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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 교과서 해법, 고품격·양질의 콘텐트에 있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의 해에 역사 교과서 논쟁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일본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와 독도·위안부 왜곡을,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넘어 우리 선사시대와 관련 있는 요하문명까지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데 우리는 대응은커녕 내홍만 극심하다. 여야의 정쟁과 학계의 이념 대립에 ‘올바른 역사 교육’이란 본질은 실종됐다. 외국 언론까지 보도해 국격이 폄훼될까 우려된다.

 세계 10대 강국인 우리는 세계 속으로 역사의 지평을 넓혀야 할 동력이 충분하다. 한데 여전히 낡고 좁은 이념의 틀에 갇혀 있다. 청와대와 당정의 주장대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심어줘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는 역사 교과서다. 반만년 우리 역사의 축적이자 자화상인 교과서를 정부 주도로 만들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왕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또 정권이 바뀌어도 끄떡없는 고품질·고품격이어야 한다. 미국·유럽처럼 설명과 분량, 비주얼·색인표 등이 풍성해 참고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번 사태의 원인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광복과 한국전쟁, 군사정부, 근대화·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진 영욕의 근·현대사는 언제든지 이념 대립의 기화점이 될 숙명을 안고 있다. 현행 17종의 검정 역사 교과서(중학교 9종+고교 8종)의 편향성 논란도 여기서 출발한다. 고교 한국사를 예로 보자. ‘미래엔’과 ‘비상교육’ 교과서는 건국의 가치 설명은 없고,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을 분단의 원인 제공자로 묘사했다.

현행 교과서 편향성엔 교육부·학자 책임 있어

두산동아는 북한은 독자 자주노선을 모색해 수령 중심의 강력한 통치체제를 확립했다고 기술했다. ‘천재교육’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5·16 당시 군복 차림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한 장만 실렸다. 남북 정상회담 장면 등 네 장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세 장인 북한 김일성 주석과 대비된다. 또 대부분의 교과서는 항일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를 제외시켰다. 그러면서 월북 뒤 북한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원봉의 항일투쟁 기록은 모두 실었다. 채택률이 가장 높은 ‘미래엔’은 편향성이 더 심하다. 북한 관련 기술 중엔 ‘독재’ 단어가 2번 나오지만 남한과 관련해선 24번 등장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북한 정권을 정통성 있는 것처럼 기술한 좌편향 교과서에 보수 학자들은 침묵했고, 교육부는 방기해 왔다. 치열한 연구와 비평, 관리에 태만했던 게 아닌가 묻고 싶다. 반면에 진보 학자들은 2013년 뉴라이트 계열의 교학서 교과서를 조목조목 물고 늘어졌다. ‘위안부가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식민지배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이바지했다’ 등의 묘사가 대표적이다. 문제의 내용들은 모두 수정됐지만 전국의 고교가 채택을 외면했다.

집필기간 보장하고 논문보다 더 값진 실적 인정을

 진보·보수 대립을 최소화하려면 근·현대사 비중을 더 줄여야 한다. 현재 상고·중세사와 근·현대사의 비중은 절반씩이다. 교육부는 이를 6대 4로 조정한다지만, 다음달 2일까지의 여론 수렴 과정에서 7대 3이나 8대 2까지 낮추는 방안도 숙고하기 바란다. 관점의 다양성을 내세워 기본 팩트마저 틀린 현행 교과서가 던져준 교훈이다. 지금은 주관적 해석의 역사관을 주창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카의 논거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팩트 기술’을 강조한 근대 역사학의 대부인 독일 레오폴트 랑케의 사관(史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정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며, 이를 넘어 검인정과 자유발행 체제로 가는 것은 필연이다. 이 시점에서는 주관과 객관 사관의 융합은 향후 과제로 남겨두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사관 의 패러다임을 이념에서 미래지향 가치로 바꿔야 한다. 그 핵심은 역시 학자다. 덕망과 실력, 균형감을 갖춘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필생의 업이라는 소신으로 집필을 주도해야 한다. 동료 학자들이 불참 선언을 한다고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제작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학자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학자 등을 망라한 필진을 영입해 서로 소통하며 입체적으로 조명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충분한 집필기간을 확보해 주고, 논문보다 값진 실적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초대 독일제국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우매한 이는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이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지금 우리 역사학계에 딱 맞는 말이다. 학계의 통렬한 자성과 대의를 촉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다. 교육부는 다음달 집필에 착수해 2017년 2월까지 보급하겠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 내 교실에 넣으려고 광속(光速)으로 달린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 의향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차근차근 이견을 조율하고, 적확성·객관성·균형성을 갖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국민에게 검증을 받아라. 기존 검정 교과서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고품질·고품격 콘텐트를 만든다면 44억원이 아니라 440억원의 세금을 쓴들 아깝겠는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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