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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에서 헬스케어로 변신 필립스 버려 필립스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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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투스를 이용한 필립스의 전자 파스.

고혈압을 앓고 있는 A씨.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면 자동으로 혈압·맥박·혈당·체중 등이 측정된다. 욕실 내 각종 기기가 수집한 건강 관련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의료기관으로 전송된다. 데이터 분석 후 이상 징후가 보이면 A씨에게 알람이 울리며, 카메라가 달린 단말기를 통해 의사와 원격 화상상담을 받는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듯한 이 장면. 네덜란드의 대표 기업이자 세계적인 헬스케어·가전·조명기업인 필립스가 그리는 미래 모습이다.

 필립스 프란스 판 하우턴(55) 회장은 최근 중앙일보 창간 50주년을 맞아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가까운 미래에 환자와 의료진을 연결하는 기기가 등장해 원격 진료를 받거나 스스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것이 일상화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원격진료·건강 관리 등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해 건강 관리는 물론 질병의 예방·진단·치료까지 받을 수 있는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가정에서 진료를 받는 시대가 오면 산간·오지 거주민이나 저소득층도 최신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노년층은 병원 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사회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런 미래가 가능한 것은 사물인터넷(IoT)의 발전 덕이다. 첨단 센서를 갖춘 웨어러블 기기의 보급이 늘면서 무선통신으로 전송받은 각종 건강 데이터에 대한 분석이 쉬워진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일상의 물건들이 연결되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헬스케어와 IoT의 융합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격 진단 및 가료 시대가 필연적으로 닥칠 또 하나의 근거로 그는 전 지구적인 고령화를 꼽았다.

 현재 전 세계 인구 70억 명 중 60세 이상은 9억 명에 달한다. 205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24억 명까지 증가해 14세 이하 인구를 넘어선다는 게 하우턴 회장의 예상이다. 그는 “고령 인구와 만성질환 환자의 증가로 의료진 부족 현상이 심각해질 텐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준비는 미흡하다”며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헬스케어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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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를 제공해 주는 디지털 플랫폼이 이를 위한 서비스의 한 예다. 그는 “모바일 기기로 건강 상태를 측정하면 자동으로 플랫폼에 데이터가 전송, 건강 정보를 분석하고 관리를 돕는 식”이라며 “나아가 의료진 및 다양한 채널에서 얻은 건강 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협력적인 치료 관리(Collaborative care management)가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우턴 회장은 또 “서비스 제공자와 장비 제조사, 네트워크 회사 등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헬스케어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며 "이런 협업은 늘어나는 헬스케어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역할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했다. 하우턴 회장은 “한국은 앞선 정보통신기술(ICT)과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진을 갖춘 덕에 스마트 의료 환경이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며 “ICT를 통해 헬스케어 서비스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 기업과 다양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차세대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해 헬스케어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필립스 반도체 사업부에서 분사된 NXP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때 한국 기업들의 신속한 업무 처리 방식과 강력한 실행력에 크게 매료됐다”며 “2011년 필립스 CEO 취임 후 한국 기업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 속도와 실행력을 강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것이 회사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하우턴 회장은 평소 취미로 요트를 즐긴다. 요트는 팀워크와 소통이 필요한 스포츠란 점에서 회사 경영과 닮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그는 “항해를 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법, 올바른 방향 설정의 중요성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필립스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필립스를 헬스케어와 조명에 각각 집중하는 두 개의 회사로 분리했다. 변화무쌍한 망망대해와 같은 ICT 환경에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필립스가 잘할 수 있는 분야로 돛을 펼친 것이다. 그는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필립스의 비전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번 개편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지속적으로 혁신을 창출하는 기반을 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120년 넘게 세계 최고 자리를 유지해온 필립스의 성장 비결도 이런 과감한 변신에 있었다. 조명회사로 출발한 필립스는 한때 세계 최대 TV·오디오 기업으로 명성을 날렸다. 2000년대만 해도 반도체·전자 분야의 매출이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아시아 기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이후 필립스는 과감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006년 ‘기술의 필립스’를 상징하던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하더니, 2013년에는 회사 이름에서 ‘전자(Electronics)’라는 단어를 지웠다. 대신 필립스는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를 미리 간파하고 헬스케어 사업을 육성했고, 세계적인 에너지 절감 노력에 맞춰 친환경 조명 시장을 선점했다. ‘필립스를 버려 필립스를 살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우턴 회장은 “과거에 가치가 컸던 부분들이 현재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고,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 필립스의 현재를 만들었다”며 “과감한 혁신과 변화를 포용하는 능력은 오늘날 기업이 선두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역량”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역량은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는 “혁신과 변화는 인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기업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향상시킬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며 “필립스는 125년간 이런 환경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를 유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프란스 판 하우턴=로테르담 에라스뮈스대에서 경영학·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1986년 필립스에 입사한 뒤 필립스반도체 CEO, 필립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거쳤다. 2011년 헤라르트 클라이스테를레이 전 회장으로부터 CEO 자리를 넘겨받은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의 필립스’를 부활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 개혁의 필요성을 동감하도록 만드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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