애물이 된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그 전엔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본에서 70년대부터 연구돼 오던 위안부 문제도 우리나라에선 80년대 들어서야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공식 학술대회가 처음 열린 게 88년이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밝혀졌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불변의 역사를 놓고도 우리의 관심과 인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곤 합니다. 역사를 해석하는 우리들의 시각과 자세가 변화한다는 것이지요. 그 변화엔 현재의 정치사회적 역학관계나 사회경제적 구조 등 헤아릴 수 없는 변수들이 작용할 겁니다. 결국 역사인식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문제 아닐까요. 이미 흘러간 역사를 주제로 한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현재의 갈등구조를 투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철학을 전공한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교수는 『역사인식 논쟁』이란 책에서 역사인식을 이렇게 해석하더군요. “결코 과거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재의 과제에 직접 맞물린 투쟁의 장”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인식 문제는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성찰해야 풀릴지 모릅니다. 문제의 발원지가 현재인 이상, 현재의 갈등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선 해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양국 역사학자들이 참가했던 한일 역사 공동연구가 인식의 차이만 드러낸 채 무산된 것도 그런 이유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정치·경제·사회·심리를 두루 아우르는 통찰력을 지닌 이들이 나서서 거시적으로 해법을 찾는 게 나아 보입니다.



역사인식 문제가 현재의 갈등의 투영이라면, 며칠 뒤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갈등의 악순환을 단번에 끊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악순환의 스피드를 줄이기만 해도 성과를 거두는 겁니다. 두 정상에게 드라마틱한 화해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두 분 모두 자국내 보수층의 견고한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덥석 손잡기가 부담스러울 겁니다. 두터운 얼음장을 금 가게 만드는 정도만 되도 큰 진전 아닐까요. 한일 정상회담을 꼭 이겨야 하는, 무슨 축구 경기 관전하듯 하면 곤란합니다. 그런 여론의 시각이 박 대통령에겐 더 큰 부담을 줍니다. 그냥 차분히 지켜보는 게 낫습니다. 현재의 갈등을 진정시키면 과거를 둘러싼 갈등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금주 중앙SUNDAY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과 기대, 그리고 제언을 들어봅니다. 또 토요일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의 회담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도하겠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2주 연속으로 중국의 민주집중제에 대해 심층 분석을 게재했습니다.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민주집중제가 국제표준이 될 것이라고 호언하는 중국 관변학자들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이국영 성균관대 교수의 글이 주목받았습니다. 금주에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아시아 자본주의의 성과와 전망을 다뤄봅니다.



[관련기사] “中 민주집중제는 일당독재 도구 … 독재가 국제표준 되겠나”



디지털 시대에도 인쇄 매체의 힘은 남아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쇠락한다고는 하지만 종이 위의 활자가 주는 임팩트는 모니터 화면 속 문자의 느낌과는 다릅니다. 지난주 중앙SUNDAY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랑크 뒤랑도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중앙SUNDAY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관련기사]인쇄 매체의 힘은 단순·충격·우아, 온라인서 느낄 수 없는 ‘촉감’ 선사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