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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탄압 피하려 친일로 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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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사상가였던 이광수. 그의 친일이 독립지원을 위한 ‘위장 친일’이었다는 연구서가 나왔다.

우리 근·현대사에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없다. 홍명희·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재학생 1호를 기록한 그는 1917년 첫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집필한 문장가이자 개척자였다. 일찍이 민족개조론을 주창해 민족성을 철저히 바꿔서라도 한민족 스스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믿고 따랐던 안창호의 서거 이후 친일파로 돌아섰다. 대표적 친일파로 거론되곤 한다.

 그런 이광수 연구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할 법한 두툼한 저술이 최근 출간됐다. 김원모(81) 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쓴 『자유꽃이 피리라』(철학과현실사)이다. 책은 상·하권 합쳐 1800쪽이 넘는다.

 김 교수는 “200자 원고지로 1만 쪽쯤 될 것 같다. 꼬박 4, 5년간 매달렸다”고 했다. “그간 주로 문학계에서 춘원에 관한 책이 쓰여졌는데, 일종의 ‘모략사관’에 의해 이광수가 매도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실증주의 사학의 입장에서 연구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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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꽃이 피리라』(왼쪽)와 저자 김원모 교수.

 책의 핵심 주제는 이광수가 1938년 사상전향서를 당시 법원에 제출해 친일을 공식화했지만 골수 친일론자는 결코 아니었고 ‘위장 친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근거로 44년 발각돼 주동자가 체포된 ‘청년정신대 사건’을 든다. 정신대의 지휘자가 바로 이광수였는데 겉으로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신사참배 등 친일단체로 위장했지만 사실은 조선의 독립을 꾀한 청년 혁명 결사로 결정적인 순간에 거사를 할 계획이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50년대 정치·사회·문화 분야를 아울렀던 종합 잡지 ‘신태양’ 54년 6월호에 이광수가 쓴 ‘정신대 획책안’을 책에 소개했다. 일제의 의심을 따돌리기 위해 창씨개명한 이광수의 일본 이름인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를 조직 내에서 사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책은 주제별로 나뉘어 있다. 이광수의 종교관, 산업화론을 별도로 다루는 식이다. 생애와 인생역정을 다룬 장에서는 국내 자유연애 1호로 꼽히는 허영숙과의 러브 스토리도 다뤘다. 방대한 분량의 용어·인명 찾아보기를 덧붙여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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