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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못 잊은 예천 고향집, 북녘 형이 즉석에서 그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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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북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열린 단체 상봉에서 북측 이한식(84)씨가 남측 막내 동생 이종인(55)씨에게 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종인씨는 큰형인 한식씨에게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다. [사진 JTBC 방송 캡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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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씨는 경북 예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던 초가집을 그려 줬다. 종인씨는 “형님을 또 언제 볼지 모르지만 그림을 보며 형님을 생각하겠다”고 했다. [사진 JTBC 방송 캡처, 뉴시스]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구나~’.

하룻밤 새 더 애틋해진 혈육
팔순 아버지 남한서 온 딸 손 꼭 쥐고
‘애수의 소야곡’ 등 불러주며 눈물

 21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선 북측 이흥종(88) 할아버지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60여 년 만에 만나는 딸 정숙(68)씨에게 불러 주는 노래였다. 정숙씨는 “이번에 돌아가면 아버지 목소리를 기억 못한다”며 남측 방송 카메라 마이크를 아버지에게 댔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애창곡 ‘애수의 소야곡’ ‘꿈꾸는 백마강’을 불렀다. 꿈꾸는 백마강은 충남 예산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다. 아버지는 그렇게 딸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애창곡 3곡을 10분간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와 노래를 듣는 딸 모두 눈물을 흘렸다. 정숙씨가 노래를 따라 부르자 아버지는 "어떻게 이 노래를 아냐”고 묻자 정숙씨는 "아버지가 부른 노래는 다 알아”라고 대답했다.

 금강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이산가족들은 전날보다 한층 차분한 모습으로 가족·친척들과 재회했다. 오전에는 2시간 동안 비공개로 호텔 방에서 개별 상봉을 했다. 이 자리에선 각자 준비한 선물들을 교환하며 혈육의 정을 나눴다.

 북측 이한식(84) 할아버지는 남측 막내 동생 종인(55)씨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종인씨가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는 40분 동안 경북 예천 옛 고향집을 종이에 담았다. 초가집 마루의 무늬·댓돌·담벼락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완성된 그림을 본 남측 사촌 동생 이천식(76)씨가 “예전에 살던 집이랑 똑같네”라고 경탄했다. 이 할아버지는 완성된 그림에 ‘상봉의 뜻깊은 시각에 그린 이 그림을 종인 동생에게 선물한다’고 적었다. 그림을 받아 든 종인씨는 “제가 형님을 또 언제 볼지 모르지만 이 그림을 보면서 형님 생각할게요. 잘 간수할게요, 형님”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할아버지는 안동에서 중학교 교사 시험 합격 발표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이 할아버지의 합격통지서는 의용군으로 끌려간 지 10일 후 집에 도착했다.

 65년 만에 다시 만난 ‘신혼부부’ 오인세(83) 할아버지와 이순규(85) 할머니에게선 다정함이 묻어 나왔다. 이 할머니 부부는 결혼 6개월 만에 전쟁 통에 헤어졌다. 오찬장에서 만난 부부는 손부터 맞잡았다. 이 할머니는 남편의 무릎에 냅킨을 얹어 줬다. 이 할머니는 남편의 술잔을 채워 주며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오 할아버지는 이 할머니에게 65년 만에 수줍게 “사랑해”라고 사랑을 고백했다. 이 할머니는 “‘사랑해’라는 말이 얼마나 넓은 말인지 알아요?”라고 되물었다. 오 할아버지는 “처녀, 총각이 만나서 좋아서 생사고락 함께하는 게 사랑”이라고 답했다. 아들 정균(65)씨는 “두 분이 100세까지 사시고 한날 한시에 돌아가시면 좋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북측 안내원에게 이끌려 상봉장을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선 채로 계속 지켜봤다.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북측 남철순(82) 할머니는 공동 오찬 행사 때 남측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이번에 만난 여동생 남순옥(80) 할머니로부터 4남매 중 춘자·완효씨가 1985년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할머니는 남측 기자들에게 “멀리 살고 있는 두 동생에게 얼굴을 꼭 보여 주고 싶다”며 영상편지를 찍었다. 카메라 앞에 선 할머니는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러곤 여동생인 순옥 할머니에게 “너를 만나 나는 100세까지 살 것 같다. 앞으로 브라질 아이들을 만날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북측 삼촌 도흥규(85) 할아버지를 만난 윤인자(57·여)씨는 상봉 내내 눈물을 흘렸다. 윤씨는 “엄마가 삼촌 보고 싶다고 매일 얘기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서도 ‘오빠가 생각난다’고 했다”며 “돌아가실 때도 삼촌 말씀을 했는데 그게 딱 6개월 전이다. (상봉이) 6개월만 빨랐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산가족들은 22일 오전 2시간 동안의 작별 상봉을 한 후 헤어지게 된다. 60여 년을 기다려 2박3일 동안 6차례, 12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어머니 임리규(85)씨와 함께 남측의 삼촌을 만난 조철민(49)씨는 상봉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너무 기쁩니다. 꿈같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꿈같이 헤어지겠죠.”

금강산=공동취재단, 최익재·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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