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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버림받고 상처받아 엇나가는 애들 ‘괴물’로 자라지 않게 악역 떠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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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경사

“저는 (엄마가) 미혼모라서 다행이에요. 쟤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대요.”

범죄 저질러 경찰서 오면 너무 늦고
말로만 타이르며 놔둘 수도 없고

탈선 청소년 재판 거쳐 보호·교육
‘우범소년 송치제도’ 찾아내 활용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꺼내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어. 마치 남 얘기를 하듯, 너희는 태연했지. 눈동자조차 흔들리지 않더구나. 초희(16·가명), 예나(16·가명)야. 아줌마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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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시설인 소년분류심사원에서 하얗고 동그란 민낯으로 “엄마 찾고 싶다”고 말하는 지금 너희 모습을 보면 지난달 처음 만났을 때가 먼 옛날처럼 느껴져. 그때 초희, 널 찾으려고 이 아줌마가 얼마나 뛰어다녔던지…. 분명히 네가 ‘OO 청소년 쉼터’에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는데 화장을 떡칠한 여자애 둘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지. 분명 아줌마가 갖고 있던 사진 속 초희는 쌍꺼풀도 없었고, 머리를 질끈 묶고 안경을 쓴 영락없는 중학생이었는데…. 그때 예나가 네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서야 네가 초희라는 걸 알았어.

 서울가정법원 최은주 부장판사님이 너희를 데려오라고 발부해준 동행영장을 보여주니 거세게 저항하더구나. “아줌마 뭐예요. 나, 초희 아니야. 아줌마가 뭔데 이래요.” 소리치는 네 어깨를 붙잡고 말했지. “초희야. 침착해. 이제부터 아줌마가 도와줄게.” 너희는 거칠게 행동했지만 실은 습자지 같았어. 얇디얇아 언제 바스러지고 찢어질지 모르는 종이.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이 아줌마는 너희에 대해 많은 걸 알아. 어른들이 너희를 어떻게 대했는지, 왜 너희가 세상과 맞서게 됐는지. 아줌마도 너희 또래의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니까.

 아줌마가 지난 5월 처음으로 법원에 송치한 아이는 정희(16·가명)였어. 정희 엄마가 당직 중인 아줌마에게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고 했지. 정희는 아줌마가 찾아가자 “씨X. 담배나 가져와”라며 꽥꽥 소리만 질렀어. 정희는 창문에 머리를 부딪혀 빨간 피를 흘렸지. 그때 아줌마는 이러다 정희에게 무슨 일이 날까 봐 너무 무서웠어. 아줌마는 정희를 무사히 소년분류심사원에 보내 놓고는 며칠을 앓아누웠어. 웃기지? 칼을 든 범죄자와 마주쳐도 떨지 않던 내가 너희를 보면 너무 무섭고 긴장하는 거야. 지난주 보호기관에서 만난 정희는 “엄마 밥이 먹고 싶다”며 울먹이더구나.

 있잖아. 초희, 예나야. 아줌마는 2000년 경찰이 됐는데 강원도에 있는 경찰서 강력계·수사계에서 일했어. 그때 범죄를 저지른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너희같이 아픈 어린 시절을 보냈더구나. 그때 생각했지. ‘이 사람들도 어린 시절 누군가 바른길을 알려줬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여성청소년과에 지원했어. 결국 4년 전 바라던 여성청소년과에서 일할 수 있었지.

 최은주 판사님은 사실 아줌마도 올 4월 처음 만났단다. 아줌마가 너희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최 판사님을 찾아갔지. 범죄를 저질러 경찰서에 왔을 땐 너무 늦고, 그렇다고 너희를 무작정 말로만 타이르면서 밖에 놔둘 수도 없어 고민하던 때였어. 그러다 ‘촉법소년·우범소년 송치제도’라는 걸 알게 됐어.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인데, 술 마시고 몰려다니는 등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큰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제도야. 재판을 거친 뒤 범죄 우려가 얼마나 큰지에 따라 보호시설에서 교육을 받거나 소년원에 갈 수도 있어. 서울경찰청에선 한 번도 적용한 적이 없지만, 전과가 남지 않는다는 얘길 듣고 ‘이거다’ 싶었지. 최 판사님도 아줌마가 찾아가자 “그 제도를 활용해 보자”고 반겼어.

 초희 네가 말했던가. “우리 같은 애들을 보면 99년, 2000년생이 많아요. IMF 때문이래요.” 우연일까. 지금까지 아줌마가 최은주 판사님과 함께 법원에 송치한 여섯 명의 아이들 모두가 그 또래였어. 그래서 최 판사님과 아줌마는 서로를 ‘99 키즈의 대모’라고 불러. 그러고 말하곤 하지. “그냥 애들 방치하면 정말 괴물이 될지도 몰라요. 악역은 우리가 맡아야죠.”

 지금은 아줌마를 원망해도 좋아. 몇 년만 아줌마들 믿고 반듯하게 커 주렴. 얘들아. 사실 너희가 아줌마 명함을 버리지 않고 이름표 뒤에 넣어놓은 걸 보고 눈물이 났어. 이제 조금 마음을 연 것 같아서…. 아줌마가 늘 말하는 그거 알지?

 “내가 사준 밥을 먹는 순간 너희 목숨은 네 것이 아닌 아줌마 거야.” 그러니 죽는다는 얘기는 하지 말자. 아줌마가 곁에 있어 줄게.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이 기사는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이윤희(41·사진) 경사 등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이 경사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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