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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만 득표해도 당선되는 선거, 불복 정치문화 키운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다음달 13일까지 내년 총선의 선거구를 최종 확정한다. 지금까지 논의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지역구 수는 현재(246석)와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못 박고 있어 비례대표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치개혁 카드는 투표제도 개혁이다. 한국 유권자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행 단순다수제 방식의 투표제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제도일까. 외국으로 눈을 돌리면 같은 다수제지만 한국과 다른 독특한 방식이 적잖다. 중앙SUNDAY가 해외의 다양한 투표제도를 통해 단순다수제의 명암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지난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부산에서 49.88%(지역구 투표 기준)의 표를 받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부산 지역 18개 선거구에서 차지한 의석은 16개. 반면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34.6%를 얻었지만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민주통합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11%) 간 격차는 24%포인트에 달했다.


같은 선거에서 광주 동구에 무소속 출마한 박주선 후보는 31.6%의 지지로 당선됐다. 투표자 4만8715명 중 3만3343명이 던진 표는 사표(死票)가 됐다. 박 후보는 투표자 10명 중 3명의 지지로 지역을 대표하게 된 셈이다.


이는 한국에서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엔 ‘단순다수제’라는 선거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단순다수제는 ‘상대다수제’라고도 불린다. 유권자의 절대 다수(과반수)가 아니라 다른 어느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1표라도 많으면 당선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제를 섞은 ‘혼합형 선거제도’다. 하지만 전체 의석의 6분의 5가 단순다수제로 뽑히는 지역구 의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단순다수제 선거라 할 수 있다.


단순다수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이름 그대로 ‘단순함’에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반장 선거에 적용될 정도로 방법이 간단하고 알기 쉽다. 승자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도 장점이다.


 


신생 국가들 비례대표·혼합형 채택 단순다수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선거제도다. 현재 영국과 미국·캐나다·인도 등 과거 영국 식민지에서 많이 실시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신생 자유민주주의 국가 거의 대다수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 혼합형 선거제도를 선택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다수제 국가였던 뉴질랜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90년대 각각 독일식 혼합형 선거제도와 정당명부식 비례제로 제도를 바꿨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대규모 사표가 발생하고 당선자의 대표성이 약한 것이 가장 먼저 지적된다. 96년 15대 총선 당시 경북 청도군에서 김종학(자유민주연합) 후보는 24.2% 득표만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지역민 4명 중 3명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지역의 대표가 된 셈이다.


아일랜드 더블린대 데이비드 파렐 교수는 저서 『선거제도의 이해』를 통해 “과반에 못 미치는 당선자가 많다는 건 선거 결과가 승자와 패자를 확정해 주지 못했음을 뜻하며, 정치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낙선 후보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당선자를 인정하지 않는 ‘불복의 정치문화’가 되풀이됐던 것도 바로 이런 제도적 문제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다수제 옹호론자들은 이 제도를 줄곧 시행해 온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내세운다. 두 나라가 이 제도를 통해 안정된 정국 속에서 점진적 정치 발전을 이룩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다수제가 거대 양당이나 지역 기반 정당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기반을 가진 자유민주당(당시 자유당·사회민주당 연합)은 83년 총선에서 4분의 1이 넘는 25.4%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고작 3.5%의 의석만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만큼의 차이는 거대 양당인 보수·노동당이 차지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단순다수제 아래에선 극단적인 성향의 군소 정당이 세력을 얻어 정부를 흔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그만큼 신진세력이나 제3당의 의회 진출이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투표와 선거 결과 간 비(非)비례성과, 의회가 다양한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는 점 등도 단순다수제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회 갈등의 양상이 남북 갈등처럼 한 가지 차원으로만 양분된다면 상관없겠지만 환경문제 등 다양한 관심을 반영하려면 단순다수제가 부적절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87년 대선 이후 정치행태 달라져” 단순다수제가 한국의 정치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87년 대선은 단순다수제 아래서 어떤 전략적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에게 엄청난 교훈을 줬다”고 지적했다. 당시 4명의 주요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는 36%의 득표만으로 당선됐다. 이후 여야 정치권은 3당 합당이나 후보 단일화처럼 선거 이전에 상대적 다수를 확보하려는 인위적 책략에 집중하게 됐다. “유권자들도 자신이 진심으로 선호하는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차선 후보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한국에서도 학계를 중심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우선 제시되는 방안은 비례대표제로의 전면적 전환이나 비례대표 비중을 늘려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는 외국 대부분의 사례를 보면 각 정당이 내놓은 후보자 명부를 보고 정당에 투표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내 선거구의 대표’가 딱히 존재하지 않아 지역의 대표자를 뽑고자 하는 한국 유권자들의 정서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잖다.


현행 다수대표제를 유지할 경우 이를 보완할 만한 대안 중 하나는 ‘절대다수제’다. 총 투표의 과반을 득표해야만 당선되는 제도다. 프랑스는 의회와 대통령 선거에서 1차 투표 때 과반을 차지한 후보가 없으면 일정 기간 후 2차 결선투표를 실시해 당선자를 가린다. 브라질과 핀란드·오스트리아·칠레·러시아 등과 말리·모잠비크 등 과거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나라에서 실시한다. 한국에서도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가 맞붙은 97년 대선 때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면 15대 대통령이 바뀌었을 거란 분석이 많다.


또 다른 방식의 절대다수제는 호주에서 실시하는 ‘대안투표제(선호투표제)’다. 호주 총선에서 유권자는 투표용지의 각 후보자 이름 옆 네모 칸에 선호하는 순위를 숫자로 적는다. 5명이 출마했다면 가장 선호하는 후보 순으로 1에서 5까지 표시한다. 개표 땐 가장 적은 1순위 표를 얻은 후보가 우선 탈락하고 그가 받은 표는 2순위로 찍은 다른 후보에게 이월된다. 이런 식으로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최소 득표자를 한 명씩 탈락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호주의 영향을 받은 나우루·파푸아뉴기니·피지 등 오세아니아 국가들도 우선순위나 차등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돌풍’을 일으켰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국민참여경선 때 이 방식을 사용한 바 있다.


 


단기이양제, 대안·연기투표제까지 이 두 제도는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당선자에게 강한 대표성을 부여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처럼 거대 정당에 유리하고 군소 정당에 불리한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프랑스식 절대다수제의 경우 두 번 투표를 치러야 하는 번거로움과 선거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다. 대안투표제는 모나지 않고 폭넓은 유권자에게 인기 있는 후보가 당선하기 쉽다.


아일랜드는 중대선거구제와 대안투표제를 결합한 방식인 ‘단기이양(單記移讓)제’를 채택하고 있다. 표 산정 방식이 매우 복잡해 결과가 나오는 데 최고 몇 주까지 소요될 때가 있는 데다 투표용지에 각 당의 수많은 후보를 모두 표기해야 하기 때문에 길이가 1m가 넘는 경우까지 있다.


케이맨 제도와 쿠웨이트·라오스 등은 단순다수제지만 여러 명을 뽑는 선거구에서 선출될 당선자 수만큼의 표를 행사하는 ‘연기(連記)투표제’를 실시한다. 5명을 뽑는 선거구라면 유권자 1명이 5표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도 일리노이주 하원선거에서 80년까지 ‘누적투표제’를 실시했었다. 연기투표제와 비슷하지만 한 후보에게 자신이 가진 표를 모두 몰아줄 수 있어 선호의 강도까지 나타낼 수 있는 제도다.


한국에서 적용해볼 만한 방식으로 ‘보완투표제’를 꼽는 학자도 많다. 투표의 간편함에 대표성 부족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각 후보 이름 옆에 ‘제1선호’와 ‘제2선호’만을 표시한다. 제1선호 투표에서 3위 이하 후보는 배제된다. 이후 제외된 후보들의 제2선호 표를 1·2위 후보에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안순철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선투표를 하지 않으면서도 결선투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국 국민은 어려서부터 공·사적으로 각종 선거를 치르며 단순다수제의 관성 속에서 살아왔다. 정치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시 단순다수제 선거로 뽑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모임의 목적과 성격을 감안해 대표자 선택 방법을 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충형·추인영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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