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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다같이 돌자, 창신동 백남준 생가 터 → 박수근 가옥 → 봉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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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197-33번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생가 터다. 그가 살던 집은 1950년대에 헐렸다. 현재 이곳엔 붉은색 벽돌의 개량 한옥이 들어서 있다. 지난 8월 10일 서울시는 이 건물과 부지(154㎡)를 약 10억원에 매입했다. 백남준 10주기가 되는 내년에 이곳을 문화전시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창학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백남준 기념관이나 지역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등 여러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골목길 답사 프로그램 추진
동묘, 봉제거리 박물관, DDP…?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문화 공간


 부유한 포목상 막내아들로 태어난 백남준은 18세 때까지 창신동에서 살다가 홍콩으로 유학을 갔다. 이후 독일 쾰른, 미국 뉴욕 등에서 다양한 작품활동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백남준과 함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던 이경희(백남준문화재단 이사) 수필가는 “3000여 평 규모였던 백남준의 집엔 당시 국내에 두 대밖에 없던 캐딜락이 있었다”며 “84년 고국을 35년 만에 찾자마자 그는 내게 ‘창신동에서 만나자’고 할 만큼 유년 시절의 공간에 애착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백남준은 2004년 마지막 신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어려서 자란 창신동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백남준 생가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박수근(1914~65) 화백의 가옥이 있다. 우물가(53년)·빨래터(50년대)·길가에서(54년) 등 그의 많은 대표작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서민의 애환을 그린 그의 작품들은 창신동 골목, 청계천 빨래터 등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박 화백의 장녀 박인숙(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씨는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하모니카로 ‘뻐꾸기 왈츠’를 연주하면 어머니와 삼남매가 다 함께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기억했다.

 창신동 일대엔 2000여 개의 봉제공장도 있다. 50년대 광장시장이 의류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창신2동을 중심으로 공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내 봉제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창신동 ‘봉순이 언니’들의 재봉틀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젊은 디자이너와 숙련된 봉제인력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거리에 활기가 차츰 살아나고 있다.

 서울시는 관광객들이 해설사와 함께 백남준 생가와 박수근 가옥, 봉제공장 골목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창신동 골목길 답사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대엔 동묘, 봉제거리 박물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역사·문화 공간도 풍부하다. 신중진(성균관대 교수) 창신·숭인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창신동은 창신(昌信)이란 기존 지명보다 예술가들의 창조 혼이 서려 있다는 뜻의 창신(創新)이란 이름이 더 어울린다”며 “창신동 자체가 훌륭한 스토리텔링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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