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당당해라 스타트업

기사 이미지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관성은 달리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정부 예산에도 관성이 있다. 한번 배정했던 예산은 여간해선 줄이기 어렵다. 중소기업 지원처럼 명분까지 그럴듯하면 더 그렇다. ‘정부는 각성하라’는 구호가 나오면 당해 낼 재간도 없다.

 사정이 이런데 내년 예산안에는 대담한 ‘0원’이 있다. 전액 삭감을 당한 분야는 모태펀드 출자다. 모태펀드는 펀드의 펀드, 종잣돈이다. 이 돈을 토대로 민간 자금을 추가로 모아 자식 펀드를 만든다. 자식 펀드는 싹수 있는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관성대로 하면 창업 지원책인 모태펀드 출자금을 삭감할 이유는 없다. 당장 “창업 붐에 찬물”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전액 삭감에 박수를 보낸다. 착시부터 걷어내자. ‘전액’이라고 하니 당장 돈이 바닥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10년간 돈이 쌓였고, 그 돈이 계속 구르면서 부푼다. 따라서 신규 출자 없이도 연간 3000억원은 새로 만들 수 있다. 당장 큰일 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스타트업은 선배 중소기업인과 달랐으면 한다. 실제 영향은 제쳐놓고 ‘약자를 외면하는 정부’ 식으로 정치적 방어막부터 치는 관성 말이다.

 전액 삭감은 또 스타트업 성장을 축하하는 졸업장이자 이제는 일을 맡겨 보자는 계약서다. 애초부터 창업 투자는 정부 일이 아니다. 정부 임무는 멍석 깔기까지다. 재주는 민간이 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창업 생태계가 튼튼하고 오래간다. 문제를 제기하자면 끝이 없다. 너무 긴 투자 회수 기간, 기업 인수 후 키우는 능력의 부족, 작은 자본시장 규모…. 선후와 인과도 얽혀 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가려 한다면, 결국 남는 질문은 ‘스타트업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다.

 투자 활성화를 결정하는 것은 창업 기업의 양이 아니다. 한국보다 3~5년을 앞섰다는 중국 창업계 뒤에는 실리콘밸리 자금이 있다. 미국 돈이 중국에 가는 건 투자할 만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기준은 세계 시장에서 통할 가능성이 있느냐다. 이 기준에 근접한 스타트업이 적으면 모태펀드 예산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 없다.

 문화는 달라졌다. 청년들이 창업을 가치 있는 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타트업이 자기 실력을 더 키웠으면 한다. 지난달 말 구글 코리아의 ‘스타트업 지속 가능성 토론회’에서 나온 투자업계 얘기도 곱씹어 보길 바란다. “한국 스타트업이 외국 투자를 받을 만큼 매력적인가.” “아이디어 외에 핵심 기술이 있는가.” “생각하는 길이나 깊이가 짧거나 얕다.” “집에 가야 할 업체가 오래 남아 있다.”….

 경제가 답답하다. 현상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다. 그래도 기대를 베팅하자면 나는 스타트업에 올인한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처럼 정부에 성장의 빚을 지지도, 중소기업처럼 정부에 애걸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스타트업.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