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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농담인데 불편하네 ‘수저 계급론’

한우는 육질에 따라 1++부터 등급을 매깁니다. 그런데 소고기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런 등급이 매겨진다면 어떨까요. 요즘 청춘 세대 사이에 ‘인간 등급표’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수저계급론.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누는 겁니다. 수저론은 인터넷에서 놀이처럼 번지고 있지만 그냥 웃어넘길 수 없습니다. 여기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 투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2030 수저론의 실체를 취재했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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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김씨가 구매한 2000만원짜리 명품 시계.

# 김의환(가명·28)씨는 3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벌써 두 번 낙방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워낙 든든한 가정환경 덕분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한 중소기업 대표이자 또 다른 기업의 고문. 김씨 집안의 연소득은 20억원이 넘는다. 김씨를 비롯한 삼남매 모두 돈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 각각 본인 명의 주식도 10억원씩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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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이씨는 데이트 장소로 호텔 레스토랑을 애용한다.

 # 최성진(가명·28)씨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한 뒤 집을 나갔다. 최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다. 이후 20년간 최씨는 어머니와 단둘이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연소득은 2500만원 선.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최씨는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 대신 국립대를 택했다. 대출을 받아 대학등록금을 댔다. 지금은 마이너스 통장을 떠안고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빚이 늘어만 간다.

 동갑내기에 같은 공무원시험 준비생. 하지만 김씨와 최씨가 약 30년간 살아온 삶은 하늘과 땅 차이다. 김씨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분류를 따르면, 김씨는 이른바 ‘금수저’다. 요즘 2030 청춘들은 부모를 잘 만나 호의호식하는 이들을 그렇게 부른다.

 반면 최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흙수저’에 해당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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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최씨가 공부하는 40㎡ 짜리 다세대주택.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30 수저계급론’이 유행하고 있다. 2030 청춘들이 부모님의 연소득과 가정환경 등 출신 배경을 ‘수저’로 빗대 표현하는 방식이다. 수저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라는 영어식 표현에서 비롯됐다. 과거 유럽 귀족층에서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대신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 풍습을 빗댄 말이다. 이 말에 빗대 인터넷 커뮤니티엔 집안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분류된 표가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돌고 있는 ‘수저계급론’은 이런 식이다. 자산 2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원 이상일 경우 ‘금수저’, 자산 1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1억원 이상일 경우 ‘은수저’, 자산 5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원 이상일 경우 ‘동수저’ 등으로 나뉜다. 흙수저는 여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우다. 구체적으로는 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원 미만인 가정 출신이다.

 ‘흙수저 빙고게임’도 유행하고 있다. 가로 다섯 칸, 세로 다섯 칸짜리 표에 흙수저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가정환경이 쓰여 있다. ‘여름에 에어컨을 잘 안 틀거나 에어컨 자체가 없음’ ‘TV가 브라운관이거나 30인치 이하 평면TV’ 등 가재도구의 유무나 상태를 따지는 칸부터 ‘고기를 요리할 때 물에 넣고 끓이는 요리로 해 먹음’ ‘부모님이 정기 건강검진 안 받음’ 등 구체적인 생활양식이 기재돼 있는 칸까지 해당 사항도 다양하다. 표 안 해당 사항에 동그라미를 더 많이 칠수록 흙수저에 가깝다. 회사원 장영석(28·서울 신당동)씨는 “친구들 사이에선 빙고 동그라미 개수가 10개를 넘으면 서민도 아닌 하층민이라는 농담까지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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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젊은 세대는 이토록 가혹한 ‘등급 분류’를 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88만원 세대’ ‘3포세대’ 등으로 불리며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다수의 2030 청춘들이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자조 끝에 수저계급론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날수록 고급 교육과 다양한 어학 능력을 갖춰 취업까지 유리한 반면 가정환경이 어려우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취직이 어렵고 학자금 대출 등으로 ‘하루하루 빚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취업준비생 민윤우(27·여)씨는 “요새 취업하려면 해외 연수·인턴·면접 등 거쳐야 하는 단계가 늘어났고, 자연히 단계마다 탈락하는 청년도 많다”며 “부모님의 든든한 재력이 없다면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3월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교육 수준이 높고, 이는 질 좋은 취업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소득 1분위(월 가구소득 212만2600원 이하) 가구의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는 비율(15.32%)에 비해 소득 5분위(월 가구소득 292만6900원 이하) 학생의 대졸 비율(63.08%)이 약 4배 높았다. 해외 연수를 가는 비율도 1분위 학생(3.63%)보다 5분위 학생(13.85%)이 마찬가지로 4배 높다.

 수저계급론이 유행하면서 ‘왜 가정환경을 등급별로 나누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대학생 이요한(21·연세대 경영학)씨는 “부모님을 ‘수저’라는 조건에 빗대 말하는 세태가 불편하다”며 “빙고게임에 묘사된 (부모님의) 모습들이 마치 부모님을 비하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선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계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심리가 팽배하다”며 “수저계급론은 단순한 자조적 놀이가 아니라 현실을 뼈아프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혜경·윤정민·박병현 기자 wisel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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