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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다시 살아난 작가 이병주

1982년 봄, 제5공화국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이었다. 광화문 K호텔 커피숍에서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병주 선생을 만나 이렇게 무모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역사란 무엇입니까?” 이제 갓 대학원에 진학한 햇병아리 연구자를 물끄러미 건너다 보던 선생은, 그 무심한 눈빛과 함께 무색무취한 답변을 내놓았다.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일세.”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실망이 컸다. 역사를 믿을 수 없는 것이라니.

당시는 문학에 있어서도 저항정신이 극대화되어 있었고, 민족·조국·역사 등의 언사가 한껏 세력을 떨치던 시기였다. 근·현대사 소재의 장편들로 자기 세계를 이룬 작가가 역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그 상황에 대한 원망이 나의 이해력 부족에서 기인했음을 깨닫는 데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선생이 구체적 설명을 생략해버린 그 언표(言表)를 해독하는 데는 두 가지 절차가 있어야 했다. 하나는 그의 작품을 보다 깊이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 연구자로서 내 견식이 한층 성장하는 것이었다.

선생의 문학은 철저히 신화문학론의 바탕 위에 서 있다. 이 문학론은 인문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 곧 허구적 진실을 부양하는 데 목표를 둔다.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엄청난 재산의 피해가 있었다고 할 때, 그 실상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의 몫이다. 그러나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있고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를 기록하는 것은 문학의 영역이다. 역사는 거기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역사의 그물로 포획할 수 없는, 그 성긴 그물망 사이로 빠져 나가버린 치어(稚魚)와도 같은 삶의 진실을 되살려내는 것이 문학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면, 선생의 간결한 답변은 자신의 문학관을 명료하게 함축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편소설 『산하』의 제사(題辭)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적었다. 그의 어록에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는 술회가 있다.

일제와 6.25를 거치면서 이 땅의 지식인 청년들이 겪어야 했던 좌절로서의 『관부연락선』, 해방공간에서부터 지리산으로 들어간 좌익 파르티잔의 이야기를 인본주의의 시각으로 그린 『지리산』, 그리고 제1공화국의 혼란과 억압의 시기를 한 통속적 인물의 눈을 통해 형상화 한 『산하』는, 선생의 확고한 문학관을 구현한 역작들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 말의 세태를 중인계급 혁명론자의 야심만만한 도전으로 보여주는 『바람과 구름과 비(碑)』, 우등생의 모범답안과 같은 삶을 던져버리고 자유주의 고등룸펜의 길을 간 인물의 이야기 『행복어사전』 등은, 8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소설 세계에서 상상력의 힘으로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이병주 선생의 삶과 문학을 기념하는 이병주국제문학제가 올해로 16회를 맞아, 그의 향리였던 경남 하동에서 지난 2일부터 열리고 있다. 국제문학 심포지엄, 라운드테이블 토론회, 국제문학상 시상식 등의 행사가 이 지역 북천의 10만평 야산과 논밭을 메운 코스모스 축제처럼 풍성하다. 1992년 타계 후 한동안 잊혔던 그와 그의 문학은 이렇게 다시 생전의 위력을 되찾고 있다. 그 작품들을 통독해 보면 왜 당시의 독자들이 ‘우리 시대의 정신적 대부’라 불렀는지 짐작할 만하다.

선생은 일찍이 자기 책상 앞에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고 써 붙였다 한다. 그래서 ‘한국의 발자크’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허만 멜빌의 『모비딕』이 거의 잊혀졌다가 작가의 사후에 새로운 조명과 더불어 되살아나고 마침내 세계적인 고전이 되었듯이, 이 문학 축제 또한 그렇게 작가를 잘 살려내는 역사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종회 #이병주 #산하 #역사 #관부연락선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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