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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갈수록 볼수록 SUV

지난달 열린 ‘신차의 향연’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관람객이 특히 많이 몰린 부스가 재규어와 벤틀리였다. ‘영국의 자부심’으로 불리며 고가의 스포츠 세단을 주로 만들어 온 재규어는 브랜드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F-페이스’를 처음 공개했다. 초호화 세단을 고집해 온 벤틀리도 ‘벤테이가’를 선보이며 SUV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상엽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는 “벤틀리의 첫 SUV인만큼 개성 뚜렷한 차를 만들기 위해 3년 넘게 고심했다”며 “크고 고급스러운 차체에 쿠페의 역동성을 담아 기존 SUV와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SUV 열풍’이 자동차 업계 지형도와 브랜드의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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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V가 진화하고 있다. 본지가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의뢰해 올 1~3분기(1~9월) 국내차 판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 SUV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41.5%로 나타났다. 올해 판매된 신차 10대 중 4대가 SUV인 셈이다. SUV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SUV는 2008년 이후 5년 간 20%대, 2013~2014년 30%대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전체 승용차 판매량이 줄어든 가운데 SUV만 독주하는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자동차 업계는 다양한 신차를 출시하며 SUV에 대한 기존 상식을 깨뜨리는 추세다.

 ◆작아진 체구=“SUV는 위풍당당하다”는 선입견이 무너졌다. 중형차·대형차 일색인 SUV 시장에 준중형차·소형차 출시가 늘어났다. 큰 덩치보다 부드러운 주행 성능, 높은 연비, 낮은 가격 같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트렌드 때문이다. 22일 재규어랜드로버가 국내 시장에 선보인 소형 SUV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대표적이다. 고급 SUV 브랜드인 레인지로버가 2011년 “소형 SUV 시장을 점령하겠다”며 선보인 이보크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이다. 이보크는 국내 시장에서 만만치 않은 가격(6600만∼9000만원)에도 불구하고 월 평균 100대 이상 팔린 차다. 특히 강남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강남 주부 SUV’로도 불린다. 4년 만에 출시한 신차는 SUV지만 기울어진 지붕과 낮은 차체 덕분에 “새로운 체급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프로드(험로) 주행에 강점을 가진 정통 SUV 브랜드도 몸집 줄이기에선 예외가 아니다. 전쟁터를 누비던 미군 군용차에서 출발한 SUV 브랜드 지프는 지난달 10일 74년 역사상 최초로 소형 SUV인 레니게이드를 선보였다. 레니게이드(소형)-컴패스(준중형)-체로키(중형)-그랜드체로키(대형)로 이어지는 SUV 라인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파블로 로쏘 피아트크라이슬러(FCA)코리아 대표는 “레니게이드는 겉모습만 SUV가 아니다.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지프의 혈통을 이어받은 진짜 SUV”라고 소개했다.

 국산차 브랜드도 ‘생애 첫 차’ 마케팅을 앞세운 소형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르노삼성차 QM3, 쌍용차 티볼리는 각각 침체에 빠진 브랜드를 일으켜세운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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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발한 이종 융합=최근엔 SUV의 DNA에 다른 차종의 요소를 더해 변화를 준 차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SUV 매니어들의 평가에 아랑곳 않고 인기를 끌고 있다.

 기아차가 2008년 출시한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쏘울이 대표적이다. CUV는 세단·왜건·해치백의 장점을 두루 가진 차다. 세단과 SUV의 중간 형태로 보기도 한다. 쏘울은 지난달 미국 내 CUV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자동차 조사기관 워즈는 CUV가 2018년 미국 신차 판매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볼보는 지난 19일 CUV인 V60 크로스컨트리를 출시했다. 스포츠세단인 S60을 기반으로 만든 차다. 기존보다 지상고(지면과 차체 사이 높이)를 높였고, 전고(높이)는 낮췄다. 볼보 측은 “SUV 만큼 운전자 시야를 확보한 대신 무게 중심을 낮춰 차체 쏠림을 극복한 차”라고 설명했다.

 스포츠액티비티쿠페(SAC)도 저변을 넓히고 있다. SUV의 넓은 공간에 쿠페의 주행성능을 더한 차다. 차 가운데 기둥인 B필러를 중심으로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지붕이 SUV와 차이점이다. BMW X4·X6를 떠올리면 된다. 2008년 출시한 1세대 X6는 전 세계에서 25만 대가 넘게 팔렸다.

 ◆다양한 엔진=‘SUV는 곧 디젤차’란 공식도 깨졌다. 최근엔 가솔린 엔진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차(HEV)·전기차(EV)까지 소비자 기호에 따른 파워트레인 다양화가 한창이다. 렉서스는 지난해 10월 최초의 소형 SUV인 ‘NX300h’를 출시했다. 도요타가 강점을 가진 하이브리드 엔진을 얹었다. 동급에선 유일한 시도다.

 현대기아차는 좀 더 도발적이다. 하이브리드차·전기차 대신 수소연료전지차 SUV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2013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준중형 SUV 투싼 ix 수소연료전지차(FCEV)다. 기아차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이브리드 전용 소형 CUV를 개발 중이다. 기아차 준중형 SUV 스포티지보다 작은 크기다.

 엔진 출력을 줄이는 ‘다운사이징’도 한창이다. 기아차는 지난 15일 다운사이징 엔진인 1.7L 디젤 엔진을 얹은 스포티지를 출시했다. 신형 스포티지 2.0을 출시한 지 한 달 만이다. 한국GM은 지난 8월 소형 SUV인 트랙스에 1.6L 디젤 엔진을 달았다.

 ◆SUV의 고급화=고급차 브랜드도 잇따라 SUV 전쟁에 가세하고 있다. 포르쉐는 2002년 스포츠카 매니어들의 혹평을 무릅쓰고 중형 SUV인 ‘카이엔’을 출시했다. 카이엔은 현재 포르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서도 ‘강남 산타페’로 불리며 인기를 끈다. 포르쉐는 카이엔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최초의 소형 SUV인 ‘마칸’도 선보였다. 28일엔 고성능 버전인 마칸 GTS를 출시했다.

 BMW의 고급 소형차 브랜드 미니 역시 2010년 소형 SUV ‘컨트리맨’으로 성공을 거뒀다. 미니 뱃지를 달고 판매하는 차량 3대 중 1대가 컨트리맨일 정도다. 출시 초반에는 큰 차체와 우락부락한 생김새 때문에 “미니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미니가 컨트리맨 덕분에 좀 더 친숙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람보르기니·롤스로이스·마세라티 같은 초호화 브랜드도 잇따라 SUV 출시 계획을 밝혔다. 람보르기니는 ‘우루스’, 롤스로이스는 ‘컬리넌’, 마세라티는 ‘르반떼’란 이름을 단 브랜드 최초의 SUV를 각각 2017년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이대로라면 “SUV 같은 건 안 만들겠다”고 공언한 페라리도 언제 바뀔 지 모를 일이다.

 김용근 회장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추세에 여가 문화가 확산해 SUV의 인기가 계속될 전망”이라며 “세단 판매를 중심으로 한 기존 국산차 브랜드도 SUV 시장 수요에 맞춰 생산 차종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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