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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보는 한국] 남북 가족 상봉이라는 슬픈 리얼리티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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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 명예 선임연구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오랜만에 우리 마을을 찾은 ‘서커스’ 같다. 저번 상봉은 거의 2년 전에 있었다. 다음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남북 가족 상봉은 수백만 시청자가 주시하는 뜨거운 리얼리티 쇼(reality show) 같기도 하다.

 서커스나 리얼리티 쇼라는 비유가 마음에 안 드는 독자 분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현실(reality)이다. 최근 금강산에서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정말 터무니없다.

 다른 모든 대부분의 남북관계처럼 가족 상봉은 ‘달팽이 속도’로 진전됐다.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로 가기도 한다.

 가족 상봉이 처음 시작됐을 때 남북으로 갈라진 식구들은 비록 제한적이지만 우리 식구가 남쪽 혹은 북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그나마 고향이 서울이나 평양인 경우였다. 가슴에 묻고 온 고향 땅에도 갈 수 없었고 성묘도 할 수 없었다. 근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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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퀴즈를 내보자. 첫 번째 이산가족 상봉은 어느 대통령 때, 몇 년도에 이뤄졌는가. ‘김대중 대통령 때인 2000년이다’고 답한다면 퀴즈 상금을 받을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전에는 남북 간에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는 신화적인 주장과는 달리 진전을 이룬 인물은 사실 많은 이들이 매도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짧은 남북 해빙기였던 1985년 운 좋은 소수의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에서 만났다. 15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2000년에 역시 평양과 서울에서 상봉이 있었다. 이미 많은 이산가족이 세상을 뜬 이후였다.

 2000년 다음에는 상봉이 더 빈번히 이뤄졌다. 좋은 소식이었다. 나쁜 소식은 북한 측이 한국에 사는 식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상봉 장소는 현대가 건설한 금강산 관광 리조트에 국한돼야 한다고 고집하며 남측에 상봉 장소 건설을 종용했다. 남측은 ‘순종적’으로 북측의 요구에 따랐다.

 연이어 20여 차례 같은 패턴이 유지됐다. 남북은 각기 신청자 중에서 운 좋은 100가족을 선정했다. 남측의 선정은 투명했다. 제비 뽑기로 신청 6만6000건 중에서 100가족을 뽑았다. 원래 신청 희망자는 12만6000명이었다. 상봉이 개시된 이후 거의 반이 식구들을 보지 못한 비극을 안고 사망했다. 북한이 어떻게 극소수 선택받은 이들을 뽑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충성심이 전제조건일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TV 프로그램’은 짜증 난다. 우선 TV 카메라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3일간의 소중하고도 감동적인 만남은 너무 짧다. 가족들에게 완전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돼야 한다.

 가족 상봉을 거의 리얼리티 TV 쇼처럼 만든 것은 대체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근심·걱정 없는 삶’을 살게 해준 그들의 지도자에게 감사하게 만들려고 하는 북측의 요구였을까. 아니면 기쁨과 슬픔의 절망적인 혼합으로부터 뉴스거리를 얻겠다는 남측 매체의 요구였을까. 보다 큰 민족적인 목표를 위해서였을까. 나는 누군가 한몫 보겠다는 꼼수가 느껴질 뿐이다.

 만약 남북의 정부에 일말의 연민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식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어떤 필요가 있다면 한 번이나 두 번으로 충분했다. 금강산에서 벌어진 ‘구경거리’를 바탕으로 삼아 남북관계에 있어서나 상봉 가족들을 위해서나 뭔가 발전적인 게 있어야 했다.

 식구들이 딱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다. 오랜 이산(離散) 후의 만남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전화건 e메일이건 팩스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무엇이 그들의 지속적인 만남을 가로막고 있을까. 아마 틀림없이 북한 정권이 이런 현실의 주범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가보안법도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다. 어느 쪽이 잘못이건 이산가족이 처한 현실은 역사에 대한 조롱이다.

 남북 정부의 관계가 이 모양이니 사람들은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1998년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1680건 중국에서 이뤄졌다. 적어도 그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한국의 통일부가 조용히 이런 상봉을 후원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중국과 대만의 국민은 이미 자유로운 상봉을 누리고 있다. 두 개의 중국의 관계는 두 개의 한국과 달리 갈지자 걸음을 걷지 않고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금강산에서 남북의 식구들이 만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내 눈물에는 분노가 포함돼 있다. 진정한 자유로운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한다. 언젠가는 남북의 식구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만남을 향유하게 되기를. 도대체 그들은 그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얼마나 더 많은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야 그날이 올까. 후세는 그들의 꿈을 가로막은 지도자들을 냉엄하게 심판할 것이다.

에이단 포스터-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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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