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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화가 석창우의 새 삶


석창우 화가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있었다.

‘10월이 되면 절단된 팔의 손과 손목 팔꿈치가 몸살날 때처럼 아프다.

환상통은 통증의 변화가 심하지만 10월의 통증은 같은 아프기로 지속성이 있다.

손바닥 전체가 망치로 맞은 것처럼 아프고

손가락 하나하나도 그렇게 아프다.

팔꿈치 전체도 몸살 나서 쑤시는 것과 같이 아프다.

(중략)

올해 10월 29일에는 꼭 생일처럼 차려 먹어야 하는디…’

그의 글을 한참 곱씹었다.

손, 손목, 손바닥, 손가락, 팔꿈치란 용어, 낯설었다.

일반인이라면 대수롭지 않았을 터.
.
하지만 그는 팔이 없다.

팔이 없으니 그에겐 없는 것들이다.

더구나 그것들이 아프다고 했다.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안부도 여쭐 겸 전화를 했다.

“많이 아프세요?”
“이 맘이면 항상 그래.”
“그런데 손, 손바닥, 손가락이 아프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아파. 그래서 환상 통증이지.

특히 붓을 잡는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그렇게 아프네.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아프다는 얘기에 말문이 막혔다.

그를 처음 본 건 TV에서다.

양팔이 없는 그가 갈고리에 붓을 꽂고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

그 모습도 감동이거니와 그의 작품에 빨려들었다.

인터넷을 뒤져 작품을 찾아보았다.

온몸으로 그려 낸 그의 그림에 숨이 멎었다.

언제고 꼭 만나 사진을 찍어야 할 사람으로 꼽아 놓았다.

그리고 이태 전 어느 날, 아홉 번 덖음차의 명인 묘덕스님이 잠깐 보자고 했다.

마침 가까운 곳인데다 잠깐 시간이 난 터라 달려갔다.

그곳에 난데없이 석창우 화가가 있었다.

“석창우 화가의 퍼포먼스가 있는데 도와주러 왔어요. 권 기자도 꼭 봐야 할 거 같아 연락했어요.”

참 인연 묘하다 싶었다.

잠깐 시간 난 터라 그의 퍼포먼스를 지켜 볼 겨를이 없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만 나누었다.

오래지않아 초상화를 찍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다.

혼자 있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1984년 10월 29일, 2만2900볼트 고압 전류에 감전되었어요.
일주일 후에 깨어나 보니 두 팔과 두 발가락이 없어졌습디다.
그나마 두 다리는 남아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사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표정은 싱글벙글 이었다.

“1년 반을 병원에서 보냈죠. 양팔을 절단하고 13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했습니다.
어느 날, 4살 된 아들이 그림을 그려 달라 해서 새를 그려줬어요.
그것을 본 아내가 그림을 배워 보라고 권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새 삶을 그렇게 얻게 된 겁니다.”

그는 지금의 삶을 새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두 팔 다 가진 30년 전의 나, 두 팔 없는 지금의 나, 전혀 바꿀 맘 없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의수를 벗겨 내고, 옷을 벗긴 후, 다시 옷을 입히고, 의수를 온몸에 차는 일,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졸지에 맡게 된 초보 도우미 역할, 시키는 대로 해도 어긋나기 일쑤였다.

그 다음은 사진의 포즈가 문제였다.

당시 진행하던 초상화 시리즈는 얼굴 클로즈업으로 삶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얼굴과 갈고리를 한 번에 클로즈업으로 찍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그 포즈를 할 수가 없었다.

의수를 팔처럼 들어서 접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 동작 하나 하나도 억지로 만들어 줘야 했다.

예상했던 시간, 예상했던 상황, 예상했던 계획, 그 모든 게 예상을 뛰어 넘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식사를 함께했다.

여기서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오른쪽 옆자리에 앉아야 했다.

마주보는 식사는 의미 없었다.

밥, 반찬, 국물, 막걸리 한잔, 모두 다 옆에서 거들어야 했다.

심지어 화장실 볼 일도….

모든 게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모든 사람의 손이 다 내 손이라 여깁니다. 지금까지 여러 손들이 잘 도와줘서 기분 좋게 이
용하고 있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정작 불편한 건 나였지 그가 아니었다.

그는 새 삶이라고 했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새 삶인 게다.

두 팔 다 가졌던 삶에서 두 팔 없는 삶으로 다시 태어난 10월 29일,

석창우 화가에겐 새 삶의 생일인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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