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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傳(6)] 장성택과 최용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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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북한 정권수립 65주년 열병식에서 사열을 받고 있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 최용해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가운데)과 장성택 당 행정부장(왼쪽)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 조선중앙 TV캡쳐]

2010년에 다시 만난 장성택과 최용해는 김정은 정권을 준비해야 했다. 장성택은 김정일 때부터 맡아왔던 경제를, 최용해는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인민군을 맡게 됐다. 최용해는 2010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대장’ 에 임명됐다. 그리고 2년 뒤 사실상 인민군을 통제하는 총정치국장으로 승진한다.

김정일이 생전에 인민군을 최용해에게 맡긴 것은 김정은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인민군을 장악해라’는 뜻이었다. 최용해는 항일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의 후광으로 오래전부터 인민군의 노장들과 인연이 있었다. 따라서 그의 군부 통제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군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대장 계급장을 달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니 불만을 가진 군인들도 있었다. 그가 지난해 4월 해임될 때도 그 영향이 컸다.

장성택과 최용해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것이 일반경제와 군경제의 충돌이었다. 장성택은 2012년 6월 일반경제의 개선을 위해 농장과 공장의 생산량 가운데 30%를 생산자가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6.28’ 조치를 도입했다. 장성택이 선호했던 중국식 개혁의 북한판이었다. 이 조치로 인민군은 ‘쏠쏠한 재미’가 빼앗겼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이후 인민군은 농장과 공장에서 수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인민군의 수익이 대폭 감소하면서 군경제가 타격을 입자 최용해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영호 군 총참모장이 항의하며 나섰다가 2012년 7월에 숙청을 당했고 최용해가 군부를 대표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장성택은 이영호 총참모장이 제거되자 자기의 세상이나 된 듯 인민군이 독점했던 외화벌이 사업과 지하자원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장성택은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장성택의 거침없는 행보에 최용해는 과거의 인연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지만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면 할 말은 해야 했다. 특히 지하자원은 총정치국장이 관할하는 부분이 많았다. 최용해는 장성택의 요청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당시 최용해는 2013년 초반부터 김정은의 지시로 마식령 스키장에 꽂혀 있었다. 김정은은 2013년 5월, 8월, 11월에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했고 12월 30일 최고급 밍크코트를 입고 개장식에 갈 정도로 자신의 기념비적 사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용해는 장성택의 요청을 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권력에 취해 있는 장성택을 꼴보기 싫어했다. 총정치국장이 도와주지 않으면 지하자원에 손 댈 수 없다. 따라서 장성택은 인민군의 반대를 무시하고 ‘임의로’ 지하자원에 손댔다. 그의 사형 판결문에 나오는 지하자원에 대한 죄가 추가되는 과정이다.

장성택이 처형되는 과정에서 최용해도 ‘처형 쓰나미’에 휩쓸릴 뻔 했지만 김정은의 도움으로 피할 수 있었다. [장성택傳(5)] 참조. 최용해는 장성택의 몰락을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같이 술 마시고 토론하고 아픔을 나누기도 했지만, 권력·돈 앞에서는 부모·형제도 싸우는데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야… (끝)

다음은 [장성택傳(7)] 장성택과 이설주편입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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