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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에 쌓은 벽돌 30만 장, 유리 건물 사이에 느낌표를 찍다

‘원앤원 63.5’ 빌딩 설계한 건축가 황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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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황두진이 지난 22일 통의동 사무실 ‘목련원’ 지하1층에서 자신이 설계한 작품의 미니어처를 앞에 두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한의원 ‘춘원당’ 신관 건물, 통인시장 입구의 ‘아트게이트’,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의 훈련장 겸 숙소를 축소한 미니어처.

한국 경제 상징인 강남, 건물도 특별해야죠
엇갈린 벽돌 구멍 사이로 빛 … 한옥서 힌트
유리 건물, 짓기 쉽지만 개성 살리긴 어려워

한옥 지으며 빌딩도 설계하는 동네 건축가
쾌적한 생활을 위한 전통 건축 개량도 나서
동네의 색깔을 포착하는 게 건축가의 역할



강남대로를 지나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갈색 벽돌 건물이 있다. 강남 교보문고 인근에 있는 15층 건물 ‘원앤원 63.5’이다. 유리 건물들 사이에 있어 더욱 눈에 띈다. 벽돌 30만 장을 쌓아 만든 건물로 올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원앤원 63.5를 설계한 황두진(52)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테헤란로·삼성로와 더불어 한국 경제의 상징인 강남대로에 세워지는 건물인 만큼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강남엔 유리 건물이 많은데 그와 다른 건물이 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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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원앤원 63.5’. 건물 전체를 갈색 벽돌로 마감해 벽돌이 지닌 부드러운 느낌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도록 했다.[사진 김용관]

‘동네 건축가’. 황 대표는 14년 전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명성있는 건축상 수상 경력을 내걸고 거창하게 시작하는 건축가들과 자신을 구분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자살 행위’라며 그를 말렸다. “그렇게 표현하면 누가 너를 진지하게 생각하느냐”는 만류에 황 대표는 “동네를 넓히면 된다”고 자신했다.

그의 시작은 통의동 ‘동네 건축가’였다. 2001년 출판사 ‘열린책들’ 사옥 신축을 맡으며 통의동의 매력에 빠진 그는 ‘통의동 이야기’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듬해엔 사무실 겸 자택 ‘목련원’을 통의동에 짓고 터를 잡았다. 그는 통의동 반경 2㎞에 서른 개가 넘는 건물을 지었다. 가회헌·애지헌 등 유명 한옥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2006년 지은 가회헌으로 2007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한옥을 현대 주거 문화의 일부로 재탄생시키는 건축가로 명성을 쌓았다. 이제 그의 ‘동네’는 통의동을 넘어 전국으로 넓어졌다.

 한옥 건축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본래 전공은 현대건축이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 회사에 들어가 일하다가 29세에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을 할수록 더하는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미국 예일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김태수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다가 1997년 한국 지사장을 맡아 귀국했다. 김태수는 과천현대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다. 외환위기 여파로 이 사무소는 문을 닫았다. 2000년 그는 서초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 황 대표는 “본능적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처음엔 일거리가 적었다. 건축계에서 입지를 세우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원래 단체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건축계 중요한 행사나 모임에 안 가니 더 이상 부르지 않더군요. 결과적으로 외로워졌어요.”

힘들었던 시절 그가 선택한 방법은 걷기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황 대표가 서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됐다. 그렇게 바라본 서울과 자신의 역사의 교차점을 찾아 2005년엔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라는 책을 냈다. 2009년에는 서울 북촌에 다섯 채의 현대 한옥을 짓는 과정을 담은 책 『한옥이 돌아왔다』를 펴냈다. 올해 말에는 주상복합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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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애지헌’. 1936년 지어진 13평 한옥을 신혼부부 살림집으로 개조했다. 침실·화장실을 제외하고 집 전체를 열린 공간으로 구성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사진 박영채]

-건축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진로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서울대 공대는 2학년 올라가면서 전공을 정했다. 입학생을 17개 반으로 나눠 공대에 있던 17개 과와 연결해 줬는데 내가 있던 반이 건축과랑 연결됐다. 그래서 지도교수인 건축과 김진균 교수님을 뵈러 건축학과 사무실이라는 곳에 처음 갔다. 지금도 건축학과 사무실 복도에 발을 들여놨던 순간이 생생하다. 사방에 도면과 모형이 있는데 ‘내가 찾던 게 이거였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과대학에 이렇게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과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네 인생은 네 책임’이라고 강조하셨다. 지금도 제일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두 분 모두 이북에서 오셔서 그런지 독립심이 강하셨다. 그걸 자식들에게도 강조하셨다. 어릴 때 공부를 안 하고 놀면 아버지는 ‘이게 네 문제인 건 알겠니’라고만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났다.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결국 내 문제이자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대한민국 건축가치고 한옥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한옥을 지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이 북촌이 외국인들의 텃밭이 되는 것 같아 아쉽다며 한옥을 의뢰했다. 처음엔 ‘그걸 내가 왜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한옥을 건축적으로 평가하려면 직접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느냐. 그러니까 한옥이 건축적으로 발전이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해가며 일했다. 한옥 세 채를 지으면서 한옥이 건축의 큰 트렌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책도 냈다. 지금까지 한옥을 열 채 넘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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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춘원당 한의원’ 신관. 1847년 설립된 유서 깊은 한의원 이다. 한의학의 과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탕전실 등을 투명하게 노출했다.[사진 박영채]

-한옥과 현대건축은 어떤 차이가 있나.

“한옥에는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행복해하고 비워놓으면 시무룩해지는 느낌이다. 집은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에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한옥을 문화재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현대건축의 한 갈래로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예를 들어 대청마루에 온수 코일을 깔아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고, 다락을 공부방으로 꾸미는 식이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풍성한 기하학의 세계가 한옥에 들어있다. 한옥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계절에 맞춰 집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문과 창을 여러 방식으로 여닫음으로써 그게 가능해진다. 아파트에는 그런 게 없다. 흔히 아파트에서 사는 걸 상자 같은 집에 산다고 하는데, 그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표현인 거다. 풍성한 기하학의 세계에서 살았던 후손들이니 이런 집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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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구단의 복합 훈련시설. 중심에 있는 배구 코트를 다양한 훈련시설과 숙소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사진 박영채]

-빌딩 ‘원앤원 63.5’을 벽돌로 지은 이유는.

“강남에는 유리로 된 건물이 많다. 유리는 설계하기 쉽고 짓기도 쉬운 재료다. 그러나 분명 가려 써야 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직사열을 막아내는 성능이 떨어지는 데다 개성을 살리기 어렵다.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강남대로에 세워지는 건물이니만큼 도시 구성에 기여할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의 앞쪽 면에는 벽돌을 엇갈리게 쌓아 작은 구멍들을 만들었다. 다공성 벽돌벽이라고 부르는 이 벽이 햇빛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한옥 처마가 빛을 걸러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옥의 처마를 잘게 쪼개 수직으로 배열했다. 최상층엔 ㄷ자 한옥의 중정(마당 한가운데)과 같은 옥상정원을 만들었다.”

-강남의 건축과 강북의 건축이 다른가.

“강남은 근린주구이론이라는 서구 도시계획이론에 따라 설계됐다. 도심이었던 강북의 배후 주거지로 계획됐다. 강남이 대로로 구성돼 있으면서도 안쪽에는 굉장히 좁은 길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로로 둘러싸인 블록 안에 사람들이 살고, 그 안에 학교가 하나씩 있는 구조다. 그래서 강남은 차를 타고 가며 볼 때와 블록 안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신사동·논현동 등을 봐도 대로 안쪽은 강북과 비슷하다. 차가 들어갔다 나오기 어려울 정도의 골목길도 많다. 주거 지역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대로 안쪽 길은 4~5층 높이의 건물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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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동 ‘무지개떡’ 건물. 1층과 2층 절반은 카페, 2층 나머지 절반과 3층은 주거 공간이다. 다공성 벽면을 건물 곳곳에 설치해 햇살이 들어오게 했다.[사진 박영채]

-건축가 황두진이 생각하는 좋은 도시란.

“좋은 도시는 적당한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출퇴근할 수 있는 도시다. 그러려면 집과 직장의 거리가 20분 거리로 떨어져 있는 게 바람직하다. 그 정도면 하루에 필요한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고 퇴근길에 장을 볼 수도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려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서울에선 ‘저녁이 있는 삶’이 불가능하다. 하루에 두 번씩 어마어마한 인구가 다른 지역 사이를 이동하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도시 구조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시루떡 도시를 무지개떡 도시로 바꾸면 된다. 층마다 각각 다른 기능을 갖춘 건물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대부분 건물이 하나의 기능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무지개떡 도시가 되려면 4~5층 정도의 주상복합 건물이 늘어나야 한다. 우리는 흔히 주상복합이라고 하면 타워팰리스를 생각하는데 이건 주상복합이 아니다. 상업지역에 아파트를 짓기 위한 일종의 부동산 상품이다. 본래 주상복합은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가까이 있는 게 특징이다. 반드시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출퇴근 거리가 짧아지는 게 주상복합의 본래 의의다. 강남도 대로 안쪽에 이런 건물을 많이 지으면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결합해야 한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대부분의 다세대 다가구 주택 1층에는 사람이 거주한다. 이걸 바꿔야 한다. 1층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데다 보안 문제 때문에 창에 방범창을 달아야 한다. 집 안에서 보면 감옥 같다. 어차피 1층은 인기가 없으니 1층에 상업시설이 들어가고, 위층에 사람이 사는 주상복합 건물이면 모두 만족할 수 있다. 누구나 꿈꾸는 마당도 실현할 수 있다. 서울 시내 옥상 면적을 다 더해 서울시 가구 수로 나누면 한 가구당 14평 정도가 돌아간다더라. 14평이면 충분한 크기의 마당이다. 옥상을 마당으로 사용하면 된다. 위로 몇 층만 올라가면 지상보다 소음이 훨씬 덜하고 경치도 좋다.”

-현재의 서울을 평가한다면.

“서울보다 자연이 아름다운 도시는 물론 있다. 서울 못지않은 대도시도 많고 역사가 오래된 곳도 있다. 그런데 자연·대도시·역사 세 가지를 합하면 서울이 단연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단일 종목에선 우승자가 아닐 수 있으나 종합격투기로 보면 독특하면서 유일하다. 실제 해외 매체와 인터뷰할 때 세 가지를 다 더했을 때 서울 같은 도시가 있느냐고 반문하면 대부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리스 아테네는 서울보다 오래됐지만 서울의 한 구만한 규모니까 대도시가 아니다. 스위스 역시 멋진 자연이 있지만 대도시는 아니다. 그렇게 따져보면 대도시 중 일상에 자연이 있고, 역사도 있는 도시는 서울만한 곳이 없다. 나는 서울을 걸으며 몸으로 느끼고 배웠다. 시간 날 때마다 걷는데 1년에 두 번 정도는 서울 성곽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지금까지 스무 번 넘게 다녀왔는데 매번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서울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은 도시 생태학적으로 보면 흥미로운 곳이다. 대규모 생산시설은 도심 밖으로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중소 생산시설이 남아있다. 얼마 전 한 해외 매체에 서울이 소개됐는데 제목이 ‘서울 안의 100개의 도시’였다. 인상적이었다. 서울은 수많은 이질적 커뮤니티가 모여있는 곳이다. 도시 중간중간에 산이 있어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동네로 구성된 도시다. 분산돼 있고 느슨하지만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생태학적 미학의 도시가 아닐까 싶다. 그 미학을 포착해 만들어 가는 게 건축가로서 내 역할인 것 같다. 이제 한국도 건축에 더 투자할 때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주어진 목표를 빨리 달성하는 데 주력했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건축이 짓고 다시 밀어버리는 일의 반복이었다며 앞으로는 정말 신경 써서 의미 있게 건물을 지어야 한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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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