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서소문 포럼] 대학은 떳떳한가

기사 이미지

양영유
논설위원

9조4000억원. 올해 대학에 지원되는 국민 세금이다. 명칭과 명분도 다양하다. 대학특성화(CK)·학부교육선도(ACE)·산학협력선도(LINC) 사업 등등. 액수가 많다고는 볼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1%를 약속했지만 우리의 고등교육 정부 부담금은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0.7%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평균 1.1%다.

 그런데 9조4000억원의 위력은 세계 최고다. 교육부는 ‘돈의 공습’을 통해 대학에 수퍼 갑(甲)으로 군림한다. 주로 급소를 집중 공략한다. 총장 선출 방식부터 학사, 등록금, 대입에 이르기까지 한 방 때리면 꼼짝 못하는 곳을 안다. 그 과정에서 교육 관료들의 팔뚝엔 완장(腕章)이 채워졌다. 세계 어느 나라 공무원이 이만한 위세를 부릴까.

 나는 교육부 폐지론자다. 일관성·지속성·독립성이 결여된 관치(官治)가 외려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해서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없어도 될까.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런 상황을 그려보기도 쉽지 않다. 전국에 433개나 되는 고등교육기관 운영을 몽땅 자율로 할 경우 건강한 책무시스템이 작동할지 미덥지가 않다. 어느 해는 등록금을 최고 15%나 올려 월급 잔치를 하고, 연구비를 유흥비로 탕진하고, 유령 학생에게 졸업장을 남발하고, 학생은 안중에도 없는 재단의 아귀다툼을 숱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2012 감사원이 바라본 대학』 중에서). 교육 관료의 팔뚝에서 완장을 떼어낼 만큼 대학이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세 가지만 예로 보자.

 먼저 총장 직선제다. 지난 8월 17일 부산대 교수의 투신을 계기로 점화된 국립대 총장 직선제 회귀는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다. 부산대에 이어 충남대도 조만간 직선제 부활 여부를 결정한다. 이 시점에서 1980년대 민주화 바람의 산물인 총장 직선제가 재론되는 것은 희화적이다. 전직 총장에게 들은 말이 가슴을 때린다. “밥 사주고 술 사주며 표를 부탁했지. 당선돼 보니 패가 갈리고 챙겨줄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다시 나간다면 성(姓)을 갈겠네.”

 사실 교육부가 총장 선출 방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국제적 망신감이다. 그 원초적 책임은 대학에 있다.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할 선거의 대원칙을 망각하고 20여 년 동안 정치판 흉내만 냈다. 그러다가 교육부에 약점을 잡혔다. 간선으로 전환하라는 선전포고가 내려졌다. 공격 무기는 행·재정 불이익이었다. 결국 대학들은 두 손을 들었다. 완장의 전횡에 지성은 무기력했다.

 강제 정원 감축은 완장의 극단이다. 대학 신입생보다 고교 졸업자가 부족해지니 정원 감축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전국의 대학을 등심처럼 5등급으로 매겨 n분의 1씩 줄이라고 강요하는 건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이번 사태는 대학 설립 과잉이 부른 부메랑이다. 즉 교육부의 무책임과 자기혁신에 담 쌓은 대학의 태만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완장들은 약다. 대학 설립준칙주의가 시행된 20년 동안 도장을 마구 찍어준 데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어느새 개혁 길잡이로 변신해 구조조정 물타기를 한다. 결과적으론 대학이 완장의 장단에 놀아난 격이지만 그렇다고 방목하면 모두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변화를 저어하며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구성원들이 치열하게 되뇌어야 할 과제다. 완장을 머쓱하게 할 대학의 자발적인 혁신은 요원한 일인가.

 게다가 대입마저 ‘돈의 유혹’에 흔들렸다. 대학들은 ‘물 수능’으로 학생 선발에 어려움을 겪자 대학별 입시를 비틀었다. 1000가지가 넘는 난수표 전형에다 광개토왕 비문 같은 논술 문제로 수험생에게 갑질을 했다. 갑의 맛을 아는 교육부가 이를 놓칠 리 없다. 논술 폐지 대학에 사탕을 뿌리자 앞다퉈 받아먹었다. 입시 자율을 외치던 대학이 순치의 모순에 빠진 것이다.

 물론 살림이 팍팍한 대학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등록금 동결로 인한 어려움도 클 것이다. 한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총장부터 관치의 활보를 재정 탓으로만 돌리며 지성의 자존심과 책무를 외면하는 건 비겁하다. 일부 희생이 있더라도 기득권을 버리고 선제적인 개혁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래야 떳떳해진다. 언제까지 교육 관료의 완장에 휘둘리려는가.

양영유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