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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어도 곳곳에 한국제품 … 아무르강 따라 한류 꿈틀

1 극동 러시아 지역의 젖줄 아무르강은 하바롭스크에서 남쪽에서 흘러온 우쑤리강(왼쪽 아래)과 만난 뒤 크게 방향을 틀어 북동쪽으로 흘러간다.


중국과 러시아를 가르는 국경 역할을 했던 아무르강이 중·러 교역 통로로 용틀임하고 있다. 두 나라 간 교역이 확대되면서 국경 주변의 도시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전문가가 동행한 중앙SUNDAY 취재팀은 지난 12~21일 중국 북부와 러시아 극동지방의 젖줄인 아무르강과 레나강을 탐사했다. 아무르강 중상류인 헤이허(黑河)를 시작으로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와 하바롭스크를 거쳐 강 하구인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이하 니콜라옙스크)로 이어진 9박10일간의 탐사 동안 지역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취재팀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을 거쳐 지난 13일 북쪽 국경도시 헤이허에 도착했다. 헤이허는 아무르강(중국 이름 헤이룽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와 마주 보고 있는 도시다. 전체 길이가 2800㎞에 이르는 아무르강에서도 비교적 상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헤이허 중심가에는 20층이 넘는 대형 호텔이 건설 중이었고, 기차역도 새로 들어섰다. 헤이허 외곽의 ‘변경 경제합작구’에서는 한꺼번에 대형 공장 7~8개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2 아무르강 상류에 위치한 중국 헤이허의 출입국관리사무소. 러시아로 들어가는 여객선을 타기위해 중국 상인들이 짐과 가방을 나르고 있다.

3 아무르강을 다니는 중국 유람선의 오성홍기 뒤편으로 러시아 국경수비대 경비함이 보인다.


극동 러시아와 중국 연결 초읽기 상하이 푸단대 국제정치학과의 이창주 연구원(박사과정)은 “러시아와의 무역을 염두에 둔 중국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며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가 철도·도로로 이어지면 극동 러시아 전체가 중국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는 양국이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물류 루트로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아무르강은 한강이 서울의 강남·북을 나누는 것과 흡사했다. 강 너비도 1㎞ 남짓해 엇비슷했고, 중국에 가까운 곳에는 여의도처럼 작은 섬도 있었다. 하중도에는 중국 측 출입국관리사무소와 두 도시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 부두가 들어섰다.


 하중도에는 중국과 러시아 상품을 파는 대형 쇼핑센터 두 개가 있다. 가게를 둘러보니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중국 상인이 러시아 상표가 붙은 쌍안경과 마트료시카 인형까지 팔았다.


 아무르강 양쪽에는 양국 주민들이 물놀이와 낚시를 했다. 서울의 한강 유람선처럼 중국 측 유람선을 타고 두 도시를 한 시간 동안 둘러봤다. 중국 유람선과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경비함이 평온하게 오갔다.


 아무르 강물은 헤이룽강이란 이름이나 헤이허란 도시 이름처럼 짙은 갈색이다. 숲이나 습지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은 타닌 성분 때문에 갈색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강현 APOCC 원장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흑수말갈도 이 아무르강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찾은 중국 하얼빈시 중심가의 헤이룽장성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제는 “백산(白山), 흑수(黑水), 해동청(海東靑)’. 백두산과 헤이룽강, 한반도산(産) 맹금류인 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극동 러시아의 젖줄인 아무르강이 우리 민족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가는 통로 교역량이 늘고 있지만 두 도시를 잇는 다리는 없었다. 취재팀을 안내한 허우쓰웨이(44)는 “중국이 두 도시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서둘러도 중국 사람들이 너무 밀려드는 걸 경계하는 러시아 쪽에서 자꾸 미루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신 두 나라 사이에는 여객선이 오가고 있었다. 여객선은 하루 8번 왕복한다. 중국 측 배가 네 번, 러시아 측 배가 네 번 오간다. 중국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중국 사람은 중국 여객선을, 러시아 사람은 러시아 여객선만 타야 한다”며 “한국인도 중국 여객선에 승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막상 러시아 측에서는 러시아 여객선을 타는 게 맞다며 이미 내린 취재팀에게 또다시 뱃삯을 요구했다. 실랑이 끝에 어쩔 수 없이 1인당 300루블(약 6000원)을 더 내야 했다.


 취재진이 탑승한 중국 여객선에는 커다란 가방과 짐 꾸러미를 든 ‘보따리 장수’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이란 말에 20대 여성들은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하며 반겼고, “안녕히 가세요”하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한국 TV드라마를 보고 배웠단다. 한국 사람이 드문 중국 북쪽 국경지대에서도 한류(韓流) 바람이 닥친 모양이다.


 배에서 만난 30대 중국 여성은 두 시간 뒤 블라고베셴스크 내 대형 시장에서 다시 마주쳤다. 블라고베셴스크 시장과 쇼핑센터는 중국에서 건너온 옷과 신발, 다양한 생필품으로 넘쳐났다. 상점에서 일하는 상인들도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시내 거리나 레스토랑에서도 중국인이 많았다.


 중국·러시아 간 교역이 늘어나자 북한 노동자들도 러시아로 드나들고 있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는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에서 중국 단둥(丹東)까지 기차로 이동한 다음, 단둥에서 20시간 버스를 타고 헤이허로 온 뒤 러시아로 들어간다”고 했다. 30~45세의 남자들이고 20~100명 단위로 이동하는데, 러시아 곳곳에서 도로 건설 등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3~6월에는 러시아 쪽으로 자주 들어가고 9~10월에는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KMI의 황윤희 연구원은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를 정비할 때 북한 노동자들이 집중 투입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15일 야간 열차를 타고 하바롭스크로 이동했다. 하바롭스크 근처에 이르면 아무르강은 러시아와 중국을 가르는 국경의 역할을 멈추고 온전히 러시아 영토로 들어서게 된다. 또 중국 쪽에서 흘러온 우쑤리강과 합쳐져 북동쪽으로 방향을 크게 튼다. 아무르 강변에 위치한 하바롭스크에서는 한국인 여행객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중국인·일본인 여행객의 모습이 훨씬 더 자주 눈에 띄었다.


 한국외대 김현택 러시아연구소장은 “러시아로서는 중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융단 폭격처럼 중국 상품이 밀려드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적지 않다”며 “러시아 사람들이 저가의 중국 상품에 실망하게 되면 한국 상품에 눈을 돌릴 수도 있고, 그게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환동해 시대 맞이해 주시해야 할 지역 취재팀은 다시 16일 아무르 강 하구 도시인 니콜라옙스크로 출발했다. 44인승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바롭스크 공항에 나갔지만 비행기가 예정보다 6시간이나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늦은 밤에야 니콜라옙스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좌석 지정도 없었고, 가방도 공항 밖까지 트럭에 실려온 것을 직접 줄 서서 받아야 했다.


 이곳에서 아무르강은 강폭이 5~6㎞까지 넓어졌고 특유의 갈색 물빛을 보이며 도도히 사할린 쪽 타타르해협을 향해 흘렀다. 니콜라옙스크 항만관리사무소 안드레이 스피리도노프 소장은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는 강과 바다가 얼어붙어 항구로서 기능을 못한다”며 “과거 선장으로 일할 때 한국의 부산·마산·인천에도 가 봤지만 니콜라옙스크에 한국 사람이 방문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인들이 찾지 않는 이곳에도 한국 제품은 가득했다. 호텔 객실 이불에는 ‘향 마이크로’ ‘음이온’이란 글자가 선명했고 전화기도 LG 제품이었다. 또 호텔 로비에는 삼성 TV가, 아파트 건물에는 LG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었다. 수퍼마켓에는 한국 과자와 라면, 기아자동차의 1t 트럭도 눈에 띄었다.


 주강현 원장은 “한국인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아무르강 유역이지만 한류 바람과 한국 제품 덕에 벌써부터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며 “환동해 시대를 맞아 한국이 적극적으로 주시해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헤이허·블라고베셴스크·하바롭스크·니콜라옙스크=강찬수 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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