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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치른 독일·프랑스 ‘쌍둥이 교과서’로 갈등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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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해석과 그에 따른 교과서 집필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독일 등 이 먼저 겪었다.

역사 교과서, 이참에 제대로 <하> 역사교육 방식도 바꾸자
선진국 역사논쟁서 배우자
독일·프랑스, 명백한 팩트만 기술
다양한 시각 담아 개방·관용 교육
미국 역사 표준서 좌편향 논란 일자
의회서 자유토론 통해 수정까지

 가령 1980년대 영국에서는 흔히 빅토리아 시대(1837∼1901)라고 부르는 대영제국의 최절정기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대처 총리까지 나서 당시 영국의 역사 교과서를 비판했다. “모든 세대가 우리 국가사를 그릇되게 이해하고 평가절하하는 교육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학자와 저술가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가 이뤄진 바로 그 시기(산업혁명·빅토리아 시대)를, 영국이 다른 국가보다 가장 앞서 나갔던 바로 그 시기를, 가장 암울한 시기로 묘사했다”고 성토했다. 좌파의 제국주의 비판에 입각한 영국사 서술이 크게 잘못돼 있다는 선전포고였다. 그런 반성에 따라 영국 정부는 86년 케니스 베이커 교육장관이 주도해 교육 개혁에 나선다. 88년 ‘교육개혁법(Education Reform Act)’ 마련, 89년 ‘역사분과 초안그룹(History Woring Group)’ 구성 등을 거쳐 교과서 다시 쓰기로 이어졌다.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한 사례도 있다. 90년대 미국의 ‘역사표준서(History Standards)’ 개발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 2003년 독일과 프랑스의 청소년들이 발의해 제작한 양국 공동 역사 교과서가 그렇다. 미국 정치권은 역사 집필을 둘러싼 갈등을 의회 표결을 통해 순조롭게 해결했고, 독일·프랑스 두 나라는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에 따라 뿌리 깊은 반목을 슬기롭게 풀었다.

 ◆의회에서 역사 갈등 봉합=90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학교 교육의 수월성 향상을 위해 5개 과목에 적용될 세계적인 수준의 표준서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역사 교과서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한 ‘5∼12학년용 미국사 표준서’ ‘5∼12학년용 세계사 표준서’ 등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표준서가 지나치게 좌편향돼 있다고 우파 논객들이 비판하고 나서면서부터. 우파는 표준서의 내용이 ‘정치화된 역사(politicized history)’를 담고 있다고 규정했다. 정작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누락시키고 여성과 노동계급, 인종·종교적 소수에 대한 집필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사 표준서의 경우 초대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고, 매카시와 매카시즘은 19번,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는 17번이나 언급하면서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놀라울 정도로 우리의 좌편향 역사 교과서 논란과 내용이 비슷하다.

 백미는 미국인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상원에서 표준서를 전국적인 역사 표준서로 승인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토론과 표결이 이뤄졌다.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이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며 표준서 비판에 반대했는가 하면 진보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표준서의 좌편향을 인정했다. 그 결과 99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정치권이 먼저 나서 교과서 갈등을 부추기는 한국과는 180도 다른 정치문화다.

 ◆역지사지의 역사철학=독일과 프랑스는 많은 전쟁을 치렀다. 2003년 초 독일·프랑스 청소년의회에 참석한 양국의 청소년 550여 명은 양국의 총리와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양국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와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언어만 다를 뿐 내용과 사진 배치 등 모든 게 똑같은 ‘쌍둥이 역사 교과서’가 탄생했다. 집필자들은 “역사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어두운 역사도 드러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균형 잡힌 교과서 집필에 나섰다고 한다.

 교과서는 서로가 100% 합의할 수 있는 명백한 팩트만 기술하고 해석이 엇갈리는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각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했던 프랑스 비시 정권의 어두운 면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가 하면 나치 독일의 만행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식이다. 결과는 정치적 상황 변동에 따라 내용을 변경할 필요가 없는 ‘모두를 위한 교과서’다. 다양한 시각을 균형 있게 담아 학생들에게 개방과 관용의 정신, 올바른 역사 역량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교과서라는 평가다.

특별취재팀=신준봉·백성호·성시윤·김호정·강태화·윤석만·노진호·백민경 기자
뉴욕·워싱턴·런던=이상렬·채병건·고정애 특파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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