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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박 대통령, 모난 것도 둥글둥글한 것도 싫어해 항상 단정” … 입기 편한 ‘JP룩’ 직접 디자인, 5·16의 실용정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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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①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재건국민운동본부가 5·16 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고안한 재건복을 입고 있다, ②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키가 커 보이기 위해 굽이 약간 높은 구두를 신고 바짓단을 길게 내려 입었다, ③ 박정희 대통령은 바지 길이가 1㎝만 길어져도 이를 알아채고 양복사에게 고쳐 오라고 지시했다. ④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착용했던 준장 군복을 입었다. ⑤ 영국 처칠 총리는 위아래가 붙은 ‘처칠의 롬퍼스’를 직접 디자인해 제2차 세계대전 때 유행시켰다. ⑥ 중국 마오쩌둥 주석은 쑨원이 고안한 중산복을 일상생활은 물론 공식석상에서도 즐겨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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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 직후 혁명정부 기관 중 내가 기획해 설립한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가 있었다. 국민 마음속에 혁명정신과 생활의 과학화를 심어주는 의식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비록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나중에 새마을운동으로 승계) 그 족적을 남긴 것이 있으니 바로 ‘재건복(再建服)’이었다. 장식 없이 검은색 단추가 달린 짙은 회색의 싱글 상의와 하의로 된 실용적인 간소복이다. 옷은 그것을 입은 사람 마음의 형식이 된다. 실질을 중시하는 정신 변혁 운동을 할 때 대중의 뜻을 모으는 틀이 되기도 한다.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착용을 권장한 이 옷은 모든 공무원이 입는 유니폼이 됐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나는 물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도 평상시 양복 대신 재건복을 즐겨 입었다. 재건복은 혁명의 시대 6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이었고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지금도 외출할 때 양복보다는 내가 디자인한 ‘JP표’ 간소복을 입을 때가 많다. 68년 내가 공화당 의장, 국회의원직을 포함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야인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디자인했으니 어느덧 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옷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입은 옷이니 패션세계 용어로 말하자면 ‘JP 룩(look)’인 셈이다. 상의 양쪽 가슴과 허리춤에 모두 4개의 주머니가 달려 있고 등판 가운데 세로로 길게 주름을 잡은 것이 특징이다. 무턱댄 모방이나 흉내가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눈여겨봐둔 옷 모양을 참고해 나 스스로 설계했다. 입기에 편안하면서도 점잖고 단정해 보이도록 하는 데 신경 썼다. 실용성을 우선하면서 세상을 바꾸자는 시대정신을 가미했다. 제작은 내 단골 맞춤양복점인 체스터필드에 맡겼다.

 71년 국무총리에 취임한 뒤 공식 복장은 양복이었지만 현장 시찰을 나가야 할 때는 내가 디자인한 이 옷으로 갈아입었다. 71년 7월 을지연습훈련(CPX·지휘소훈련)을 총리로서 처음 주재할 때 나는 베이지색의 JP표 간소복을 입었다. 그러자 장관들이 따라 입기 시작해 이듬해 CPX 땐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전원이 나와 같은 옷을 입게 됐다. 총리 시절 CPX뿐 아니라 새마을운동 시찰을 위해 농촌에 갈 때도 나는 이 옷을 챙겨 입었다. 세월이 흘러 98년 나는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올랐고 수해지역 등을 시찰할 때면 어김없이 이 옷을 꺼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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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자택에서 김종필 전 총리가 직접 디자인 한 옷을 입고 ‘김종필 증언록’을 구술하고 있다.

 최근에 내 옷장을 열어보니 같은 디자인의 옷이 다섯 벌 걸려 있다. 연한 베이지색과 짙은 베이지색, 카키색 등 색깔만 조금씩 다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는 생전에 내가 이 옷을 입으면 이렇게 놀리듯 말했다. “아, 장개석이 되려고 해요?” 아내가 보기엔 장개석(蔣介石·장제스) 대만 총통이 즐겨 입었던 중국의 중산복(中山服)과 비슷해 보였나 보다. 중산복은 손문(孫文·쑨원) 선생이 1910년대에 일상생활에 편리하도록 고안해서 입었던 옷이다. 그의 호 중산(中山)에서 이름을 따왔다.

주머니 4개와 앞단추 5개, 소매단추 3개가 달려 있고 뒤트임이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많이 입어 ‘마오룩(Mao look)’으로 불리기도 한다. JP표 간소복은 언뜻 보면 중산복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목 여밈 부분이다. 중산복 재킷은 단추로 목 바로 아래까지 바싹 여며서 잠그게 돼 있다. 빈틈이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입던 북한의 인민복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는 간소복의 재킷은 앞단추를 4개만 달고 목 아래 부분은 여미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선 넥타이를 맬 수 있도록 고안했다. 옷이란 어느 정도 빈틈이 있어서 입을 때 편한 것이 제일이라는 내 생각이 담겨 있다. 중산복이나 인민복이 공산주의자의 복장이라면 내 옷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정신이 담긴 옷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나의 이런 설명을 아내가 듣는다면 “해석이 참 그럴듯하네요”라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패션사에 기록될 만큼 유명한 옷을 디자인한 정치인은 손문 선생 말고도 또 있다. 내가 존경하는 위인 중 하나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다. 그는 위 아래가 붙고 가운데 지퍼와 양 가슴에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방공복(사이렌 수트·siren suit)을 30년대에 직접 디자인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재빨리 쉽게 입고 방공호로 대피할 수 있는 이 옷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이 입으면서 크게 유행했다. 영국인들은 그 작업복을 ‘처칠의 롬퍼스(rompers)’라고 불렀는데 그 옷은 ‘피와 수고, 눈물과 땀 이외에 다른 것을 드릴 게 없다’는 솔선수범과 결전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했다. 처칠은 방공복을 전시에는 물론 일상복으로도 즐겨 입었다. 푸르스름한 방공복을 입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년 처칠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 기억이 있다.

 패션으로 자신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중요한 자리에선 2차 대전 중에 자신이 입었던 군복을 꺼내 입었다. 그의 계급은 준장(Général de brigade)이었다. 이 군복은 나치 히틀러의 프랑스 점령으로 영국에서 망명정부 ‘자유 프랑스’를 이끈 드골의 자존심과 명예, 조국 사랑을 상징했다. 그는 별이 박힌 프랑스 준장 모자를 쓴 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63년)과 영국 처칠 총리 장례식(65년) 때 맨 앞줄에 서 있었다.

 양복을 선택할 때 나는 주로 검정색 계통을 고집한다. 다른 색은 입어본 적이 거의 없다. 와이셔츠는 흰색이 9할을 차지한다. 색깔이나 무늬가 있는 셔츠는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무난하고 단정해 보이는 조합이 검정 양복과 흰 와이셔츠다. 정장은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점잖구나’ 하는 인상을 주면 그것이 잘 입은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내가 입을 양복을 직접 골랐다. 와이셔츠는 아내가 골라주는 대로 입었지만 양복은 내가 선택하곤 했다. 언젠가 아내가 언론 인터뷰에서 “입혀주는 대로 입지 않고 고집을 부려서 힘들다”고 투정했던 것이 기억난다.

 넥타이를 맬 땐 양복이나 와이셔츠와 조화될 만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골랐다. 눈에 두드러지는 진한 색깔은 피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 중엔 넥타이 고를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눈에 확 띄는 화려한 넥타이를 매는 경우가 많은데 양복 색깔과 충돌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아마도 넥타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시현욕(示現慾)의 발현일 텐데 그런 사람일수록 정작 내면엔 볼 게 없다.
 
  

 야당 총재 시절이었던 95년 나는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가 선정한 베스트드레서 10명 중에 뽑힌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정치인 중 옷차림에 신경 쓰고 멋을 부렸던 사람으로는 정일권씨와 박태준씨를 꼽을 수 있다. 외무장관을 지낸 이동원씨도 옷을 세련되게 잘 입었다. 양 김(金) 중엔 김영삼(YS)씨가 패션 감각에선 김대중(DJ)씨보다 조금 앞서는 편이었다. YS는 젊어서부터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 키를 크게 보이려고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서 그 굽을 감추느라 바지 자락을 좀 길게 해서 입었다. DJ는 대통령 재임 중에 진한 빨간색 넥타이를 많이 맸다. 아마도 젊어 보이려는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자민련의 미디어 선거대책단이 주장해서 나도 방송 토론회에서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붉은 넥타이를 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 어색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항상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주로 육영수 여사가 골라주는 대로 입었는데 검은색이나 회색 양복에 얌전한 넥타이를 맸다. 원단은 싸고 구김이 덜 가는 폴리에스테르 혼방 소재를 선호했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YS처럼 구두 굽을 높게 해서 신지는 않았다. 옷차림에 그의 검소한 자세와 성격이 그대로 묻어났다. 박 대통령은 원래 모가 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둥글둥글한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말이다.

 옷은 사람의 취향, 생활방식, 예술적 감각, 시대의식,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정치인에게 대중과 소통은 말과 옷으로 시작한다. 정치인이 옷차림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러 만들어 보이려고 해도 꾸며낼 수 없는 내면의 멋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풍기는 분위기가 세련되고 깨끗해야 진정한 멋쟁이이고 풍류객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려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향기와 색깔이 없다면 멋쟁이라 칭할 수 없는 법이다. 요즘 우리 정치판에 멋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만한 정치인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예술이라고 하는데 외면의 매력적인 옷차림과 더불어 내면의 향기와 낭만, 여유와 타협의 예술을 지닌 정치인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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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소사전 이동원(1926~2006)=1965년 한·일협정에 특별전권대사 자격으로 조인했던 외무장관. 뿔테 안경에 행커치프를 한 세련된 옷차림을 선보였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연희대(현 연세대) 재학 중이던 4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정치학 박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땄다. 62년 박정희 대통령 직무대행 시절에 최연소 대통령 비서실장(36세)을 지냈고 64년 최연소 외무장관(38세)에 임명됐다. 베트남 파병과 한·미 행정협정, 국제기구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 설립에 기여했다. 67년 제7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최초로 전국구 4선 의원을 지냈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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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