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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 회동은 원초적 불평등 … 대통령과 합의 도출 어려워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108분간의 여야 지도부 5자회동 후 청와대는 “국정화 부문에선 의견을 달리했다”고 밝힌 반면 문 대표는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중앙포토]



국정교과서 대치 정국에서 성사된 22일 ‘청와대 5자회동’이 허탈하게 끝났다. 회담 전부터 “나쁜 합의를 하느니 좋은 결렬을 택하겠다”(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말이 공공연히 돌아 결말이 예견됐지만 꼬인 정국에 생채기만 남기고 말았다. 회담 내용보다 정작 국민의 뇌리에 박힌 건 “그때 왜 저에게 ‘그년’ ‘이년’ 하셨어요?”란 박근혜 대통령의 서늘한 농담뿐이었다.



청와대 ‘5자회동’에 담긴 정치학

이 와중에도 여야는 “소통 의지를 각인시켰다” “할 말은 속 시원히 했다”며 득실 계산에만 분주하다. 이럴 거면 왜 굳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만났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혹시 뻔히 결렬될 것을 알면서도 단지 정치적 쇼를 위해? 이른바 ‘영수(領袖)회담 무용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 들어 ‘영수회담’ 사라져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시키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과거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꽉 막힌 정국을 푸는 최후의 보루였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담판이다. 이 회동에서 의약분업 파동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996년 4월 김영삼 대통령-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영수회담도 신한국당 노동법 날치기 처리 이후 냉각된 정국을 수습하는 전환점이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영수회담, 즉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 간의 단독회담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여당 지도부가 동석하는 3자회동, 5자회동 등 ‘다자(多者)회동’이었다. 지금껏 다섯차례 열렸다. “영수회담이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이유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했던 시절이라면 영수회담이 유의미하겠지만 지금은 여당 대표를 따로 선출하지 않는가. 대통령과 야당 대표만 만난다면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물밑 정치가 활발했던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엔 각각 10차례·7차례의 영수회담이 이뤄졌다. 반면 당·청 분리가 강조되면서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선 영수회담이 2차례?3차례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밀실 정치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영수회담을 꺼리는 것일까.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단독회담을 하는 게 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한 듯싶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영수회담은 백번 해도 야당 총재가 남는 장사’라는 게 여의도의 정설이다. 또한 박 대통령의 과거 경험도 한몫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2005년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대연정’을 의제로 영수회담을 했지만, 박 대표가 “더 이상 그런 얘기 꺼내지 마시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이로 인해 노 대통령은 정치적 타격을 받고 말았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다자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협상을 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원수로서 ‘당부’를 할 뿐이다. 실질적인 협의는 여야 지도부가 국회에 돌아가서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의식엔 ‘정치’보단 ‘통치’라는 개념이 더 지배적”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회동’에선 여러 명이 등장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뿐 구체적인 합의를 하기엔 불가능하다란 지적도 있다. 김형준 교수는 “합의를 하려면 밀도 있는 대화가 필수다. 또한 양측이 동등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 회동은 결국 2대 1, 3대 2의 불평등 구조다. 합의를 도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비밀이 없다” … 사전 조율 힘들어져 일각에선 “야당의 선명성 경쟁으로 인해 합의해 주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표적 예가 2008년 9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영수회담이다. 국제금융위기에 맞서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합의문을 발표했고, 청와대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란 반응까지 내놓았다. 정작 정 대표는 당내에서 “들러리 설 일 있는가” “둘 사이 밀약이 있었나”란 거센 후 폭풍에 시달렸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그때부터 대통령과 섣불리 악수하느니 차라리 판을 깨고 나오는 게 낫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생겼다”고 전했다.



영수회담이든 다자회동이든 사전 조율은 필수다. 하지만 이번엔 의제 설정은 물론 3자냐, 5자냐를 놓고 샅바싸움이 팽팽했고, 대변인 동석 여부를 놓고도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조율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질 만큼 정치 풍토가 살벌해졌다”고 일갈했다. 그는 “여야는 물론 당·청 간에도 교섭이 어렵다. 말을 건네는 순간, 어떤 비밀도 없이 바로 새어 나간다. 중간 실무자들이 말을 왜곡하거나 편집하는 일도 잦다. 심지어 ‘이 얘기는 누구한테도 해선 안 된다’란 얘기까지 퍼질 정도다. 막후에서 전혀 사전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실제 무대에 오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은 “사실상 정치가 실종됐다”고 평했다. 그는 “정치란 기본적으로 ‘딜(deal)’이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런데 주고받는 것은 타락, 타협은 굴종으로 낙인찍는다. 그저 격렬하게 대립하며 자기 몫을 잃지 않으려는 적대적 공생만이 고착됐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대국민 설득 직접 나서야그렇다면 영수회담이건 청와대 회동이건 이젠 무의미해진 걸까. 김만흠 원장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려면 둘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양보나 설득이다. 양보할 뜻이 없다면 국정교과서가 왜 지금 필요한지 새로운 논리를 내세워야 했는데 박 대통령은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영수회담은 어떨까.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높기 때문에 대통령이 상대방 당수와 단독회담을 하고, 전격 합의를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며 특별한 의미도 없다”고 전했다. 다만 “특정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대국민 설득 작업에 대통령이 직접 나선다. 대통령의 권위는 여론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정교과서가 그토록 절실하다면 박 대통령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만 지시해선 안 된다는 조언이다.



5자회동이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청와대도 여야도 나름 손해는 보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외견상 대화에 나섰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파했으며 ‘집토끼’ 단속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형준 교수는 “누구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진정한 리더 아닌가”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세다는 다섯 명이 기껏 모여선, 해결은커녕 갈등만 증폭시켰다. 대통령은 물론이며 정치 리더십의 약화를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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