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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이의 지금 이순간

윤소이의 지금 이순간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의 피크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직장을 구하고 남자를 만나 결혼해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나 같은 애를 낳았다 치자. 그것도 쉼 없이. 자유로운 젊음은 그냥 보내면 영원히 못 사는 걸지도 모른다.

tvN 드라마 ‘신분을 숨겨라’ 종방연 다음 날 포털 사이트에 기사가 쏟아졌다.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윤소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SBS 예능 프로그램 ‘썸남썸녀’를 통해 맘 아팠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여자로 사회를 마주하는 일 등 솔직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시청자를 대하던 그녀의 모습도 겹쳐졌다.

늦은 저녁,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윤소이가 밝은 소리로 인사를 했다. “저, 지금이 더 좋아 보이죠?”
 


윤소이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었다. CF 한 편 찍은 신인이던 그녀를 눈여겨본 류승완 감독은 윤소이를 류승범과 함께 무술 소녀로 변신시켰다. 인대가 늘어나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입술을 깨물고 중국 무술을 익힌 뒤 촬영에 임했다. 당시 정두홍 무술 감독은 “홍콩에 양자경이 있다면 한국에는 윤소이가 있다”는 칭찬을 하기도 했다.

영화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윤소이에겐 무술 잘하는 멋진 여자의 이미지가 생겼다. 배우에게 확실한 이미지가 있다는 건 기쁘면서도 한편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 이미지를 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윤소이 역시 그랬다. 데뷔하자마자 대작을 촬영하고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건 참으로 운 좋은 일이었지만, 부지런히 연기하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윤소이를 더 기억했다.

때론 ‘나는 왜 안 될까.’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다. 윤소이의 오랜 노력은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연한 일일 드라마 ‘천상여자’에서 빛을 발했다. 언니의 복수를 위해 악녀가 되길 서슴지 않는 다소 센 여자의 이야기.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높았다. 최근 tvN ‘신분을 숨겨라’를 통해 다시 액션 배우로 돌아온 윤소이가 반가운 건 이젠 그녀가 대중이 원하는 모습과 함께 본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내면 연기도 탄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극비 수사팀의 범죄 소탕을 주제로 한 형사물이란 장르에 출연진은 김범, 박성웅, 이원종, 김태훈 등 모두 다 남자 배우다. 그래서 액션 장면에서 모두 남자들과 합을 맞춰야 했다. “여자니까 그거밖에 못한다는 말을 듣기는 죽기보다 싫었어요. 여형사가 여린 모습이면 시청자들도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요. 대신 여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은 내려두었죠”라고 담백하게 말하는 윤소이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은 게 기자뿐만은 아닐 것 같다. 자신감에 차 있는 윤소이는 지금, 물이 오른 여배우임이 분명하다.

“제가 로코 퀸은 아니잖아요?” 지금 윤소이는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픔과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로맨틱 코미디 속 여주인공의 이미지는 아니다. 대신 똑 부러지게 연기하고 자기 내면을 드러낼 줄 아는 당당함을 지녔다. 대역을 쓰지 않고 액션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 여배우다. 만나보면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지독한 노력파다. 그렇지만 입바른 소리도 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다. TV에서 보기 힘든, 빤하지 않아서 매력적인 그런 여배우 말이다.
 


Q : 작년부터 출연한 드라마가 연달아 성공이네요 작년 5월에 ‘천상여자’를 끝내고, 작년 말에 ‘어떤 살인’이란 영화를 하나 찍었어요. ‘신분을 숨겨라’는 지난 4월부터 찍었으니까 짧고 강렬하게 촬영했죠. 남몰래 수사하는 팀의 홍일점 형사 역할이다 보니 극 중에서 매회 다른 인물로 변장했어요. 한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기분이라 촬영장에 갈 때마다 설레었어요. 시청률도 꽤 괜찮게 나온 편이고요.

Q : 주변에서도 호응이 좋았겠어요 저희 어머니가 지금까지 보신 제 드라마 중에 1위는 ‘천상여자’, 2위가 ‘신분을 숨겨라’일 거예요. 재밌게 보셨대요. 가끔은 어머니가 그러세요. 공감하기 힘든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는 제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도 잠들 때가 있다고요(웃음).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을 다루고 전개가 빨라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얻었어요.

Q : ‘신분을 숨겨라’의 장민주 역할이 참 잘 어울렸어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도 ‘아라한 장풍대작전’ 때의 이미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오랜만에 제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어요. 액션 영화로 데뷔했고 그 이미지가 강렬해서 언젠가부터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보단 액션 위주의 중성적인 캐릭터 섭외가 많았어요. 배우는 늘 새로운 역할을 맡고 이미지에도 다른 색을 입혀야 한다고들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당시엔 슬럼프를 겪었던 것 같아요. 어떤 연기를 해야 할까 방황하고 있을 때 어떤 선배가 제게 그러더군요. 배우가 대중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연기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그 분야에서 제가 사랑받고 있다는 거라고요. ‘아차’ 싶었어요. 망설이는 사이에 잘 쌓아온 제 이미지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요.

Q : 홍일점으로 출연했는데, 배우들하고 호흡은 잘 맞았나요 데뷔하고 지금까지 20편의 작품을 했는데 이런 배우, 이런 스태프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박성웅씨는 10년 전에 찍었던 영화 ‘무영검’에 함께 출연했어요. 이원종 선배님은 5년 전에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 만났었고, 스태프들은 OCN 인기 드라마였던 ‘나쁜 녀석들’ 팀이었어요. 현장 호흡이 정말 좋았죠. 16부작이었는데 김범, 박성웅, 이원종 등 모두 다 남자 배우라 에너지가 대단했어요. 나만 홍일점인데도 예쁘다는 말을 못 들었다는 게 흠(웃음)?

Q : 액션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워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맞아요. 액션 연기는 잘못하면 손발 모두 어색해지죠. 운동이랑은 다른 개념이에요. 여자로서 예뻐 보이려고 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해요. 바로 어색해지거든요. 무협이나 판타지는 과장된 액션을 많이 하지만, 제가 찍었던 ‘아이리스2’나 ‘신분의 숨겨라’ 같은 경우는 리얼리즘 액션을 많이 해요. 때리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펀치를 맞아야 해요. 부상이 생기기 쉽죠. 다행히 ‘신분을 숨겨라’에서는 멍 몇 개 든 거 빼고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요.

Q :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요 매니저에게 액션 연기하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해요. 드라마는 보통 하루에 20시간 이상 대기하고 찍어야 하는데,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래도 액션 연기를 할 때만큼은 희한하게 펄펄 날아요. 평소 저질 체력에 운동도 싫어하는 제가 말이죠. 물론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들죠. 저도 이번 드라마 하면서 5kg 가까이 빠졌어요.

Q :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했잖아요. ‘썸남썸녀’ 할 땐 어땠나요 제 개인적인 바람이던 소개팅 한 남자들이랑 실제로 이어지진 않았지만(웃음) 함께 출연했던 채정안 언니, 채연 언니랑은 워낙 친한 사이라 어려움 같은 건 없었어요. 채정안 언니랑은 소속사가 같았고요. 알고 지낸 지 15년쯤 됐을 거예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봤어요. 부모님, 가정사, 남자 친구 이야기 등 언제든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죠. 그래서 ‘썸남썸녀’ 촬영하면서 여자들끼리는 방송에는 나가지 못한, 19금 수다를 떨기도 했어요. 물론 편집됐지만….

Q : 19금 이야기라면… 다 남자 이야기죠. 아시면서…(웃음).
 
윤소이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 선과 필체가 아마추어 같지 않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 배우란 직업은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관점에선 세상에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아트 작업과도 가깝다.


Q : 배우에게는 충전의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뭘 하나요 저 요즘 그림 그려요. 일러스트에 가깝긴 한데, 미술 선생님이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셨어요. 남들과 달리 생각이 독특하다고요. 연기 외에도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그림이 그 첫 번째고요. 열심히 그린 그림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려두었어요.

Q :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한다고 들었어요 SBS 희망 TV에 출연하면서 아프리카에 몇 번 다녀왔어요. 여덟 살 아이였어요. 두 살 때부터 비타민 부족으로 눈 주위에 살이 차올라서 앞이 안 보이게 된 거예요. 우리나라 돈으로 4만원이면 개안 수술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돈이 없어서 6년을 암흑 속에 산 거예요. 아프리카에서 구루병 걸린 아이들을 치료하는 백신 하나가 180원이래요. 그 이후부터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 빨간 연고 보내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아주 작게, 개안 수술이 필요한 국내 아이들에게 보낼 모금도 하고 있고요. ‘더 호프(the hope)’라고 업계 친구들, 아는 언니들과 함께 8명이 만든 작은 나눔 모임이에요. 1년에 한두 번 자선 바자회를 여는데, 그 수익금을 연대 세브란스병원 안과에 기부해 국내 아이들을 상대로 개안 수술을 해주고 있어요.

Q : 남을 돕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글쎄요. 저도 어릴 때 가난했거든요. 햇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요. 정말 먹고 싶은 거 못 먹었던 기억도 있어요.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삶이 달라질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제 어린 시절 기억도 나고…. 지금도 제가 부유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Q : 나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죠 그럼요. 저, 편지도 받았어요. 지누션의 션 오빠가 물물 교환 기부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500원짜리 생수병 하나로 시작해 계속해서 물물 교환을 통해 기부의 물건을 키워나가는 방법이에요. 저는 녹차 티백 하나로 물물 교환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명품 가방까지 가지게 됐죠. 제가 시작한 물물 교환의 목표는 100만원 정도였는데, 나중엔 1300만원어치의 물건을 받게 된 거예요. 이 물물 교환 기부 방법은 마지막에 가지게 된 물건을 팔거나 물건의 값어치만큼 제가 돈을 내는 거예요. 그 돈은 연대 세브란스병원을 통해 희소병 어린이를 돕는 데 사용했어요. 이건 저 혼자 기부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익명으로 기부했어요. 물물 교환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이 다 도와주신 거죠. 그런데 기부 과정을 전반적으로 맡아주신 사회복지사분을 통해 희소병 어린이 보호자께서 편지를 보내주셔서 감동의 손편지를 받았어요.

Q : 마지막 질문이에요. 배우로서의 꿈이 있고, 여자 윤소이로서의 꿈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목표가 같아요. 행복하게 연기하는 배우, 내가 행복한 사람. 삶의 한순간이 늘 행복한 배우. 뭐든 신나서 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 오랫동안 사랑받고 싶어요. 한순간에 고갈되지 않는 신선한 이미지로 찾아뵐게요. 남자도 만나고 시집도 가고 애도 낳으면 더 좋겠죠?

Q : 결혼 발표는 여성중앙을 통해서 하는 거죠 그럼요. 매니저 어딨지? (매니저에게) 누나 결혼할 때 여성중앙에 제일 먼저 연락드려. 웨딩 마치 울리게 되면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




기획=조유미 사진=김외밀(청년사진관)
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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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