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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막춤’에 파리가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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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가을축제 공식 초청작으로 27일(현지시간) 파리 중심부 ‘테아트르 드 라 빌’ 대극장 무대에 오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대표작이다. 전문 무용수가 아닌 60∼80대 연령의 일반인 할머니들이 몸의 기억을 춤의 에너지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사진 안은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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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사심없는 땐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무대로 나와 교복 차림의 안은미(왼쪽)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안은미컴퍼니]

1시간30분 동안의 공연이 끝이 났다. 음악이 그친 뒤에도 할머니들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1000여 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손뼉을 쳐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조명이 완전히 꺼져 할머니들의 모습이 깜깜한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돼 어깨를 들썩였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변 ‘테아트르 드 라 빌’ 대극장. 피나 바우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얀 파브르 등 세계 현대무용계의 거장들이 섰던 무대가 이날은 한국 할머니들의 ‘막춤’으로 뜨거워졌다.

 올해로 44회째를 맞은 파리가을축제가 현대무용가 안은미(53)의 ‘땐스’ 3부작을 모두 공식 초청했다.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만든 ‘사심없는 땐스’(23∼25일), 60∼80대 할머니들이 출연하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27∼29일), 중년 남성들의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10월 2·3일) 등 모두 일반인들을 무대에 세워 각자의 몸에 저장된 역사와 철학을 춤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이날 공연한 ‘조상님께…’에는 일반인 할머니 11명과 할아버지 1명이 출연했다. 태어나 처음 무대에 서는 이들은 ‘울릉도 트위스트’ ‘백만송이 장미’ ‘단발머리’ ‘사의 찬미’ 등 흘러간 가요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장르도, 국적도 없는 이들의 춤에선 인생의 희로애락이 묻어났다. 중간중간 안은미컴퍼니의 프로 무용수들이 꽃무늬 셔츠와 빨간 내복, ‘월남치마’와 ‘몸빼바지’ 등 전형적인 할머니 패션으로 등장해 무대 위를 쏜살같이 뛰어다니며 할머니들이 살아낸 질곡의 세월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할머니들의 춤은 한없이 흥겨웠지만, 절대 가볍지는 않았다. 몸 동작이 격해질수록 삶의 의미가 숭고하게 다가왔다. 안무가 안은미는 “할머니들의 춤은 대하소설 같은 역사책이 한순간에 응축해 보여주는 생명의 아름다운 리듬”이라고 설명했다. 커튼콜이 끝난 뒤엔 50여 명의 관객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할머니들의 ‘막춤’에 동참했다. 이날 공연을 본 관객 낸시 로스(73)는 “노인 소외와 삶의 행복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면서 “노인들과 젊은 무용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세대간 소통의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조상님께…’는 지난해 8월 파리여름축제 초청작으로 프랑스 관객을 처음 만났다. 이후 유럽 공연계에선 ‘안은미’ 바람이 불었다. 파리가을축제의 마리 콜랑(65) 예술감독은 “지난해 ‘조상님께…’를 본 뒤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세 작품을 한꺼번에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초청했다. ‘땐스’ 3부작이 구사하는 언어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언어다”라고 말했다. 일간지 르몽드도 가을축제 83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특집 섹션의 표지 기사로 안은미의 ‘땐스’ 3부작을 다루면서 “각 세대의 춤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변화무쌍한 면들을 그려냈다”고 평했다. ‘조상님께…’는 가을축제 이후에도 바쁘다. 다음달 8일부터 22일까지 릴과 보르도 등 프랑스 4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한다. 또 내년 4월엔 스위스의 댄스페스티벌 ‘스텝스’ 초청으로 스위스 4개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스텝스’의 이사벨라 스피리그(53) 예술감독은 ‘조상님께…’ 공연을 보기 위해 27일 파리를 찾았다. 그는 “DVD로만 보고 초청을 결정한 상태였다. 직접 보고 느낀 에너지와 생명력에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10대 청소년 12명이 출연해 각자의 흥과 고민을 춤으로 보여준 ‘사심없는 땐스’도 23∼25일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공연을 마쳤다. 25일 공연을 본 관객 엠마누엘 페랑(45)은 “K팝을 통해 늘 짧은 치마를 입고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한국의 10대들을 봐왔는데 이와는 다른 한국 청소년들의 모습을 알게 돼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40∼60대 중년 남성 12명이 출연하는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는 다음달 2·3일 파리 동남쪽 크레테일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파리=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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