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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정책, 나쁜 정책

기자
김종윤 사진 김종윤
지난 22일 동반성장위원회는 36차 회의를 열고 문구류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대형마트에서 연필·연습장·지우개 등 18개 학용품을 낱개로 팔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신 묶음 단위로만 팔 수 있다. 학용품을 묶음 단위로 왕창 사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사실상 대형마트 문구류 영업제한이다. 동네 문구점을 보호해 동반 성장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비아냥이 바로 튀어나왔다. 요즘은 생활용품 전문점에서도 문구류를 판다. 문구점 보호보다는 생활용품점 배만 불릴 것이라는 냉소다. 문구점 없는 동네에서는 어떻게 하느냐는 불평도 있다. 문구류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돼 동네 문구점이 번창해 간다면 그 정도 불편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 착한 소비자가 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건 희망고문일 뿐이다. 오히려 소비자는 피해를 볼 것이다. 큰 경쟁자가 없어졌으니 동네 문구점의 가격은 올라가고,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커서다.



에디터 칼럼

약자를 보호하자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식이 문제다. 무조건 감싸고 돈다고 보호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보호보다는 육성이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게 효과적인 보호책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겉으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의해 결정하고 권고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3년 간 대기업은 이 분야에서 사업 철수 또는 확장 제한을 권고받는다. 말이 권고지 실질적으로는 강제다. 권고대로 대기업이 이행하지 않으면 동반성장위는 직권으로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할 수 있다. 사업조정 결과는 강제성이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이 보호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다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이전에 적용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예측할 수 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1979년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했다가 2006년 12월 폐지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펴낸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에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중소사업체(5인 이상 300인 미만)의 노동생산성은 11.0%, 근로자 수는 9.4% 늘었다. 1인당 임금도 2.6%, 자본투입도 13.1% 증가했다. 고유업종 제도를 없애자 중소기업 경쟁력이 높아진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울타리 밖 황야에 던져지자 기업들은 살기 위해 품질과 서비스를 개선했다. 혁신을 게을리한 기업은 도태됐다. 좀비 기업이 사라지자 새 살이 돋았다. 좋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었다. 일자리가 생겼다.



반면에 고유업종 제도가 한창 시행되던 1996~2001년까지 총 수입에서 고유업종 대상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22.9%나 늘었다. 대기업이 빠진 자리를 수입품이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외국기업에 중소기업 고유업종 규제를 적용할 순 없다.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논란이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게 조명 완제품이다. 2012년 조명 완제품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지난 3년 간 국내 중소기업의 시장점유율은 72%에서 69%로 떨어졌다. 대신 필립스·오스람 같은 외국 기업이 시장을 차지했다. 그러자 동반성장위는 올 1월 조명기구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했다. 병 주고 약 주고다.



이런 마당에 정치권에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를 법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협의가 불발되면 정부가 적합업종을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울타리는 기업을 강하게 만들 지 못한다. 울타리 때문에 소비자들은 피해를 본다. 착한 정책은 나쁜 정책이다.



 



김종윤경제산업 에디터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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