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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내퍼 미국 부대사, 한글날 맞아 한국어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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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받침과 억양이 있어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마크 내퍼(사진)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가 한글날을 앞두고 8일 경북대에서 한글을 주제로 한국어로 특강했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만 해도 한국말을 하는 미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K팝 등 미국 도처에서 한국어를 듣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어 능력은 이따금 전공자들을 웃길 정도로 막힘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한국어 배우기 체험을 주로 들려 주었다.

 그가 처음 한국어를 접한 것은 15살 때였다. 해병대에 몸담았던 아버지와 함께 그해 한국·일본·필리핀 등 아시아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때 한글 표기를 처음 보면서 과학적인 것 같다며 한번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갔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일본어와 중국어 전공만 개설돼 있었다.

 한국어 공부는 기숙사에서 첫발을 뗐다. 한국계 미국인이 간단한 한글을 가르쳐 준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한국어 공부는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였다. 1993년 외교관으로 한국에 처음 부임했다. 그는 생활 속에서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한국인 친구를 만나고 노래방을 드나들고 TV와 영화를 봤다. 김소월 시집도 뒤적였다. 노래방에서 접한 ‘이별’ 등의 가사 자막이 한국어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97년 두 번째 한국 발령을 받았다. 이번엔 한국대사관 연수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어를 공부했다. 내퍼 부대사는 일찍이 일본 유학을 한 덕택에 일본어는 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순이 같다는 걸 알고는 일본어 문장에 단어만 바꿔 한국말을 했다. 그걸 알아챈 한국인 원장이 “생각부터 한국어로 하라”고 지적했다. 그 말을 따르면서 한국어 능력이 확 올라갔다고 회고했다. 이후 3년 동안 한국 국내정치를 담당하며 정치인과 기자들을 자주 만나 한국어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덧붙였다.

 2000년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북한 사람들이 그의 한국어를 듣고는 “남조선 사투리”라며 “한국말이 아니고 조선말, 남조선말”이라고 고친 게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또 “화장실을 위생실 등으로 말하는 걸 보고 서로 가까우면서도 말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올해 4월 14년 만에 세 번째로 한국 발령을 받았다. “그 사이 한국말을 많이 까먹었어요. 한국 친구를 만나며 날마다 한국말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크 내퍼는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과 동아시아학을 공부했으며 한국어·일본어·베트남어에 능통하다.  

대구=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사진=공정식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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