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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플젠에서 황금빛 유혹에 빠지다…170년을 이어온 라거, 그 오묘함은

체코는 맥주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맥주는 독일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체코 역시 독일만큼이나 유구한 맥주 제조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다면 당신이 주로 먹는 맥주를 새삼 떠올려보라. 황금빛 투명한 자태를 뽐내는 맥주가 떠오를 것이다. 세계 맥주 소비의 90%가 이런 라거(Lager)맥주다. 라거 맥주의 고향이 바로 체코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90㎞ 떨어진 플젠(Plze?) 지역이다. 플젠은 벨기에 몽스와 더불어 2015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달 29~31일 맥주의 도시 플젠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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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공장 지하 저장고에 있는 오크통. 통안에 담긴 맥주는 여과와 살균을 거치지 않은 전통방식의 생맥주다.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사진 체코관광청]


400년 양조장서 느끼는 장인의 숨결
프라하에서 차를 달려 1시간쯤 가면 플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구 17만 명의 작은 도시 플젠은 한눈에도 맥주의 도시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외곽에는 보리와 홉이 빼곡한 밭이 있고, 도시 어디든 물이 넘쳐난다. 우흘라바(Uhlava)-우슬라바(Uslava)-라드부자(Radbuza)-므제(Mze) 등 4개의 강이 도시 곳곳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싸 안고 흐른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강변을 따라서 500여 개의 양조장이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맥주를 생산해냈다 한다.

플젠 시내 광장에서 10분 거리. 주택가에 숨겨진 맥주 박물관(Pivovarske muzeum)이 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건물은 1600년대부터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세기 14명의 장인들이 길드를 구성, 이곳에서 플젠 맥주의 표준을 만들어냈다. 1959년까지도 실제로 맥주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폐허가 된 건물을 복구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은 공방처럼 보이는 작은 박물관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다. 1층과 반지하, 다시 1층을 오가는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플젠 맥주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통방식 맥주 제조 설비와 당시 노동자들이 입던 옷도 전시해 놓았다. 보리를 볶는 기구와 실제 물을 퍼 올리던 18m 깊이의 우물은 지금이라도 다시 맥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보다 축소했지만 보리와 홉을 심어놓은 밭에서는 쌉싸름한 홉을 직접 따서 맛볼 수도 있다.
"진짜 라거 맥주는 오직 플젠에서만 맛볼 수 있어요. 다른 지역에서 만드는 건 라거를 따라한 맥주일 뿐이죠."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맥주 박물관 관계자의 단호한 자긍심에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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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너 우르켈의 상징인 비어게이트. 1892년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필스너 우르켈 라벨에 그려진 바로 그 문이다. [사진 체코관광청]

진짜 플젠 맥주 '필스너 우르켈' 맛보기
전통 방식의 맥주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들었으니 이제 직접 맛을 볼 차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을 만드는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Plze?sky Prazdroj) 공장 투어는 플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90분간의 가이드투어로 공장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영어 투어 비용은 190코룬(9400원). 현장에서 접수를 할 수 있지만 선착순 마감이니 최소 하루 전에는 예약을 하는 게 좋다.

필스너 우르켈은 맥주사(史)의 변곡점이다. 이름 자체가 '필스너(플젠지방의)' + '우르켈(원조)'로 진짜 플젠 맥주'란 뜻이다. 이 맥주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탁한 빛깔의 텁텁한 맛을 내는 에일(상면발효·효모를 띄워서 발효하는 방식) 맥주가 주류였다. 하지만 필스너 우르켈이 최초의 라거(하면발효·효모를 가라앉혀서 발효하는 방식) 맥주를 생산하면서 지금의 청량감 있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황금빛 맥주를 만들어냈다.

공장을 들어서기 전부터 정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명 비어게이트(beer gate)다. 개선문과 흡사한 르네상스풍 아치 형태로 묘한 데자뷰를 느낀다. 문득 필스너 우르켈 맥주 겉병에 붙은 라벨을 떠올리니 답이 나온다. 바로 그 라벨에 그려진 비어게이트다.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1892년에 만들어진 필스너 우르켈의 상징이다.

"지난해 27만5000명이 공장을 찾았어요. 올해는 30만 명 이상이 찾아올 거라는 데 내기를 걸죠."

다니엘 슈페일 투어매니저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플젠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며 공신력을 더했다.

투어는 맥주 공장 안을 직접 본 후 전시실로 이동하는 코스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맥주 시음. 진시실 관람이 끝나면 8m 깊이의 지하저장고고로 내려가 전통방식 그대로 오크통에 담긴 '진짜 생맥주'를 한잔씩 따라 준다. 이 맥주 한잔은 특별하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어서다. 공장에서 실제 생산되는 맥주는 현대 설비를 통해 만들어진다. 오직 투어객만을 위해 오크통에서 발효·숙성시킨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맥주 한잔을 받아들고 천천히 음미해본다. 조금은 거친 거품이 입술을 살짝 적시는가 싶더니 풍부하고 진한 홉과 몰트의 향긋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미네랄 함량이 적은 연수(軟水)의 부드러움이 목을 타고 느껴진다. 1842년의 맛 또한 이랬으리라. 한잔의 맥주로 17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냉장과 굴삭 기술이 보잘 것 없던 시대, 오직 부드러운 맥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곡괭이를 들었던 플젠인들의 땀이 이 한잔의 맥주에 녹아 있다.

아쉽게도 이 맥주는 한잔씩만 맛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맨 먼저 줄을 서서 한잔을 빨리 비운 다음 맨 뒤에 가서 다시 줄을 서면 된다"는 꿀팁을 귀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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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젠에서 맛보는 시원한 생맥주와 콜레노(체코식 족발)의 맛(오른쪽)은 일품이다. [사진 체코관광청]

콜레노와 비어스파로 맥주 즐기기
맥주를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외곽에 있는 작은 양조장 겸 호텔인 푸르크미스트르(Purkmistr)를 찾으면 된다. 나무욕조에 미지근하게 데워진 맥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비어스파(beer spa) 시설을 갖추고 있다.
요제프 미치 매니저는 "알콜 성분이 없는 발효 전 맥주 원액으로 피부에 좋다"면서 "클레오파트라도 맥주로 목욕을 했다"고 소개했다. 욕조 한켠에 마련된 수도꼭지에선 생맥주가 콸콸 쏟아진다. 20분간 스파를 즐기면서 얼마든지 마셔도 된다. 스파 후 식당에서 체코식 족발인 콜레노(koleno)와 떡에 가까운 빵과 삶은 고기가 나오는 스비치코바(Svickova)에 곁들어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일품이다.
맥주를 사랑한다면, 플젠은 성지순례 차원에서도 꼭 가봐야할 곳이다. 하지만 꼭 맥주가 아니더라도 올해 한번쯤은 가볼만한 여행지다. 앙투아네트 인형극·재즈 공연·기획 전시회 연중 다양한 유럽문화 수도(www.plzen2015.cz) 이벤트가 펼쳐진다.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체코의 숨겨진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플젠을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플젠(체코)=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취재협조=체코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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