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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역사학자는 ‘민족 우수성’ 외칠 시간에 진실 캔다

이이화 선생의 장모는 처음엔 결혼에 반대했다. 그러다 TV와 신문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내 사위다” 며 동네에 자랑하셨다고 한다. 김춘식 기자


“나는 50년이 넘게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해 왔습니다. 우리 역사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연구하면 할수록 깊이와 넓이, 가치와 교훈이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이화·한국사 이야기』(한길사) 개정판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22권과 별책(용어·연표 사전)으로 구성됐다. 민족의 형성부터 해방 직전 상황까지를 다루며 우리 역사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이야기체 서술로 대중의 ‘역사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50만 부가 팔린 이 국사 총서의 저자 이이화(78) 선생을 만나 우리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개정판의 강조점은.“큰 초점은 두 가지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더 심한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수정을 가했다.”


-무엇을 수정했는가.“초판이 나온 후 부족한 부분은 계속 많이 고쳤다. 연도가 틀린 경우도 있었고,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가끔 한문 문헌을 오독한 것도 있다. 예컨대 신숙주 부인의 사망 연도와 관련된 서술이 잘못됐다. 문중에서 연락이 왔다. 실수가 있었다고 사과했다. 큰 틀에서 보면 신숙주를 민족문화에 기여한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그렸으니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 책이 해방이후사를 안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 후학들이 나보다 이 시기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역사 청산이 가능한가. 역사는 스스로 청산되는 것은 아닌가.“친일파 후손들이 선대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면 된다. 반성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려고 시도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선생은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가.“세 가지 방향에서 비판이 들어온다. 첫째로 고대사와 관련됐다. 나를 역적 취급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내 입장은 과학적인 역사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것과 같은 억설은 배제해야 한다. 둘째로 나를 ‘좌빨’이라고 한다. 절대 아니다. 나는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다. 나를 좌파·진보·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한다면 다 틀린 것이다. 나는 중도라기보다는 우리 역사에 대해 과학적인 입장에서 한국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이다. 셋째로 ‘이이화는 이론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아니다. 모든 이론을 섭렵했다. 이론적인 논쟁에서 모두 이겼다고 생각한다. 사학 이론을 우리 역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항상 고민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역사는 현실이다. 역사는 절대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학이 권력, 경제학은 재화와 용역을 다룬다면 역사학은 무엇을 다루는가.“역사는 정신을 다루는 학문이다. 역사학은 민족·민중·생활 문제를 종합해 다루는 학문이다.”


-공저를 포함해 100권을 집필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저술은.“『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10여 년에 걸쳐 썼기 때문에 가장 애착이 간다.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만화 한국사』는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사실 어린이 팬이 굉장히 많다. 역사 대중화를 어린이 독자들에게까지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허균의 생각』『전봉준, 혁명의 기록』도 열심히 쓴 책이다.”


-역사의 실제를 움직이는 주체는 엘리트인가 민중인가.“옛날에도 왕, 권력자가 역사를 움직였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중 또한 끊임없이 싸우며 역사를 만들어 갔다. 대칭적으로 봐야 한다. 민중은 역사의 상수다. 민중이 ‘필요한 때’만 나온 것이 아니다.”


-박제상의 경우를 보면 “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했다. 눌지왕의 개, 돼지라거나 왜왕의 신하라고 하지 않았다. 원형적 민족주의가 신라에도 있었던 셈인가.“민족주의의 기원을 유럽의 근대에서 찾는 것은 서구의 입장이다. 우리는 고구려 시대부터 민족 문제가 일어났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서구의 것과 다르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생존의 민족주의’였다.”


-『삼국유사』는 역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나 역사책은 아니다라는 내용이 총서에 나온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있겠다.“『삼국유사』는 불교 문헌이다. 일본의 『서기』와 유사하게 신화적이다. 삼국사기는 사실적으로 썼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거세다.“지금은 국정교과서가 북한·러시아·베트남 등 공산주의나 독재 사회에서만 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지금 교육부·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무리하고 있다. 위의 눈치를 보고 있다. 담당 교육공무원까지 임명했다. 나는 소위 ‘좌빨’이 아니라 철저한 민주주의자로서 앞으로 반대에 앞장서겠다.”


-나 이이화는 한마디로 뭐다 하고 정의한다면.“역사학자로서 진실을 찾는 사람이다.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 같은 헛소리일랑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인류는 같은 인간으로서 똑같이 살아야 한다. 이이화는 또 반절은 역사책을 쓰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반절은 현실 속에서 역사 운동가다. 나는 역사를 위한 투쟁도 병행할 것이다.”


-어렸을 때 ‘생각이 삐딱하다’는 평가를 들었다는데 지금은.“지금도 삐딱하다. 약간은 유명 인사라 불러주는 데가 많지만 싫은 데는 안 간다.”


-선생을 ‘재야 사학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재야’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마치 내가 이병도 사학에 반대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나는 교수가 안 됐을 뿐이지 강단 사학과 정면 대결한 것도 아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 어느 쪽이든 엉터리 주장에는 반대한다.”


-선생의 개인사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아버지·할아버지 고향은 김천이다. 김천 말씨는 특이하다. 경상남도도 북도도 아니다. 김천에 살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은 끝까지 김천에 있는 호적을 안 옮겼다. 군대 영장도 김천으로 나왔다. 나는 신상에 대해 거짓말한 적이 없다. 서자라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은 한학, 특히 주역의 대가였다. 아버지에겐 6·25를 예언했다, 축지법을 썼다는 등의 ‘신화’가 있다. 나를 가르치실 때 배운 것을 다 외워야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줬다. 못 외우면 곰방대로 혹독하게 팼다. 피가 나도 닦지 말아야 했다. 닦으면 더 때리셨다. 그렇게 배운 한문 실력 덕분에 평생 풀어먹고 있다.


어렸을 때엔 천재라고 소문이 났다. 어머니 머릿속에는 면장이 최고였기에 아들이 면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주고등학교 들어갈 때는 20등 안에 들었는데··· 문학 활동에 열중한 데다 수학을 너무 못해 100등까지 떨어졌다.”


-선생은 천재인가.“아니다. 요즘은 지식·정보량이 많아 천재가 구조적으로 나올 수 없다.”


-역사 운동가로서 독자들에게 꼭 하실 말씀이 있다면.“가짜가 아닌 진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통일국가로 가려면 대화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미국·중국 등 강대국에 휘둘리는 ‘화약고’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인가.”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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