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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20년 전 재미 본 ‘찰나 매매’ 고집 … 금융천재 빈손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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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리웨더는 1980년대 채권 트레이딩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비즈니스위크지 표지모델이 된 메리웨더 .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붕괴는 글로벌 금융시장엔 충격이었다. 동시에 훌륭한 저술을 위한 자양분이기도 했다. LTCM 파산 2년 뒤 금융 저널리스트인 로저 로웬스타인이 쓴 『천재들의 실패』가 발표됐다. 책은 금융 관련 다큐멘터리 가운데 걸작으로 꼽혔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책의 첫 장이 바로 ‘존 메리웨더’다.

‘헤지펀드 전설’ 존 메리웨더의 몰락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영입
채권·주식 차익거래 프로그램 개발
같은 종목이 가격차 나는 순간 매매
수익률 최고 연 57%, 5조원 굴려



오랜 침묵이었다. 3년간 움직임이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JM어드바이저스란 미국 헤지펀드 얘기다. 28일 현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홈페이지엔 JM어드바이저스는 ‘활동중단(Inactive)’으로 분류돼 있다. 가장 최근 금융감독 당국에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도 2012년 3월이었다.

 헤지펀드 리서치회사인 유레카는 “3년 동안 추가로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실적을 보고할 일이 없었다는 셈”이라고 했다. 본지가 JM어드바이저스의 사무실이 있는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전화를 걸었다. 벨은 울렸다. 받는 이가 없었다. 얼마 뒤 기계가 응대했다. “JM어드바이저스입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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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금융 천재의 현 상태다. 그의 이름은 존 메리웨더(68) 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설립자 겸 대표다. 17년 전인 1998년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LTCM사태’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 월가와 영국 더시티(The City) 등 돈의 세계에서 인정받은 금융 천재다. 돈에 관한 수재를 자처하는 머니 게이머들도 그를 인정했다. 그를 다룬 책도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 The Rise and Fall of Long-Term Capital Management)』 등 두 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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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웨더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머튼 밀러 등을 영입하고 날고 기는 금융 전문가들을 끌어들여 94년 LTCM을 설립했다. 메리웨더가 내세운 투자전략은 범상치 않았다. ‘자산의 상대가치 차익거래(Relative Value Arbitrage)’였다. 컴퓨터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 사고팔리는 채권·주식·옵션 등을 종류별로 분류한다. 같은 종류이고 발행 기관이나 회사가 같다면 이론적으로 자산의 가치는 같거나 같아질 수밖에 없다(일물일가 원칙). 하지만 시장에선 같은 자산인데도 가격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는 순식간에 해소된다. 하지만 최첨단 컴퓨터에 치밀한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찰나와 같은 순간을 포착해 상대적으로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 큰 위험 없이 돈을 벌 수 있다. 메리웨더는 LTCM을 설립한 첫해부터 이 투자전략을 썼다. LTCM 설립 순간 유치한 자금이 10억 달러 정도였다. 수익률이 매년 20%를 넘었고 96년에는 57%를 기록했다. 돈이 몰렸다. LTCM 자산은 나중에 45억 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전성기 때 메리웨더의 연간 보수는 1000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LTCM은 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으로 큰 충격을 입었다. 러시아 국채 매수 포지션을 가졌던 LTCM은 러시아가 빚을 당분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자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문을 닫았다.

 메리웨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헤지펀드 전문지인 알파는 2010년 JM어드바이저스 설립 소식을 전하면서 “메리웨더가 LTCM과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한 세 번째 헤지펀드를 설립했다”며 “이런 모습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야망이 읽힌다”고 평했다. 이런 야망은 이미 한 차례 깨졌다. 그는 LTCM이 파산한 이듬해인 99년 JWM파트너스란 헤지펀드를 세워 명예회복을 꾀했다.

 처음엔 잘나갔다. 자산 규모도 2억5000만 달러에서 16억 달러로 불어났다. 수학적 투자모델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돈을 버는 데 귀재인 에릭 로젠펠드 같은 인물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는 LTCM 시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영입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메리웨더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타고 넘지 못했다. 2009년 7월 7일 펀드 청산을 발표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신용경색이 본격화한 2007년 9월 이후 1년 반 새 본전을 44%나 까먹었다. LTCM이 궁지에 몰렸을 때만큼이나 나쁜 수익률이다.

 블룸버그는 2009년 7월 전문가의 말을 빌려 “메리웨더가 헤지펀드 세계에선 이제 그저 그런 인물로 통한다”고 평했다. 사실상 천재의 몰락을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메리웨더는 수긍할 수 없었다. 한 해 뒤인 2010년 명예회복을 노리고 JM어드바이저스를 세웠다.

 메리웨더는 JM어드바이저스 설립 신고 이후 1년 동안 투자자금을 모아 2011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돈은 3000만 달러도 모이지 않았다. 출발부터 시원찮았다. 헤지펀드 전문매체인 알파는 “그 정도 자금으론 투자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베팅 금액을 불리기에도 쉽지 않은 규모다.

 알파는 “천재가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헤지펀드 세계에서 동면상태는 곧 퇴출이나 다름없어서다. 메리웨더도 늙었다. 올해 나이 68세다.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시장 상황을 따라잡기도 벅찬 나이라는 게 월가의 상식이다.

 요즘 글로벌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메리웨더의 명예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의 성장이다. 미국 다우지수나 S&P500, 한국의 코스피, 금·은·석유의 가격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자산바스켓(포트폴리오)을 갖춘 펀드를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도록 한 투자 장치다. 투자자는 금을 직접 사거나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보다 금 ETF를 사면 훨씬 적은 비용(수수료)으로 투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ETF가 헤지펀드보다 더 많은 투자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헤지펀드는 개인으로부터 조성한 자금을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단기간 이익을 거둬들인다. 투자지역이나 투자대상 등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고수익을 노리지만 투자위험도 높다. 반면 ETF 투자자는 헤지펀드의 높은 수수료를 물지 않으면서 비슷한 투자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금화도 빨리 할 수 있다.

 투자전문 매체인 배런스는 “ETF 성장으로 글로벌 시장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라고 최근 전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서울 증시 주식과 해외 증시에서 거래되는 삼성전자 주식예탁증서의 실질 가치는 같아야 한다. 하지만 심심치 않게 두 자산의 가치가 벌어지는 일이 일어나 과거에 메리웨더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배런스는 “지금은 ETF 성장으로 투자자들이 상황 변화에 맞춰 아주 적은 비용으로 자산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며 “덕분에 자산가격이 실적 변화 등에 이전보다 아주 빠르게 반응하게 됐다”고 했다.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얘기다. 이는 메리웨더 투자전략이 거의 먹히지 않게 됐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런데도 메리웨더는 여전히 LTCM 시절 전략을 그대로 내세워 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했다. 블룸버그는 “JM어드바이저스의 투자 전략 자체는 LTCM과 같았다”고 했다. 천재가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1883~1950년)는 생전에 “천재는 어쩌다 시장의 변화보다 앞설 수 있을 뿐 늘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 천재로 인정받은 사람이 시장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결국 금융 둔재로 전락했다는 평을 받는 신세가 됐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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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붕괴는 글로벌 금융시장엔 충격이었다. 동시에 훌륭한 저술을 위한 자양분이기도 했다. LTCM 파산 2년 뒤 금융 저널리스트인 로저 로웬스타인이 쓴 『천재들의 실패』가 발표됐다. 책은 금융 관련 다큐멘터리 가운데 걸작으로 꼽혔고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책의 첫 장이 바로 ‘존 메리웨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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