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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김영희 묻고 가우크 독일 대통령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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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출신 신학자, 목사로 출발해 동독에서 최초로 자유 선거로 구성된 인민의회(Volkskammer) 의원을 거쳐 독일 연방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요아힘 가우크. 그는 한국인들이 통일의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진 독일 정부]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한국에 왔다. 그는 동독 출신이다. 동독 출신 보통 사람들이 옛 서독 사람들에게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불만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독일의 대통령과 총리 자리는 동독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통일 전의 독일과 오늘의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통일의 선배 나라에서 배울 것이 많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가우크 대통령에게 대면 인터뷰가 안 되면 e메일 인터뷰를 요청해 쾌락을 받았다. 가우크 대통령이 보내 온 답변의 전문을 소개한다.


▶김영희=이번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우크=이번 방문을 통해 우선 한국과 독일의 돈독한 관계를 높이 평가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두 나라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자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독일을 방문했는데 저는 그때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 대통령의 진심 어린 방한 초청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습니다. 방한 기간 중 한국 국회에서 연설하게 된 것은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영광입니다. 한국과 독일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연구·교육·학술 분야의 협력이 두드러지는데, 양국의 협력은 매우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교육 분야 등에서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국의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하고자 합니다. 또한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정보 교류를 더욱 심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김=이번 방한에서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가우크=한국과 독일은 유사한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일 통일 25주년, 한반도 분단 70주년에 이뤄지는 방한은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저는 동독 출신입니다. 잘 알다시피 동독은 1989년까지 공산 정권이 지배했던 곳으로 자유는 박탈되고 민주주의도 없었습니다. 저는 89년 이전에는 동독에서 민권운동을 했고 독일 통일 이후에는 동독 정권의 정보기관인 슈타지(STASI·국가보안부)의 문서 청산을 책임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한국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둘러보고 정치 책임자들, 시민사회 대표자들, 탈북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저 개인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한국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를 처음 방문한다는 것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김=동서독 간에는 아직도 경제적·사회적 불균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동독 청년들이 저에게 같은 또래의 서독 사람들에 비해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다고 불평했습니다. 90년 법적·물리적 통일 이후 경제·사회·문화·심리적으로 화학적 통합(Integration)이 이뤄졌습니까.

▶가우크=물론 동서독 간에는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변화의 성과는 이제 폭넓게 가시화돼 체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동독 지역의 인프라는 우수합니다. 도심들을 정비했고 환경의 질은 통일 이후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동서독의 경제력을 비교해보면 동독의 경제 성과, 고용, 실업률, 임금 등 주요 지수들이 서독에 상당 부분 접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독 지역에도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있습니다. 그중 몇몇 기업은 저와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동독인들은 그들에게 열린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독일의 통일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진척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농촌 지역은 젊은이들의 이탈현상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과 정치가들에게 정치적·사회적으로 계속 하나의 도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르의 동방정책은 독일 통일에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가우크 대통령께서는 개인적으로 동방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가우크=‘접근을 통한 변화’는 60년대 중반 베를린 장벽이 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빌리 브란트와 다른 이들에 의해 고안되고 추진된 신동방정책의 모토였습니다. 당시 그건 끔찍한 국경의 개방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고도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일례로 통행증협정(Passierschein)을 통해 동서독 간 교류의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헤어졌던 친척들의 상봉이 이뤄지고 접촉이 유지됐습니다. 브란트는 서독 총리로서 신동방정책과 동유럽 이웃 국가들과의 화해에 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정책은 처음엔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그 뒤 모든 연방정부가 브란트의 노선을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수십 년간의 분단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간 긴밀한 인적 접촉이 꾸준히 이뤄졌습니다. 독일은 분단에도 불구하고 늘 한 민족(Nation)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헬무트 콜 총리의 용기 있는 노력과 함께 평화와 자유 속에서의 통일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전제 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김=한국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가우크 대통령의 조언을 기대할 것입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조언을 하실 수 있습니까.

▶가우크=무엇보다도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말로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북쪽에 사는 한국인들도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언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89년 이전 분단 독일의 상황과 오늘날의 분단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릅니다. 역사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그렇습니다. 예컨대 분단 시절을 통틀어 동서독 간에는 친지 간, 그리고 교회 간에 심도 있는 접촉이 유지됐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경험은 제한적으로만 한국에 적용 가능합니다. 사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서독인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성공적 통일의 결정적 요인은 동독 주민 스스로가 그들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으며 매우 많은 사람이 용기를 냈고 전체 상황이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노력이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용기와 소망의 특별한 동기이며 토대는 서독의 살아 있는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지닌 매력이었습니다. 또 개방을 향한 서독 연방정부의 오랜 시간에 걸친 일관되고 인내심 있는 노력이 독일의 성공적 통일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서독 정부와 유럽의 파트너들, 미국과 소련이 점점 더 거세지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사람들의 외침을 단시간 내에 실질적인 정치와 조약으로 연결시키고 법치국가적이고 민주적 정당성 있는 방식으로 수용한 것은 그들의 영구적인 역사적 공로입니다.

▶김=동서독 분단 및 통일 과정에서 소련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소련은 동독에 20~22개 사단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동독인들의 시민혁명을 53년 동베를린 폭동 때처럼 탱크로 진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 문제에서는 독일에서의 소련 같은 결정적 열쇠를 쥔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중국·러시아에 모두 해당됩니다. 동시에 통일을 위해서는 그들 모두의 지지와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그들 국가와 그들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해 통일에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우크=한반도의 지금 상황은 동서독 분단과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외교적 차원에서도 그래요. 좀 전에 동방정책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동방정책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헬싱키 프로세스)는 훗날 평화적 변화를 가져오는 토양이 됐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이미 70년대부터 신뢰 구축과 대화가 이뤄졌고 훗날 통일의 초석이 됐습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결정적 역동성은 동서독 스스로에게서 나왔습니다. ‘2+4(동서독, 미국·소련·영국·프랑스) 프로세스’의 당사국들과 독일의 이웃 국가들은 독일 통일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철의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을 위한 외교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독일은 이런 문제에서 한국과 기꺼이 경험을 교류할 마음이 큽니다. 이번 방한 기간 중 양국 외교장관이 제안한 ‘한·독 통일외교정책자문위원회’ 회의도 열리고 저도 자문위원회와 만날 예정입니다.

▶김=한반도 평화와, 가능하다면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과 국제사회가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럽연합(EU) 국가들, 특히 독일은 이 프로세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가우크=무엇보다도 6자회담 같은 국제적 대화 메커니즘이 중요합니다. 모든 참가국에 대해 우리는 늘 대화 지속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EU와 독일은 현재 북한과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핵 문제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대화 채널을 트고 근본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앞으로도 계속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2001년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화 없는 고착된 대립보다는 심화된 교류가 더 나은 옵션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며 북한이 이러한 대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를 기대합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요아힘 가우크는 …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1940년 옛 동독의 발트해안 도시 로스토크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는 신학을 전공해 65년부터 90년까지 메클렌부르크에서 종교활동을 하면서 여러 해 목사로도 활동했다. 그는 90년 3월 동독에서 실시한 최초의 자유 총선거에 출마해 정계에 진출했고 국가보안부(STASI) 해체 작업을 지휘했다. 통일 후 91~2000년에는 국가보안부 기밀문서 정리 총책임자 임무를 수행했다. 2012년 독일 연방공화국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돼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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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