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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하나회 전광석화 제거 … 김 대표 놀라셨죠” JP “YS식 결단 아니면 불가능, DJ는 달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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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 김영삼(YS)·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왼쪽부터)이 단상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은 서로 인사만 나누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1995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5·18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법정에 세웠다. 전·노 두 사람은 97년 12월 사면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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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이 있다. 군자가 허물을 고칠 때 가을 표범이 가죽털을 바꾸는 것처럼 신속하고 선명하게 한다는 뜻이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표변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소인면혁(小人面革)’이다. 소인은 변해야 할 때 근본이 아니라 얼굴빛만 살짝 바꾸고 만다는 얘기다. 표변은 원래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오늘날엔 부끄러움 없이 자꾸 변신한다는 부정적인 어감을 담고 있다.

 김영삼(YS) 대통령의 초기 2년간 나는 그의 자기중심적인 독선적 역사관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필요한 영역에서 군자표변이라고 할 만한 결단력을 보인 것은 평가한다. 김 대통령이 취임하고 열하루 만인 1993년 3월 8일. 그는 육군 대장 김진영(육사 17기) 참모총장과 중장 서완수(19기) 기무사령관을 한순간에 경질했다. 두 사람 모두 전두환의 정규 육사 출신 사조직인 ‘하나회’의 핵심 멤버였다. YS는 이날 아침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조찬을 하면서 이들의 교체방침을 통보하고 그 자리에서 비(非)하나회 출신 새 인물을 물색해 오전 중에 후임 발표까지 끝내버렸다. 사람들은 허(虛)를 찌르고 급소를 치는 YS식 전격성과 대담성을 경험했다. 김 대통령은 그날 오후 언론사 간부들과 만나 “나는 과거 어떤 대통령과도 본질적으로 다른 혁명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자당 대표였던 나는 사흘 뒤인 3월 11일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했다. 그는 무슨 큰일을 해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김 대표, 깜짝 놀라셨지요? 권영해 장관은 내가 하나회를 치겠다고 하니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합디다. 후임자를 청와대로 바로 불러 임명장을 주고는 서둘러 들어가 부대를 장악하라고 명령했어요. 만일의 경우 하나회 세력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조치였습니다.” 김 대통령은 “권 장관에게 말을 꺼낸 뒤 후임자를 임명할 때까지 딱 4시간5분 걸렸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3·8 인사 뒤 한 달도 안 돼 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 등 다른 하나회 출신 군 수뇌부들도 갈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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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오른쪽부터)이 나란히 손을 잡고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내란 및 군사반란죄 등이 적용돼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이 선고됐다. [중앙포토]


 전두환이 저지른 잘못의 출발점은 군내에 사조직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좋은 것을 차지했다는 대목이다. 군의 사조직은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위기 때 결속과 자기희생을 어렵게 한다. 군내 파벌은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집단으로 변질된다. 이게 하나회가 군에 끼친 해악이다. 일본 군부도 1930년대 만주를 침범하고 지나사변(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황도파(皇道波)와 통제파(統制波)로 갈라져 불꽃 튀는 파벌싸움을 벌였다. 해군이 일으킨 게 5·15 사건(32년), 육군이 일으킨 반란이 2·26 사건(36년)이다. 이런 일들이 정부를 흔들고 나라를 전부 뒤집어 놓아 걷잡을 수 없이 태평양전쟁의 파국으로 몰아간 것이다. 한국에서 위험한 군내 사조직을 거뜬히 없애버린 건 김영삼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YS는 2년 뒤인 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냄으로써 군부 사조직이 재생할 수 없게 그 심지를 원천적으로 뿌리 뽑았다.

 이런 일은 YS 같은 특별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면 해내기 어렵다고 본다. YS는 상황 판단이 집중·단선적이다. 권력의 본성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하나회 청산은 전격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꼭대기 전두환·노태우를 정리해야만 완성된다는 판단이 그런 유의 것이다. 생각이 복합적이고 신중하며 논리적인 연결을 중시하는 김대중(DJ)씨는 단계적이고 복선적인 접근 스타일이다. DJ도 권력의 본질에 대한 연구가 깊다. 그는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실제 정치에서 따지고 의심하고 계산하는 측면이 많다. 누구는 YS가 동물적 후각이 발달했다고 하고 DJ는 유리한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해 설득논리 개발에 능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사실 그런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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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11일 김종필(JP) 자민련 총재가 마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특별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JP는 “소급입법을 통한 초헌법적 과거 청산이 또다시 청산돼야 할 불행한 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김영삼씨가 김대중씨보다 기(氣)가 세다는 평가가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대중은 김영삼에 비해 마음이 약하지 않다. 권력을 쟁취할 때 보면 그 끈기와 오기, 강인함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다만 순발력과 속전속결에선 YS가 한발 앞선다. YS는 틀렸다 싶으면 바로 정면으로 부딪쳐 가부간 결단을 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전직 대통령 둘을 한꺼번에 수의(囚衣)를 입혀 국민 앞에 세웠으니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찾아볼 수 없다. 92년 대선에서 YS가 아니라 DJ가 대통령이 됐다면 하나회와 전·노씨 행적의 청산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YS, DJ 두 사람의 성격은 이렇게 다르다.

 95년 말 두 전직 대통령이 수감될 때 나는 야당인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의 총재로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노태우는 재임 중 감춰뒀던 비자금이 폭로되면서 11월에 구속됐고 전두환은 12·12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군형법상 반란수괴 혐의로 12월에 감방에 들어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두 사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처벌 요구가 비등해지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12·12와 5·18 주모자 및 공범자의 공소시효를 정지시켜 군사반란·내란죄로 처벌받을 수 있게 한 소급입법이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YS는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총칼로 권력을 찬탈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전·노씨는 각각 무기징역·17년형과 추징금 2205억·2628억원이 확정됐다.(두 사람은 2년쯤 복역한 후 대선 뒤인 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결정으로 사면됐다.)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볼 때 당시 YS의 선택은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나와 자민련은 5·18 특별법안에 반대했다. 전·노씨의 천문학적 부패와 역사 탈선은 단죄해야 마땅하지만 오늘 법을 만들어 어제의 행위를 처벌하는 소급입법(遡及立法)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급입법을 한번 용인하기 시작하면 국가 지도자들이 대중의 감정에 부화뇌동해 공동체를 건전하고 안정되게 끌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혁명적 상황이 아닌 한 실체적 진실과 절차적 정의가 충돌할 때 순리에 따라 차근차근 일을 풀어가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나는 “5·18특별법안은 포퓰리즘 입법이다. 이 법을 통한 초헌법적 과거청산이 또다시 청산되어야 할 불행한 과거가 될 수 있다. 소급적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법률 제정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YS는 특별법안을 추진할 때도 한순간에 표변하듯 상황을 바꿔 버렸다. 95년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4000억원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뒤 일은 묘하게 흘러갔다. 박 의원의 폭로를 이어받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김영삼 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1조원 이상의 선거자금을 썼다. 현 정권이 자신의 엄청난 비자금은 조사하지 않고 국민회의의 사소한 문제만 표적 사정하고 있다”고 비난하더니 며칠 뒤 중국 방문에선 “대선 때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격려금 20억원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노태우가 기자회견을 통해 비자금의 용처를 밝히기 전에 DJ가 먼저 알아서 고백한 것이다. 정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 사람들의 의문은 자연스럽게 ‘노태우가 야당 후보한테 20억원을 줬으니 여당 후보였던 YS한테는 얼마를 주었겠느냐’에 집중됐다. 11월 9일 나는 야당 총재로서 국민의 궁금증을 대신해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렇게 말했다. “대선 때 천문학적으로 돈이 들어간다. 내가 김영삼 후보를 옆에서 지켜봤던 살아 있는 사전(辭典)이다. 이제 대통령 본인이 대선자금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기가 번졌다.”

 YS는 이런 나의 요구와 세상의 궁금증, 여론압박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5·17 쿠데타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으며 이런 불행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쿠데타를 일으켜 국민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당사자를 처리하기 위해 5·18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DJ는 비자금 정국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자 얼굴빛을 바꿔 자기고백을 하는 방식으로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다. 반면 YS는 비자금 정국 자체를 다른 국면으로 더 크게 전환해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YS의 변신은 군자표변일까 소인면혁일까. 내가 아는 한 YS의 정치자금에 대한 판단 기준은 자기 위주다. 자기에 대한 것과 남에 대한 것이 다르다. ‘내가 받은 돈은 시(是)고 남이 받은 돈은 비(非)다.’ 옳고 그름의 가치가 적용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게 YS 사고방식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 소사전 5·18 특별법=김영삼(YS) 대통령이 발의해 1995년 12월 19일 국회에서 통과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후에 발생한 내란죄 등에 관해 전두환·노태우의 대통령직 재임 기간엔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YS는 취임 뒤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등은 전·노씨를 고소했으나 검찰은 이들을 기소유예했다. 5·18에 대해서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기소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점증하고 노태우씨의 비자금 사건까지 터지자 김 대통령이 소급입법 위헌론을 돌파해 특별법을 입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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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