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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주의 도와야 역사수정주의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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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일본 안보 법안의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되 부정적 측면은 완화하거나 없애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냉정한 현실 판단에 입각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주문했다. [조문규 기자]


지난달 19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일본의 안보 법안이 마침내 처리됐다. 1946년 평화헌법 제정 이래 70년 가까이 지켜온 ‘전수(專守)방위’ 원칙이 사실상 깨진 셈이다. 이로 인해 한국·중국 등 주변국에서는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일본 군함이 당장 독도 앞바다에 나타날 것 같은 위기감마저 조장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걱정만 할 일인가. 만사 그늘이 있으면 볕도 있는 법이다. 이번 일본의 안보 법안 통과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난달 23일 신각수 전 주일대사(60·법무법인 세종 고문)를 만나 의견을 구했다. 신 전 대사는 대표적 일본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일본 집단적 자위권의 긍정적 면은 극대화하되 부정적 측면은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실리론을 역설했다.

 
  


-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안보 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우선 안보 법안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아베 정부는 지난해 7월 해석개헌을 통해 그간 금지돼 온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내각 결정을 했다. 그런 뒤 올 4월 말 미국을 방문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고쳤다. 그러곤 미 의회 연설을 통해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 일본에서 시행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약속이 구체화된 게 바로 안보 법안이다. 이는 모두 11개 법안으로 돼 있는데 이 중 10개는 개정, 1개는 제정 법안이다. 이 안보 법안은 지난 3~4개월 동안 중의원과 참의원을 거쳐 결국 지난달 19일 새벽 채택됐다. 지금까지 일본은 평화헌법으로 인해 집단적 자위권을 쓸 수 없었지만 이번 법안 처리로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이렇게 된 데는 그간 일본이 줄기차게 추구해 온 정상국가화 노력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1990년대 초 일본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120억 달러를 지원했지만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했다. 평화헌법을 의식해 병력을 파견하지 못한 채 물적 지원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미군의 후방 작전이나 국제적 평화유지활동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제한이 있어선 안 된다고 여기게 됐다. 이런 인식하에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제한이란 족쇄를 푸는 작업을 추진해 왔으며 그 노력이 이번 아베 정권에서 완성된 셈이다.”

 - 미·일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기존의 미·일 안보조약은 일방통행적 성격이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을 돕기만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일본도 해외에서 무력을 쓸 수 있어 쌍무적 조약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추진 중인 아시아 지역 내 재균형 정책이 적잖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미·일 동맹 강화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 동북아 상황을 유동적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과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 부대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미·일 동맹 강화가 한반도 위기 사태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안보 법안 통과로 우려되는 점은.

 “미·일 동맹 강화의 1차적 목표는 부상 중인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미·일이 자신을 포위하려 한다고 인식해 이에 따른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다. 덩달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등 서방 측 제재를 받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려 할 것이다. 결국 동북아에서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 간 대결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자체로는 아베 재집권 후 보수 우경화가 심해지고 역사수정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군사적 역할 강화를 추진 중인 일본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지면 부정적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 이번 안보 법안 통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가속도가 붙어 한국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것 아닌가.

 “타당한 우려다. 일본은 현재 역사수정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흐르고 있다. 이런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면 침략당했던 중국과 한국 등 주변 국가들로선 불편해질 게 분명하다. 다만 이번 상황을 일본 사회 전체의 군국주의화로만 몰 일은 아니다. 이번 안보 법안 처리 과정에서 봤듯 일본 국민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50~55%가 반대하고 지지는 30% 내외다. 일본 여론의 향배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1960년 기시 총리하에서 신안보조약이 체결된 이후 이번처럼 일본 국민이 대규모로 행동에 나선 적은 없었다. 평화헌법 제정 이후 지난 70년 가까이 일본 사회에도 평화주의가 상당히 뿌리내렸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일본이 역사수정주의를 통해 과거로 회귀하는 걸 경계해야 하는 건 분명하나 지나치게 행동해서도 곤란하다. 오히려 일본 내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보수 우파를 돕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 그럼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안보 법안 처리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되 부정적 측면은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엔 과거사 문제가 걸려 있다. 그러다 보니 감정에 흔들리기 쉽다. 냉정한 현실 판단에 입각해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영국·독일·프랑스·러시아 등 여러 강국이 있다. 반면 동북아에선 중국이 압도적이다. 경제력만 해도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었다. 군사력도 빠른 템포로 증강 중이다. 미·일 동맹 강화가 지역 내 세력 균형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또 대북 억지력도 커져 북핵 해결 및 궁극적으로 통일 과정에서의 일본 측 협력을 더 용이하게 얻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동북아 내 미·일 대 중·러 간 대립 구도가 악화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우리다.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일본이 과거 회귀적, 역사수정주의적 방향으로 흘러 이 나라의 강화된 군사적 역할이 한반도 주변 환경을 우리에게 불리하게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변국들과 협력,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 내 안보협력 체제와 대화기구가 생길 수 있도록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 안보 면에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할 수 있는 사안은.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이 가장 쉬운 사안일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대응에도 협력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때에도 서로 도울 수 있다. 명심할 건 이 세 가지 모두 한·미 동맹이 기본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주한미군이 제 몫을 하는 게 중요하다. 주한미군 작전 시 일본이 후방지원을 맡을 수 있다. 정보 분야의 핵심 업무로는 지휘·통제·통신·정보·감시·정찰 등이 있다. 이 모든 분야에서 한·미는 상당히 통합돼 있다. 미·일 간에도 긴밀하다. 따라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해 한·일 간 정보 협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한국이 한·미·일 동맹에 완전히 몰입해 중국과 대립 구도를 만드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 중국과 전략적 대화를 나눠야 한다.”

 - 일본에 너무 과도한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는데.

 “아베 정권 출범으로 우리가 가장 못마땅한 부분은 일본이 역사수정주의에 빠져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일본의 역사 인식 교정과 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일본도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간 나름대로 노력한 게 있다는 사실이다. 노력한 건 노력한 대로 인정해 줘야 한다. 일본은 특히 평화헌법 아래 평화국가로서 아시아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일본의 잘못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하나 잘한 부분은 독려해야 한다. 가해자가 반성하고 사죄하면 피해자도 관용을 보여줘야 한다. 이게 병행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 앞으로 일본 자위대가 멋대로 우리 영해 안에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본 우리로서는 일본의 최근 움직임에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더구나 아베 총리가 역사수정주의를 통해 과거를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행태를 보여온 탓에 충분히 그런 걱정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따른 전체적인 동북아 환경 변화 및 이로 인한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 한쪽에 치우치면 활용할 기회를 잃게 된다.”

 - 아베 총리가 향후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위한 추가 조치를 할 가능성은 없을까.

 “정상국가화와 역사수정주의는 다르다. 정상국가화는 아베 정부 이전부터 있었던 일본 보수파의 염원 같은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군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는 게 정상국가화의 요체다. 반면 역사수정주의는 아베 정부 출범 후 뚜렷해졌다. 정상국가화를 향한 과정에서 예상되는 일은 세 가지다. 우선 아베 정권이 원래 의도했던 평화헌법 제9조의 수정이다. 하지만 일본 국민 다수가 반대해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완전한 집단적 자위권 확보다. 여론의 반대로 이번에 처리된 법안에서는 제약이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만이 허용되게 됐다.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세 가지 요건이 붙어 있다. 이 때문에 국제법상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관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끝으로 아베 정권은 그동안 고수해온 전수방위 원칙을 버리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일본이 전수방위 원칙을 지킬 것인지 판단하는 방법은 공격용 무기의 확보 여부를 지켜보는 것이다. 예컨대 공중 급유기와 장거리 수송기·폭격기 등은 확실한 공격용 무기들이다. 또 일본이 수비보다는 공격적 성향이 짙은 해병부대를 양성하는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개헌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반면 전수방위 원칙의 무력화는 꾸준히 추진될 걸로 본다. 결국 미·일 간 군사동맹의 범위를 넓힌 게 이번 안보 법안이다. 일본 자위대는 필요하면 페르시아만이나 남중국해에도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무기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미국도 이를 지지하는 입장인 만큼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일본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이 나라 의회가 통제할 수 있다.”

글=남정호 논설위원
사진=조문규 기자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

서울대 법대 졸업 후 1976년 당시 외무부에 들어간 뒤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을 시작으로 일본과장, 주일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부 내 대표적인 일본통. 국제법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학구파로 일본 도쿄대·게이오대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일본 관련 업무 외에 유엔대표부 차석대사·이스라엘 대사 및 외교통상부 1·2차관 등 요직을 거쳤다. 지금도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특임연구원 및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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