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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에게 끌려간 우리 삼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요”

김동호



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81) 할아버지는 촬영팀을 누워서 맞이했다. 눈가가 움푹 파일 정도로 몸이 마른 김 할아버지는 옆으로 돌아누워 카메라를 응시했다. 병약한 몸에도 촬영팀과의 의사소통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삼촌과 헤어지던 그날을 회상했다.



병상서 삼촌 찾는 김동호 할아버지

1934년생인 김 할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오암리다. 할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이던 해 인민군(북한군)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당시 삼촌은 중학교 4학년이었다. 인민군은 학생들을 소년단으로 끌고 갔다. 삼촌도 그중 한 명이었다. 오전에 나갔던 삼촌은 그날 오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영영 소식이 끊겼다.



김 할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삼촌을 형처럼 따랐다. 삼촌 덕분에 농업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삼촌이 소년단으로 끌려간 이후 혼자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곧 피란길에 오른 김 할아버지는 진해에 도착해 군에 입대했다. 삼촌과 조카가 서로 총부리를 겨눌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됐다. 전쟁이 초래한 기가 막힌 비극이다.



“삼촌이 너무 불쌍해요. 결혼도 못하고 그렇게 갔으니. 너무 불쌍합니다.” 팔순이 넘은 조카는 어린 나이에 인민군에게 끌려간 삼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자기 몸도 성치 않은 상황이지만 삼촌을 걱정하는 마음은 지금껏 늘 한결같았다.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그렇듯 아직 삼촌의 생사조차 모른다.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삼촌, 살아계시면 꼭 좀 연락 주세요.”



김 할아버지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당시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랑하는 삼촌을 끌고 간 인민군에 대한 미움, 국군으로서 인민군과 맞서 싸울 때 그 속에 삼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복잡한 심정을 단 몇 분의 영상 촬영으로 모두 토해내지 못한 듯했다. 할아버지는 이내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그리운 삼촌을 떠올렸다.



김 할아버지는 떠나는 촬영팀에게 연신 “고생한다” “정말 고맙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촬영팀은 그런 김 할아버지에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촬영팀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준호 인턴기자 jdoldol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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