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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여야 ‘혁신’ 진통 뒤의 어두운 정치적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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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셰익스피어의 어법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어떤 조직이나 나라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재생이냐 몰락이냐의 문제다. 자체혁신(self-transformation)의 힘이 있으면 재생하고 없으면 몰락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구 선진 국가들의 민주정치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결코 다른 데 있지 않다. 지속적으로 변화를 이루어 낸 자체혁신의 힘 때문이다. 물론 우리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6·10 항쟁 등과 같은 자체혁신의 힘을 통해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에는 이런 자체혁신의 힘이 보이지 않는다.
 
여야 모두 당권 위한 파벌 간 전쟁
당권 내놓느니 선거 패배를 선택
스스로 혁신할 힘 없는 정당에
국민적 압박이 필요한 시점
당장 선거가 없기 때문에
데모라도 해야 할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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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선거를 주기적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치르는 절차적인 민주화는 이루어 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우리 민주정치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말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독립전쟁의 전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미국 사람들의 생각과 습관, 그리고 사회적 관습의 변화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의 생각이나 습관, 그리고 행동은 구태의 반복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옛 정치가의 독백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선거에 지든가 당권을 내놓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라면 선거에 지는 것을 택하겠다’는 독백 말이다. 내년 총선이 코앞이다. 하지만 총선 승리를 위한 여야의 정책경쟁 같은 것은 구경하기 어렵다. 대신 여야가 한결같이 공천권을 좌우할 수 있는 당권 장악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다 보니 정치판이 여야 경쟁과 대립이 아니라 당권장악을 위한 ‘여-여 대립’ ‘야-야 대립’만 부각되고 있다.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진 새누리당, 친노와 비노로 갈라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얘기다.

 정말 여야 모두 동시 몰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새누리당의 비박은 친박의 위압에 눌려 지금 은인자중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미래권력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며 여당의 분열을 몰고 올 수 있는 세력이다. 새정치연합의 비노도 마찬가지다. 제3극 세력으로 새로 출발해 야당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야 지도부는 혁신의 이름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의 혁신 움직임에 어쩐지 진정성도 신선미도 느낄 수 없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만 해도 그렇다. 우선적 혁신과제도 아니고 정치 역학구도 면에서 실현 가능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구 재획정과 같은 우선적 과제를 비켜가려는 임시방편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안심번호 공천 합의는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당권유지용 혁신담합’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는 다수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전쟁이었으며, 정당은 이를 위한 군대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내년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획득하기 위한 여야 간의 전쟁이 아니다.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당내 파벌 간의 전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당권을 내놓느니 차라리 선거에 지는 길을 택하겠다는 모습이다. 우려스러운 정치의 왜소화와 파편화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이런 정치의 왜소화 내지 파편화 현상을 극복하는 비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며, 다른 하나는 의회정치의 활성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에서 이런 것들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선 여야 대표에게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내의 융화는 물론 통솔도 어려운 실정이다. 둘 다 왜 정치를 하는지 분명한 철학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의회정치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는 ‘권력과의 관계를 부단히 유지하면서 보다 큰 것에 대한 관심’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특정 시기에 무엇이 가능한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야 대표에게서 이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여야 혁신 진통 너머의 정치적 그림자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두 정당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의 왜소화와 파편화가 초래하는 현상은 둘 중 하나다. 선동적인 포퓰리즘 정치거나, 아니면 제왕적 권력의 독주정치다. 바이마르 정당정치의 왜소화에 대한 베버의 우려나, 카이사르의 권력독점에 대한 브루투스의 우려가 우리의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서 자체혁신의 힘이 없는 정당에 대한 국민적 압박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선거가 없기 때문에 데모라도 해야 할 형편이 아닌지 모르겠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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