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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건:텔링] CCTV 200대 따돌린 편의점 강도, 오른발 딱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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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다. 눈앞에 깜빡이는 폐쇄회로TV(CCTV) 모니터 불빛이 시리다. 강도가 든 편의점 일대를 수색하고 CCTV도 샅샅이 뒤졌지만 용의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CCTV 사각지대로 다니며 범행
지그재그 움직이거나 노숙자 행세
28세 막내 여경, 영상서 발 포착
범인 걷는 각도 분석해 행방 추적
찜질방 들어가는 장면 찾아내
체포 순간 범인 “어떻게 절 찾았죠”


나는 지난 7월 여경으로선 처음으로 관악경찰서 강력계에 배치된 막내 형사다. 이런 일이 익숙지 않지만 내색할 순 없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팀원들도 지쳐 보였다. 가슴이 울렁거려 심호흡을 했다. 곽중석 강력5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내 한복판에서 어디로 증발한 거야. 유령이 아니고서야….” 내 머릿속에도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처음엔 단순한 강도 사건인 줄 알았다. 추석을 앞두고 거리마저 조용히 잠든 9월 27일 오전 2시20분. 서울 관악구의 한 편의점에 강도가 들이닥쳤다. 검은 청바지에 흰 셔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는 다짜고짜 아르바이트생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칼을 들이밀었다. “사업 실패로 다 망했어. 앞에 트럭을 세워놨으니 당장 돈통을 열어!”

 날카로운 흉기, 흥분한 채 거친 욕설을 내뱉는 모습은 한눈에도 위험한 범죄자였다. 가방에 돈을 쓸어 담던 그는 40대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서자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고를 받자마자 강력5팀 동료들과 인근 지구대원들이 총출동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명절에 흉기를 든 강도가 시민을 해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자신은 있었다. 신속하게 일대 수색과 CCTV를 확인한 터였다. 사건 장소도 시내 한복판. 대부분 편의점 강도는 시내 곳곳에 거미줄처럼 퍼진 CCTV망에 걸린다. 더욱이 범행 장소 인근에만 500여 대의 CCTV가 분산, 설치돼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보안장비를 무력화시키는 영화 속 범죄자처럼 CCTV를 비웃듯 따돌리고 있었다. CCTV 사각지대만 골라내 교묘하게 지그재그로 거리를 활보했다. 어쩔 수 없이 CCTV 앞을 지나칠 땐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갔다. 카메라의 반경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촬영 범위 직전에 다다르면 발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비켜갔다.

  수색에 돌입했지만 도무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사에 혼선이 온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배우 뺨치는 연기로 연막을 쳤다. 첫 범행 이후 1시간 반이 지날 무렵, 그는 다른 편의점 에서 CCTV 사각지대로 직원을 조용히 불러냈다. 흉기를 숨기고 옷을 갈아입은 뒤였다. “내가 돈을 담아올 테니 당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훔쳐간 걸로 해요. 절반을 줄게요.” 직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직원 말만 듣고는 첫 번째 용의자와 동일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진술대로라면 말투나 행색, 옷차림까지 달랐다. 그는 수사에 혼선을 주려 CCTV 앞에서 고의로 노숙자 행세까지 했다. 땅에 떨어진 음료를 주워 먹는가 하면 쓰레기를 뒤져 누군가 버리고 간 담배까지 피웠다. CCTV를 피해 동작구 사당동의 한 건물로 들어가 무려 29시간 동안 머물러 있기까지 했다.

 그의 행방은 관악보건소 부근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당연히 예상 도주 경로도 넓어졌다. 추적 범위가 넓어진다는 건 그만큼 검거 가능성도 희박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범인과 비슷한 옷차림, 체격의 남성들이 한두 명이 아니게 되니까. 가슴이 답답했다.

 바로 그때 모니터 한구석에서 사람 형체 같은 게 지나갔다. 편의점 내부 CCTV였지만 유리창 밖으로 움직임이 포착된 거였다. 화면을 반복해서 돌려봤다. 성인 남자의 하체, 용의자로 추정되는 옷과 오른발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용의자가 CCTV에 포착됐어요!”

 사라진 용의자를 재추적한 단서가 된 건 유리창 밖에 희미하게 포착된 새끼손톱 크기의 형체였다. 그도 설마 건물 내부 CCTV를 통해 외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위치상 45도 상단에 있는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간 게 분명했다. 우리는 그 경로를 중심으로 다시 추적에 들어갔다. 범행 전 CCTV를 뒤지던 중 근처에서 용의자와 비슷한 남성이 찜질방에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찜질방 결제 내역을 조회해 신원을 특정했다. 그가 도주한 거리만 약 30㎞, 따돌린 CCTV만 200여 대에 달했다.

 사건 발생 11일 뒤 경기도 안산의 은신처를 찾아내 방문을 두드리는 순간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최모(31)씨가 문을 열었다.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던 그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대체 절 어떻게 찾은 거예요?” 대답 대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직접 수갑을 채웠다.

 최씨는 전직 보안업체 직원이었다. 서울 시내 CCTV 위치와 촬영 범위 등을 한눈에 꿰고 있었다. 이후 휴대전화 대리점과 심부름센터 등을 운영했으나 사업에 실패해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는 추석 명절 전날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에 범행을 결심했다. “사업이 잘 풀린다. 고향에 내려가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부모님을 안심시켰던 게 생각나서였다고 한다. “저에게 CCTV는 ‘바보 상자’에 불과했어요.” 신출귀몰하게 CCTV를 따돌렸던 그는 하지만 모든 바보 상자를 피해가진 못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사건을 취재한 결과와 수사 내용 등을 토대로 관악경찰서 강력5팀 박민경(28) 경장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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