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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도 운송수단이던 1977년 국내 상륙…DHL ‘전 세계 3일 내 배달’로 수출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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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현재의 택배 사업인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에 대한 빗장을 연 게 1977년이었다. 그것도 해외 수출과 관련된 품목만 허용했다. 150개 업체가 국제 운송 면허를 신청했다. 26개 업체에 허가가 떨어졌다. 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갖고 수입 사무용품을 다루던 배광우(78·사진) 일양상운 대표도 그중 하나였다. 배 대표가 DHL과 한국 총대리점 계약을 맺으면서부터 DHL과 한국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금이야 글로벌 대도시 간 24시간 내 국제특송이 가능하지만 당시만 해도 어림없는 얘기였다. 중국·일본도 일주일 이상, 미주·유럽은 12~15일, 기타 지역은 15~30일까지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 수출 관련 서류가 수출 화물보다 늦게 도착해 업무에 차질을 빚는 일도 다반사였다.

 DHL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계해 당시에도 전 세계 어디든 3일 내에 수출 서류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배 대표는 “국내 운송에 지게도 흔히 쓰이던 시대에 전 세계 어디든 3일 내에 배달하는 서비스는 획기적이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DHL코리아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서울 체신청장은 수출 서류 배달 사업을 독점했다며 서비스 중단 통지문을 보내왔다. 그러자 DHL 공동 창업자인 래리 힐브룸이 한국으로 날아와 DHL 서비스의 정당성을 알리는 진정서를 정부에 냈다. 다우케미컬·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기업도 “DHL의 특송 중단으로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의견을 내 힘을 보탰다. 한국전력이 해외 물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발전소 건설이 늦어진다는 보고를 올린 게 결정타였다. 결국 정부는 급히 우편법을 개정했고 DHL은 78년 1월 서비스를 재개했다.

 이후 DHL코리아는 신발·의류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이어진 대한민국 수출 신화와 함께했다. 현재는 직원 1210명, 고객사 3만1000곳을 둔 회사로 성장했다. 배 대표는 DHL코리아를 운영하며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물류업계 최초였다. DHL코리아는 2009년 4월 600억원을 투자해 인천국제공항 자유무역지역에 2만㎡ 규모 게이트웨이(물류 허브)를 준공했다. 한병구(58) DHL코리아 대표는 “한국이 동북아 허브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본=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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