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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용인 캣맘’이 우리에게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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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논설주간

인간의 진심은 힘든 상황을 통과해야 비로소 입증된다. 오랜 연인과 헤어질 때 결별을 통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면 지나간 사랑의 순도(純度)를 짐작할 수 있다. 열렬한 감정이 냉담해져 서로의 용도를 폐기한 뒤에도 함께했던 시간의 기억에 대한 최후의 예의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위엄 있는 이별은 두 존재가 한동안 하나였음을 두고두고 증명할 것이다.

 전국 100만 마리의 길고양이는 한때 주인의 사랑을 받다가 버려진 존재이거나 그들의 후예다. 이를테면 일방적으로 용도 폐기된 연인이다. 인간은 어느 날 애물단지가 된 생명체를 낯선 곳에 유기함으로써 가장 비정한 방법으로 사랑을 파기한다. 버려진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져 부패한 음식을 먹고 더러운 물을 마신다. 염분이 높은 음식물은 신장을 망가뜨린다. 대개의 길고양이는 평균수명 15년에 훨씬 못 미치는 3년 이내에 사망한다.

 철없는 초등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던진 벽돌에 맞아 세상을 떠난 용인 캣맘은 50대의 평범한 주부였다. 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할 집을 마련해 주다 화를 당했다. 딸은 “엄마는 두 달 전 우연히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쓰러져 있는 걸 보고 그때부터 안쓰러워 챙겨주셨다”고 했다. 고인은 사랑을 잃고 시들어 가는 생명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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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자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길고양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낸 주장이 넘쳐났다. “쥐약을 놓아 죽여 없애자”는 의견도 등장했다. 적의(敵意)는 캣맘으로까지 옮겨갔다. 나와 다른 방식에 대한 거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가 작심하고 벽돌을 던져 캣맘이 화를 당했다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캣맘이 혐오 범죄의 희생자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는 사라져야 할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고양이를 일시적으로 몰아낸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1층 베란다와 거실까지 쥐가 들어왔다. “길고양이는 페스트, 유행성 출혈열, 쓰쓰가무시 등의 무서운 전염병을 퍼뜨리는 쥐들의 가장 강력한 천적입니다.” 한 지자체가 시민들에게 나눠준 협조문 문구다.

 중국 대약진운동 시기인 1958년 마오쩌둥은 참새와의 전쟁을 벌였다. 절대권력자였던 그가 농촌 시찰 도중 한마디 하자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마오는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참새를 없애면 풍년이 들어 인민들이 배불리 먹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거꾸로 대흉작이 닥쳤다. 참새는 쌀벌레와 메뚜기를 잡아먹는 천적이었던 것이다. 2억 마리 이상의 참새가 희생된 뒤에야 소탕전은 중단됐다. 소련 연해주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공수하고 병아리까지 풀었지만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른 생명체가 서로 의존해 살아가는 운명공동체다. 그래서 사소한 말 한마디와 손짓 하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속해 있는 작은 벌레도 우주적 질서의 눈으로 보면 결코 열등하지 않다. 동물 인권을 주장하는 철학자인 프린스턴대 교수 피터 싱어는 종(種)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동의하기 어렵다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동물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견만이라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길고양이에 대한 증오를 완화할 방법은 있다. 몇몇 동네에서는 캣맘 협의회가 주민들과 상의해 돌보면서 불화를 예방하고 있다. 지자체와 협조해 번식기 고양이에게 중성화수술을 시켜 개체 수를 조절하고, 괴성(怪聲)을 막는 캣맘도 많다.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남편, 위험한 존재인 남편에 대한 기억을 자신도 모르게 소멸시켜 버린 아내,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5일에 돌아온다”는 단 한마디였다. 남편이 돌아오지만 그녀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은 매달 5일이 되면 아내와 함께 자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기차역으로 가서 아내의 남편을 기다린다. 실제로는 영원히 오지 않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를 구원하기 위해 그녀의 기억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포기해 타인이 돼 주었다. 이런 이타성(利他性)이야말로 무의미한 우연의 홍수 속에서 너와 나의 운명을 연결해주는 문명의 기초가 아닐까.

 가을밤을 홀로 지새운 자의 고뇌는 창밖에서 떨어지는 잎새 하나 구원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없는 길고양이에게 다가간 용인 캣맘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내가 비록 너와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경계를 허물고 친구가 되겠다는 결단과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은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했다. 미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캣맘 사건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성숙한 세상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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