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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의 시시각각] 국익 욕보인 한민구의 굴욕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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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정치부장

퇴임하기 직전 노무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에게 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진보 대통령이 밀어붙인 FTA는 임기 말 대통령을 더 고립시켰다. 그래서 궁금했다. 노무현의 답은 짧지만 귓전을 때렸다. “국익 때문이요.”

 진보건 보수건 대통령의 외교는 국익이 우선이다. 박근혜의 두 번째 한·미 정상 외교를 관통한 정신도 국익이었다. 개인적으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이 백미였다. 2013년 2월 일본 총리 자격으로 워싱턴을 처음 방문한 아베 신조도 CSIS에서 연설했다. 연설 마지막에 그는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고 외쳤다. 중의법이었다. 미·일 동맹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그걸 통해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였다. 그 말대로 아베의 일본은 철저히 친미 행보를 했다. 중국에 밀려 흔들리던 일본의 동북아 위상은 공고해졌다. 32개월 전 아베가 연설한 바로 그곳에서 박근혜는 “한·미 동맹”과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말했다. 일타쌍피의 절묘한 외교였다. 일본의 로비로 ‘한국 피로증’을 확산시켜 온 진원지가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이다. 그 복판에서 “지난 70년 동안 한·미 동맹은 항상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섰다”는 말로 중국 경사론을 일축했고 “아베와 회담할 수 있다”는 말로 한·일 관계 정상화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청중의 기립박수는 덤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워싱턴 외교는 또 한번 징크스에 울어야 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굴욕이란 그림자 때문이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의 핵심기술 이전을 둘러싼 국방부·방위사업청의 거짓말은 국내에 잠자코 머물러 있었어야 했다. 그걸 한민구는 굳이 워싱턴으로 들고 갔다. 결말은 처참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펜타곤의 16분 공식 의장행사에 헐값으로 넘어갔다.

 KF-X 사업과 관련한 군의 거짓말은 뿌리가 오래되고 깊다. 2013년 여름 텍사스의 포트워스 기지를 방문한 일이 있다. F-35 생산공장을 둘러본 뒤 록히드마틴사 임원에게 기술 이전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변은 분명했다. “최선을 다하겠다. 하지만 일부 기술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록히드마틴의 이런 입장은 바뀐 적이 없다. 지난해 9월 방사청의 발표는 달랐다. “미측과 3월부터 9월까지 기술, 조건, 가격 및 절충교역 등 3개 분야에 대해 협상했다”면서 계약 체결을 발표했다. 핵심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얘기는 없었다. 거짓말은 한번에 끝나지 않았다. 군은 국방장관 명의로 핵심기술 이전을 요청하는 편지를 지난 8월 미측에 몰래 보냈다. 그러고도 지난달 언론사 주요 인사들에게 한 비공개 설명에선 “유럽 쪽에서 기술을 들여오면 된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핵심기술 이전에 대해 미측과 직접 협의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한민구는 펜타곤 행사 이후 대통령 일행에서 떨어져 그제(17일) 쓸쓸히 귀국했다.

 군사 핵심기술 이전에 대한 미국의 왕소금 정책은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월 일본 국수주의자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전투기 기술을 제대로 이전하지 않는 실상을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항공기산업을 발달시키는 것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그건 미국이다.”

 그걸 알면서도 차세대 전투기 선정에서 막판 F-35A로 뒤집힌 것부터가 석연치 않다. 기술 이전만 봐선 F-35A가 가장 취약했기 때문이다. 기종이 F-35A로 결정되면서 이미 기술 이전 문제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거짓말은 의문을 낳고, 의문은 의혹으로 번진다. 수십조원 KF-X 사업이 왜 이렇게 됐는지 이 참에 모조리 파헤쳐져야 한다. 박정희가 1970년 ‘자주국방’을 내걸고 국방과학연구소를 만들 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가려지는 건 안타까울 수 있다. 하지만 한민구의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는 건 역사가 기억해야 할 더 큰 국익이다.

박승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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