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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게 하는 게 내가 꿈꾸는 건축”


대학에 가는 대신 패션잡지 객원 에디터가 됐다. 일하다가 틈만 나면 제 3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유명한 감독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고 패션 스타일리스트로도 활동했다. 관심 가는 것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꼭 10년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업(業)이 보였다. 스물여섯에 세계적인 명성의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AA)에 들어갔다. 총기 넘치는 아이디어 덕분에 굵직굵직한 전시의 디자인이 그녀에게 맡겨졌고, 세계적인 브랜드들도 매장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한 분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그녀의 손길은 무엇을 하든 거침이 없다. 영국 건축가 소피 힉스(Sophie Hicks·55) 얘기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의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이 팔방미인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나와 다른 문화를 보고 느끼고 배우라


17살에 ‘하퍼스&퀸’의 객원 패션 에디터로 시작해 보그 영국판 패션 에디터까지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로 시작된 1970년대 후반의 디스코 열풍은 역동적인 뭔가를 찾게 했다. 나같이 엉뚱한 애들에게 10대들의 이슈를 찾아보라고 도전 과제를 준 잡지사 편집장이 고마울 따름이다.”


대학 대신 현장을 택했다. “당시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꼭 대학을 가야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사실 열일곱 살 짜리에게 무슨 구체적인 미래나 계획이 있었겠나. 난 실제로 일을 하면서 경험하고 싶었다. 이런 것을 대학에서 배울 수 있을까. 정식 교육에서보다 이렇게 배운 게 많다고 생각한다.”


당신 아이에게도 그렇게 권할 수 있나. “아니다. 내 딸도 지금 패션계에 있는데(영국의 톱모델 에디 캠벨이 큰 딸이다) 나는 먼저 컬리지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현장으로 가라고 했다. 하하.”


생각이 왜 바뀐 건가. “세상과 먼저 부딪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어떤 수준을 만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서 통할 수 있다. 딸은 대학 공부를 하면서 광고 캠페인이나 브랜드 관련 일도 했다. 비행기에서도 공부할 정도로 바빴다. 그때 이런 얘기를 해줬다. ‘좋은 결과를 내고 싶으면 바쁜 사람에게 물어보렴. 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단다’라고.”


여행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제 3세계 위주로 다닌 이유는. “다른 문화나 다른 유형의 사람에게 흥미가 있었다. 특히 파푸아 뉴기니 같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원주민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이 가진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모든 문화는 다 특징이 있고 재미있다. 폴 스미스나 요지 야마모토, 클로에 매장을 디자인하면서도 그들의 서로 다른 문화가 아주 흥미로웠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Intervista·1986)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아주 작은 역이라 출연했다고 말하긴 좀 그렇다. 사실 영화 제작 혹은 감독 쪽에도 관심 있었다. 마침 펠리니 감독과 친분이 있는 이탈리아 친구를 통해 그를 만났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는 ‘그건 곤란하고 대신 조연으로 출연하라’고 했다. 그것도 남자로(웃음). 이탈리아 치리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데, 마침 베르톨루치 감독이 ‘마지막 황제’를 찍고 있었다. 황금색과 붉은색이 넘실대는 중국 황실 세트장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클라이언트 자신도 인식 못하는 생각 끌어내야


1997년 영국왕립미술원에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전은 현대 미술사에서 각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사라 루카스 등 패기 만만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이 전시를 통해 만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이름하여 ‘yBa(young British artists)’ 군단의 탄생이다. 이 전시의 디자인을 맡은 사람이 바로 소피 힉스다.


이 전시는 어떻게 하게 됐나. “내 친구의 친구가 찰스 사치(전시 후원자)를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소피, 너라면 전시를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묻길래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 지껄여댔다. 상어 조각(데미언 허스트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집어넣은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은 눈에 잘 띄게 놔두고 나머지는 미니멀하게 하겠다 등등.”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게 맨 윗선까지 통했구나. “폴 스미스나 요지 야마모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절대 대놓고 묻지 않는다. 공식루트가 아니라 그냥 슬쩍 물어보는 식이다.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팝아트’전(1991)을 디자인하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어땠나. “건축학교를 마친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는데, 전시기획자가 내 친구였다. 그가 내 의견을 묻길래 ‘나 같으면 전시장을 모두 하얗게 칠하겠다’고 아이디어를 냈다. 빅토리아 스타일의 고전적 건물에서 팝아트 전시를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자꾸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난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어떤 스타일을 부여하려 하지 않고 팝아트 전시를 부각하는 데만 집중한 것이다. 화이트를 칠하면 빅토리아 시대의 느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판단을 믿어준 덕분에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다.”


건축은 왜 공부할 생각을 하게 됐나. “17살 때는 뭘 공부할지 몰랐지만 (다양한 경험을 마친) 26살 때는 느낌이 왔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가위나 풀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13살 때부터 건물에 흥미가 있었고 고교 때는 수학을 좋아했다.”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디자인도 못하고 잘 만들지도 못한다. 사람 몸을 장식하는 것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옷 만드는 것보다 옷을 입음으로써 타인에게 인식되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즉 옷이 어떻게 사람을 표현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내겐 건물과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이 건물 속으로 들어가 살고 일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건물만 멋지게 보이는 것은 싫다.”


건축가로서의 자세라면.“클라이언트의 얘기를 잘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간혹 본인도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다.”


잠깐, 그런데 데미언 허스트가 뜰 줄 알았나. “물론이다. 드로잉 작품도 샀다. 그런데, 팔았다. 음… 그 얘긴 더 이상 하지 말자.”



한국에서 스웨덴의 빛과 공기 느낄 수 있도록 표현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는 지난달 19일 서울 청담동에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당초 원래 있던 2층 가옥을 리모델링하려했으나 기존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로 방침을 정하고 소피 힉스에게 새로 설계를 의뢰했다.


컨셉트를 어떻게 잡았나.“그전에는 스웨덴을 가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서너달 동안 스웨덴 문화를 연구하고 직접 스웨덴을 찾아가 도시의 건물?음악?섬을 둘러보았다. 또 설립자의 철학이 무엇인지, 어떻게 일하는지 등을 곁에서 지켜보며 분석한 결과와 내 의견을 제시했다.”


가장 중요시한 것은. “한국에서 스웨덴의 빛과 공기를 느끼도록 하자는 의도였다. 스웨덴에 처음 갔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공기와 햇빛에 깜짝 놀랐다. 바삭거리는 듯한 청량감 있는 공기로 가득한 스웨덴을 네모로 딱 떠서 청담동 주택가에 쏙 가져다 놓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한국이라는 공간은 보이지 않고 스웨덴만 보이도록.”


어떤 식으로 표현하려 했나. “스웨덴 사람들은 교외의 삶을 사랑하더라. 여름이면 숲이 있는 작은 섬에 가서 휴가를 보낸다. 통나무 별장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콘크리트 기둥에 나뭇결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여기에 매끈한 메탈의 느낌을 가미해 전시된 옷들을 부각했다. 건물은 밖에서 보면 커다란 조명 상자 같다. 절제된 쇼케이스 안에 아크네라는 강한 느낌의 몬스터가 들어있는 컨셉트랄까.”


공조 시설이 특이하다. 특히 에어컨이 천장에 설치되는 한국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데. “좌우 벽면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나가고 들어오게 했다. 실외기는 위쪽으로 옮겼고 귀처럼 보이게 디자인적으로 다듬었다.”


조명도 색다르다.“보통 패션 매장에서는 조명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스포트라이트를 쓰지 않는다. 폴리카보라이트를 사용해 낮에는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오게 했고, 야간에는 간접 조명으로 밝힌다. 밤에 와서 보면 더욱 멋있을 것이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아크네 스튜디오·SOPHIE HICKS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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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