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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프레지던츠컵은 기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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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골프행사에 참석했다. 인천 송도에서 열린 2015 프레지던츠컵 때문이다. 아마 대통령이 된 후 찾은 첫 골프행사장일 것이다. 대통령을 멀리 인천까지 불러낸 건 오로지 프레지던츠컵의 힘이다. 그 힘은 어디서 왔을까. 미국 대통령들과 호주·캐나다 총리에 이어 골프 문외한 박 대통령을 잔디 위에 세운 힘, 나는 그게 바로 기부라고 생각한다.

 프레지던츠컵은 사실 궁여지책 끝에 생겨난 대회다. 1990년대 초반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는 세 확장을 원했다.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최고의 선수들을 헐값(?)에 끌어모을 방법이 없었다. 94년 팀 핀첨 커미셔너가 역발상의 묘수를 냈다. 바로 기부다. 상금은 없다. 옷 다섯 벌, 골프용품, 왕복 비행기삯과 필요경비만 준다. 스폰서들이 내놓은 돈은 한 푼도 선수 호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선수 이름으로 선수가 지정하는 곳에 기부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골프는 자칭 ‘신사의 게임’이다. 기부야말로 부를 일군 일류 프로골퍼가 ‘신사도’를 과시할 최적의 상품 아닌가.

 참가 선수들은 이미 ‘기부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다. 94년 이래 개근한 필 미컬슨은 ‘기부 천사’로 불린다. 버디 할 때마다 100달러, 이글은 500달러를 기부한다. 지금까지 기부금만 100만 달러가 넘는다. 그는 프레지던츠컵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하나가 돼 자선 기부를 통해 우정을 쌓는 대회”라고 말한다. 필 미컬슨이 며칠 전 환상적인 124m 이글 벙커샷을 성공했을 때 내가 떠올린 건 “기부 500달러 추가요”였다. 애덤 스콧이 재단을 만들어 자선활동을 시작한 것도 프레지던츠컵이 계기였다. 웨브 심프슨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최상의 가치”라며 “프레지던츠컵은 이런 가치의 전형”이라고 했다. 프레지던츠컵이 결과와 상관없이 오직 승자만 존재하는 대회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그냥 선진 기부 문화가 부럽다며, 우리는 왜 저런 게 안 되냐고 푸념 한 번 하고 넘어가면 그뿐일까. 선진 기부 문화는 선진 제도에서 싹튼다. 그중 중요한 게 세제다. 미국 프로골퍼에게 기부는 사실상 상금과 다름없다. 무슨 얘기냐고? 미국은 소득의 50% 한도에서 기부금을 전액 소득공제 해준다. 올해 프레지던츠컵의 선수당 기부금(분배액)은 약 18만 달러(약 2억원). 예컨대 필 미컬슨이 그 18만 달러를 자신의 어린이 재단에 기부한다고 치자. 그의 올해 상금 수입이 215만 달러니 그는 기부금 전액을 소득공제 받을 것이다. 사실상 자신이 낼 세금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셈이다.

 반면 이번 대회에 맹활약 한 ‘수퍼 문’ 우리의 배상문은 어떤가. 우리 세법은 그에게 기부한 돈의 약 25%만 돌려준다. 2억원을 기부하면 약 5000만원만 환급받는 것이다. 필 미컬슨과는 약 1억5000만원 차이다. 경제적으로만 따진다면 배상문은 한국에 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배상문은 한국에 기부할 가능성이 크다. 병역문제가 걸려 있으니.) 배상문은 올해 PGA투어 상금으로 약 259만 달러를 벌었는데, 기부금을 미국에 내면 그만큼 미국 정부에 내야 할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지던츠컵은 자꾸 쪼그라드는 한국의 기부 문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주범은 2013·2014년 기부금 공제 개편이다. 정부는 세금을 더 걷겠다며 고액 기부에 주는 혜택을 크게 줄였다. 부유층이 탈세·절세 수단으로 기부를 활용한다는 주석을 달았다. 그 결과 올해 세수는 약 3057억원 늘어나고 대신 기부금은 2조376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한국재정학회 추산). 그야말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모자라는 돈만큼 세금을 들여 메워야 할 가능성이 크다. 세금 좀 더 걷자고 시작했는데 되레 세금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

 다시 골프 얘기로 돌아가 보자. 필 미컬슨이 한국 투어에서 뛰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버디 하나에 100달러씩 기부했을까. 나는 자신할 수 없다. 배상문은 또 어떨까. 병역문제가 걸리지 않았다면, 경제적으로만 선택한다면 그래도 그가 한국에 기부할까. 나는 정말로 자신할 수 없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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