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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라면을 먹다, 우리들 가난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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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꾹꾹 눌러쓴 연필 손글씨로 작업하는 소설가 김훈. 일상적인 제목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냈다.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확대경인 루페로 사전을 들여다 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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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412쪽, 1만5000원


제목부터 김훈(67)다운 산문집이다. 다른 작가가 이런 제목을 선택했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김씨의 문장과 문체, 즐겨 다루는 주제 등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이미지 때문일까. 심심하고 일상적인 제목마저 ‘그래도 김훈인데’ 하고 수긍하게 된다.

 그 힘의 상당 부분은 우선 매혹적인 문장에서 오는 것일 게다. 언제라도 시장기를 발동시키는 마법의 음식, 라면을 다룬 표제 산문에서 그는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 ‘(라면을 오래 먹어 몸에 박인)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고 말한다. 유년의 허기를 추억하게 하는 ‘시장기’는 일종의 ‘영육(靈肉) 복합체’다. 살과 뼈에 각인된 육체적 기억인 맛이 추억이라는 정신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게 시장기라는 얘기다. 절묘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문장의 아름다움은 수사학적 테크닉에 불과한 걸까. 지난 1일 그런 궁금증을 품고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맞은 편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특유의 저음으로 방문자를 확인한 후 문을 열어줬다.

 - 라면이라는 일상용품을 내세워 산문집을 냈다.

 “사물과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그걸 글로 표현해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생활에 바탕이 없는 글은 공허한 수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같은 게 있다. 그런 생각이 일부 글에 나타났을 거다.”

 - 제목에도 그런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

 “처음에는 ‘누항사(陋巷詞)’로 하려고 했다. 어렵다고들 해서 바꿨다.”

 - 일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동안 관념이나 추상성, 그런 데 너무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생겼다.”

 - 예전에도 그런 것들을 싫어하지 않았나.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글 속에 많이 흘러 들어와 있었다. 추상적인 관념어를 동원하면 글쓰기가 쉬워진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관념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실생활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굉장한 의심을 품고 있다. 개념일 뿐 실체 없는 허상, 거기서 인간이 헤어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 가령 ‘평등’ 같은 단어는 관념어인가.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지향성이겠지.”

 김씨에게 관념어는 오히려 ‘국민’ 같은 단어다. 그가 중시하는 개별적인 특성을 상실한 채 추상화, 군집화된 균질적 덩어리인 국민은 정치적 이익집단에 의해 그 의사(민의·民意)가 종종 왜곡되곤 한다. 김씨는 그런 생각을 담아 정치권의 지지부진한 세월호 사태 수습 과정을 질타한 긴 글을 본지 올해 1월 1일자에 기고한 바 있다. 그 글이 ‘세월호’라는 제목을 달고 산문집에 실렸다. 이번 산문집은 2003년 『밥벌이의 지겨움』 등 절판 상태인 세 권의 산문집에서 발췌한 글에 200자 원고지 400쪽 분량의 새 글 다섯 꼭지를 보탠 것이다.

 김씨는 책에서 밥·공·러브·바퀴 등 우리를 둘러싼 유·무형의 일상 풍경을 많이 다뤘다. 그것들을 요리조리 살피고 뒤적이며 분석한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김훈식’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 특유의 사유에 이르는 비결이 있나.

 “한 군데를 가급적 오래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글이 되지는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한가지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새가 알을 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새가 알을 품듯 생각을 품고 싶다. 지극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 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인가.

 “논리적이고 냉엄한 문장, 의견과 사실을 섞지 않고, 사실을 사실로써 전하는 문장이다. 저널리즘의 스트레이트 문장이 그런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요즘 들어 신문에서 그런 문장이 줄어드는 것 같다.”

 - 다시 라면 얘기를 해보자. 자주 끓여 먹나.

 “젊어서 많이 먹었다. 1960년대 처음 나왔을 때는 신기한 식품이었다. 지금은 가끔 먹는다.”

 - 나름의 라면 끓이는 법을 소개했다.

 “오랜 실패와 실험 끝에 터득한 레시피다. 라면 겉봉에 쓰인 대로 끓이면 라면밖에 안 된다. 내가 끓이는 건 새로운 어떤 요리다.”

 - 대파를 넣는 게 특이할 건 없다.

 “계란도 들어간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물의 온도와 양을 잘 맞춰야 하고, 파와 계란을 넣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단순한 음식을 좋아한다. 오이지·무짠지 같은 음식이다. 멸치에 고추장을 찍어 물에 만 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아마 가난한 시대에 고착화된 식습관일 거다. 이제 그만 하자. 밥 먹으러 가자.”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작업실엔 사전 확대경과 중국집 철가방이 …

소설 『칼의 노래』, 산문집 『자전거 여행』의 작가이자 문장가 김훈. 예닐곱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 책상 위에는 큰 사전 대여섯 개가 나란히 펼쳐져 있다. 백과사전· 영어사전·옥편 등 ‘공구서’들이다. 한 사전 위에 짧은 망원경 모양의 도구가 놓여져 있다. 과거 사진기자들이 필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사용했던 ‘루페’, 일종의 확대경이다. 김씨는 “여행할 때 망원경 두세 종을 갖고 다닌다”고 한다. 사물과 풍경을 가까이 당겨보기 위해서다. 물론 작업실의 루페는 사전의 글자를 확대해 보려는 목적이다.

 몇해 전 김씨가 머물던 경기도 안산 선감도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쓰던 중국집 ‘철가방’도 일산 작업실 한구석에 놓여 있다. 원고지를 두툼하게 쌓아 보관하는 용도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A3 용지 크기의 작은 칠판에는 ‘必日新(필일신)’이라는 한자어가 분필로 적혀 있다. 김씨는 “중국 송나라 때의 주자학 입문서인 『근사록( 近思錄)』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날마다 반드시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필일신의 뜻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상유지가 아니라 반드시 퇴보한다는 엄격한 뜻을 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 필일퇴 상태인 것 같다. 저 구절을 지워야 하나 생각 중”이라며 웃었다.

 예전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는 구절을 써놓았었다고 한다. 소총을 항상 사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라는, 군대에서 배운 말이다. 흉하다는 지적이 많아 바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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