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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임기 중반 대통령의 어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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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쟁 후보와 500만 표 이상이라는 역대 선거에서 가장 큰 표 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었지만 재임 중에는 낮은 지지율로 고생을 했다. 임기 초반에 터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거의 100일 가까이 국정을 마비시키다시피 했고 지지율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에도 미네르바 사건과 같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역시 지지도 하락에 영향을 주었다. 이 무렵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20~3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임기 3년차를 맞아 50% 수준으로 상승했다.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임기 중반의 지지도가 초반보다 높아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지부진하던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아진 것은 ‘중도 실용’으로의 정책 전환 때문이었다.

 임기 초 친기업적 이미지를 주었던 이 대통령은 임기 중반 ‘중도 실용, 친(親)서민’을 새로운 국정철학으로 내세우며 자유와 평등, 민주화와 산업화, 성장과 복지, 민족과 세계를 모두 상생의 가치로 보자고 역설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를 설치하고 소득, 고용, 교육, 주거, 안전 등 민생 5대 지표도 제시했다. 이런 정책 기조의 변화가 낮았던 지지도를 끌어올렸고, 자칫 정치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었던 임기 중반의 통치 기반을 강화했다. 지난 대통령의 이야기를 길게 언급한 것은 요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지켜보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재임 시점에 있던 전직 대통령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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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교과서 국정화 건은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아무리 순수하고 또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균형 있는 시각에서 살펴보자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화를 해야 하느냐는 방법론을 두고 이견이 생겨났고,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이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의는 정파적·이념적 대결로 변해버렸다. 국정화에 찬성하면 우파, 국정화에 반대하면 좌파로 몰리게 된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차분한 논의에 기초한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의 저술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박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 교과서 논쟁은 이미 배가 산으로 가 버린 격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이 더욱 심각해 보이는 것은 임기 후반부로 접어든 박 대통령에게 이러한 정파적·이념적 분열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임 이 대통령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고 또 견고한 지지층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임제하에서 임기 후반의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나 지지의 강도는 아무래도 이전에 비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 역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야당이 이기면 국회와의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고 여당이 이기더라도 ‘차기’에 대한 고려로 총선 후 대통령과 차별화하려고 들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박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정파적 색채를 약화시키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그동안 추진해 온 각종 경제정책과 개혁 정책이 제대로 된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되살아난 것도 임기 중반 정파적이나 이념적 갈등에서 벗어난 통합형·합의형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박 대통령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간에, 이제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에 이념적·정파적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슈가 되었다.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정파 간 이념 대결의 양상으로 변질되면서 박 대통령 역시 적지 않은 국민에게 ‘보수의 대통령’과 같이 비쳐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적 논란이 가열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이전에 비해 하락했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여론도 반대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정파 간 갈등을 불러오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책은 애당초 그 뜻이 순수한 것이었다고 해도, 특히 임기 중반의 대통령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많은 국민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보다 더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선거 때 약속한 국민행복시대, 창조경제시대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정파적 갈등과 이념적 대립으로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통치력에도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균형 있는 역사 평가에 대한 문제는 장기적인 과제로 설정해 역사학·정치학·경제학 등 관련 학계에 맡기고,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은 이제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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