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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여인 탕웨이가 손짓하는 가을 부산

김태용 감독의 2011년작 영화 ‘만추’. 현빈·탕웨이가 주연을 맡았다.


하늘이 참 곱다. 가을 향기 맡아 볼 생각에 창문을 연다. 가슴이 시원하다. 덤으로 눈까지 황홀해 진다. 파란 하늘 아래 축제를 알리는 붉은 깃발들이 연신 펄럭인다. 도로 위에도 카르멘처럼 농염한 레드 카펫이 깔렸다. 올해로 스무 살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과 부산 영화의전당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며칠 전부터 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분주하다. 하룻밤 자고 나면 무언가 하나씩 생긴다. 꽤 익숙한 풍경인데도 요맘 때가 되면 괜히 설렌다. 축제의 붉은 휘장들과 대형 영화포스터들에 나는 조건반사를 일으킨다.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축제 덕에 덩달아 침샘이 자극된다.


좋은 영화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은 부산국제영화제. 그 중 사람들의 이목이 가장 집중되는 곳은 개막식날 레드 카펫 행사다. 올해 개막식의 여신은 4~50대들에게 ‘책받침 3대 여신’으로 기억되는 소피 마르소 아닐까 싶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녀지만 중년이 된 한국 남성 팬들에겐 여전히 ‘라 붐’의 소녀 소피 마르소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개인적으로 영화제의 진짜 여신은 탕웨이라고 우기고 싶다. 딱히 근거를 대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세계적인 배우 중 부산국제영화제를 가장 많이 찾았다는 것, 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본 적도 있고 그녀와 한 집을 쓰는 사람이 한국인 감독이라는 것. 그 정도면 충분치 않을까.


 

시사회장의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왼쪽).


탕웨이와 김태용 감독을 이어준 영화가 2011년에 개봉한 ‘만추’다. 이만희 감독의 66년 작품을 재해석해 낸 작품이다. 조금 연배가 있는 영화팬이라면 김수용 감독이 정동환, 김혜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81년 ‘만추’도 기억하실 것이다. 김태용 감독은 공간을 미국 시애틀로 옮겼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한국 이민자와 가석방된 중국계 미국인이 주인공이다. 상처 입은 두 이방인의 하루 동안의 만남, 그리고 긴 이별. 이것이 영화적 시간의 전부다. 감독은 ‘서로가 마음을 여는 순간’이라는 선물 같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도 제목만큼이나 이 가을에 어울리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만추’의 음악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만약 당신이 아직 이 OST를 듣지 않았다면…” 이라고 말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영화를 보다가 음악이 귀에 자꾸 들어오면 머뭇거리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매장에 달려가서 사운드트랙을 산다.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기억하는데 이만한 것도 없다. 이정재·이미숙 주연의 99년 영화 ‘정사’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음악 감독의 정체가 궁금했다. ‘카니발의 아침’과 메르세데스 소사 등의 남미음악을 영화 속에 이다지도 잘 녹여낸 사람은 그 전에 없었다. 그가 바로 조성우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인어공주’ 등의 음악을 맡았다. ‘만추’도 그의 작품이다.


영화에서는 회색빛 가을을 배경으로 탱고가 자주 사용된다. 전면에 탱고 음악이 들리는 곡도 있지만 리듬이 배면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탱고는 거리, 즉 간극의 음악이다. 현란한 스텝과 농염한 접촉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밀고 당김을 통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탱고다. 특히 느린 탱고의 경우 닿을 듯 닿지 않는 애잔함이 음악 전체를 지배한다. 영화음악 잘 쓰기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 역시 ‘춘광사설’에서 이국 땅에 떨어진 외로운 두 영혼의 긴장감을 잡아내기 위해 피아졸라의 탱고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만추’에서는 그룹 라 벤타나가 현과 애나의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의 징후를 탱고 무드로 전한다. OST를 틀면 초반부에 인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음악이 아코디언으로 시작하는 ‘낯선 남자’라는 곡이다. 퓨전 재즈 스타일이다. 여행을 떠나는 기타 반주에 아코디언이 물 위로 미끄러진다. 이어서 피아노가 그 길을 따라 잡는다. 노스탤지어를 닮은 아코디언의 음색과 다른 악기들의 유영이 매력적이다. 현과 애나가 탄 버스가 어둠을 달려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에 도착할 때 흐르는 음악은 매우 인상적이다. ‘동행’이다. 나일론 기타로 연주되는 단순한 곡이다. 그런데 한 번 들으면 반드시 서너 번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우울증은 매력 없는 멜랑콜리라고도 하지만 이 음악은 너무 매혹적이어서 도저히 우울할 수가 없다. 강물로 사라지는 빗방울이 남긴 파문과도 같은 기타 선율 때문이다.


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놀이동산에서의 판타지다. 남녀가 놀이동산에서 연극하는 이들을 보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 이어 등장한다. 영화는 무언극 형태의 동화적인 연출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때 흐르는 음악들은 왠지 익숙하다. ‘시네마천국’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몇몇 장면들이 연상된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통해 자극했던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향수가 조성우를 통해 재현되는 셈이다. 매혹적이다. 여주인공 탕웨이의 노래도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온다. CD에는 누락되었는데 LP재발매에서는 수록되었다고 한다.


가을 밤, 푸른 바다를 옆에 두고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는 기획자들이 일년 내내 발품 팔며 준비한 좋은 영화들과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멋진 배우들이 함께 할 것이다. 혹시 남포동이나 해운대의 커피숍에서 여신 탕웨이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엄상준 KNN방송 PD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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