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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스펙만 보내면 자소서 한 편 뚝딱 … “근데, 나 이런 사람이었어?”

작가가 돼야 취업에 성공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솔직한 면모보다는 꾸며낸 모습이 더 인정받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청춘 세대 대부분이 자기소개서를 소설처럼 꾸며낸 ‘자소설’(자기소설)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청춘리포트는 ‘자소설’이 실제 얼마나 사실을 부풀리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한 취업준비생의 스펙을 입력하자 여러 업체가 사실이 아닌 다양한 버전의 ‘자소설’을 보내왔습니다. 이 쓸쓸한 보고서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20문 20답 형태로 간단한 정보만 적어 보내면 작가들이 한 편의 완벽한 자기소개서를 완성해드려요.”

한 포털 사이트에서 ‘자기소개서 대필’을 검색해보니 20여 곳의 블로그와 홈페이지가 떴다. 주로 ‘OO작가’ 형태로 불리는 대필 작가들은 돈만 내면 한 편의 그럴듯한 자기소개서(자소서)를 만들어준다. 대필 작가들은 간단한 신상 정보만 보내면 이를 토대로 내용을 꾸며낸 글을 보내주겠다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 취준생들이 쓴 자소서는 프로 작가들이 쓴 글과 차원이 다르다”며 홍보했다.

대필 자소서를 받는 방법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졌다. 첫째, 자소서 분량 등을 상의하고 이에 따라 금액을 이체한다. 비용은 한 편당 5만~10만원 선이다. 대개 200자(원고지 1매)에 1만원씩 계산된다. 3일 이내에 받아 보는 ‘특급 처리’의 경우 2만~3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둘째, 자소서의 재료가 되는 정보를 전달한다. 지원자의 성격·활동 사항·경험 등을 정해진 양식에 맞춰 e메일로 보내거나 전화로 상담한다. 셋째, 초고를 받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작가와 상의해 고쳐 쓴 뒤 완성본을 받는다.

유씨는 취업준비생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있다는 두 작가와 한 업체를 추천받았다. 작가들이 대신 써준 자소서엔 정말 특별한 뭔가가 있을까. 다음은 유씨가 세 군데에 의뢰해 받은 자소서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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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작가의 자소설 (비용: 9만원, 분량: 1800자, 기간: 15일)

1.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과 후회하는 선택에 대하여 각각 한 가지씩 기술하시오.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금을 모아 □□살에 생애 첫 독립을 했던 것이 가장 잘한 선택 같습니다. 윗집의 하수관이 터져 물이 새는 바람에 천장을 뚫어놓은 채로 일주일을 지내야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림의 전반적인 활동을 직접 경험하면서 경제 관념이 생기고 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학점관리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탓에 그 외 다른 활동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얻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한 번도 독립해본 적 없는 유씨는 '스스로 돈을 모아 독립을 하고 하수관 때문에 천장이 뚫린 집에서 일주일간 지낸 정신력 강한' 인물로 묘사돼있었다. 유씨는 "팩트 자체도 거짓이지만 성격이 실제와 전혀 다르게 묘사됐다"며 "내용을 달달 외우고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세뇌해야할 정도"라고 말했다. 후회한 일을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도 유씨는 "대학시절 장학금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학생회 활동도 하고 많은 대외활동을 했다. 이력서 내용과 달라 거짓말이 금방 들통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자기소개서를 본 한 은행사 인사팀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글을 보면서 ‘하수관이 터지면 천장이 뚫리는지’ ‘왜 일주일동안 고치지 않고 지냈는지’ ‘독립을 하기 위해 돈은 어떻게 모았는지’ ‘경제 관념과 독립성을 기른 것이 직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 지’ 등이 궁금해졌다. 만약 면접에서 지원자를 만난다면 이 내용들을 물어보고 싶은데 이에 대해 과연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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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작가의 자소설 (비용: 5만원, 분량: 1200자, 기간: 2일)

1.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과 후회하는 선택에 대하여 각각 한 가지씩 기술하시오.

미국 교환학생 시절, 다문화교류 클럽에 가입했던 경험이 저에게는 가장 큰 배움과 깨달음을 가져다 준 선택이었습니다.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 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이나 역사까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태국에서 3개월간 거주할 당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태국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B작가가 쓴 자기소개서 속엔 또다른 인물이 있었다. 글 내용과 달리 유씨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 다문화교류 클럽에 가입한 적도 없었고 친척언니가 있는 태국에서 3개월간 어학연수를 할 때도 낯선 환경에 두려워하기 보단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유씨는 “A작가가 쓴 글보다는 사실에 기반하긴 했지만 직접 느낀 점과 다른 의미가 부여돼 이 역시 해당 내용을 암기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제한된 정보로 유씨를 표현하다보니 상투적이고 두루뭉술한 표현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유씨는 "이왕 다문화교류 클럽에 대해 설명하려면 재밌는 에피소드 위주로 글을 써줬더라면 더 눈에 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8년차 모 증권사 인사팀 관계자는 "수백~수천 장의 자기소개서를 보는 인사 담당자 입장에선 지원자의 특색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자기소개서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실하고 솔직하며 대인관계가 좋은 인재를 뽑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자기소개서에 이런 표현만 반복된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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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업체의 자소설 (비용: 6만원, 분량: 1800자 기간: 2일)

2. 인사 직무의 핵심역량과 이를 갖추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무엇입니까.

저는 대학 시절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인사 업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적 자원 관리와 함께 다양한 계약서 검토 및 법적 사안에 대한 분석 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한 분야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보다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아르바이트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의 현지 생활을 경험하며 책에서는 얻지 못하는 많은 역량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C업체에선 유씨의 전공인 '법학'이 유씨가 지원하는 인사 부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이 때문에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다. 한 유통업계 인사 담당자는 해당 자기소개서에 대해 "실제 인사 부서는 전공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지나치게 억지로 갖다붙인 느낌이 드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A작가의 자기소개서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 못해 후회스럽다는 유씨는 이번엔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다양한 해외 경험을 해본 인물로 표현돼있었다. 유씨는 "내가 읽어봐도 스펙과 직무를 짜맞추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표현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이런 부분은 면접에서 질문을 받더라도 조리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필 작가 백모씨는 “작가 대부분이 논술강사나 전직 기자 등 글을 잘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듯한 글을 만드는 것에 익숙하지만 제한된 정보로 창작하는 데엔 분명 한계가 있다”며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자소서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요소들로 항목에 대한 답을 채울 때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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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준생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수십 개의 기업에 지원하다 보니 모든 서류를 공들여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본지와 취업·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취준생 10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필을 받았거나 받을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경우가 30.7%에 달했다.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자소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31.3%)가 가장 높았고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워서’(29.2%), ‘많은 기업에 지원하다 보니 모든 자소서를 쓸 시간이 부족해서’(25%) 순으로 나타났다. 취준생 강유라(24·여)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가 시련이나 리더십, 헌신 등에 대해 쓰려니 막막할 때가 많다. 대부분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게 시련이고 팀플에서 조장을 한 게 리더십인데…”라고 푸념했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글솜씨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생생한 경험과 진솔한 생각이 담긴 자소서를 쓰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아 조언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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