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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재산 줬는데 밥도 안 주는 딸, 어떡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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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에 백발, 카랑카랑한 목소리, 나이(83)보다 훨씬 건장해 보이는 체격…. 지난달 24일 국회 토론회에 등장한 발표자는 경기도에 사는 김 노인이다. 이날 행사는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과 대한노인회가 공동 주최한 ‘상속만 받고 노인 학대? 불효자 방지법’ 토론회였다.

불효자 방지법 허와 실
“부모 학대 땐 받은 재산 반환?
지난 3일 발의 … 국회 통과 앞둬
“부자 간 연 끊기고 세대 갈등 심화”
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만만찮아
“집·땅 다 넘기고 생활비 받기보다
역모기지 이용, 연금 받는 게 현명”


 “둘째 딸이 집을 사서 같이 살자고 했어요. 그러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겠다고 했어요. 6000만원을 주고 나니 밥도 안 주고 어떤 때는 문을 잠가버렸어요. 아들한테 갔더니 ‘내가 큰아들인데 왜 안 주느냐’고 쫓아냈습니다. 안 나간다고 폭언과 폭행을 했어요.”

 김씨는 15분가량 자녀들의 ‘패륜행위’를 성토했다. 얼마나 북받치면 공개 장소에 나왔을까. 18일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사기가 아니냐”며 20분가량 분노를 쏟아냈다. 김씨는 평생 모은 6000만원을 딸이 아파트 사는 데 보탰다. 딸 부부는 아버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들은 “왜 상의하지 않고 누나에게 돈을 줬느냐. 내가 받을 권리가 있다”며 폭행을 일삼았다. 두 달간 쉼터에서 지내다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고 지금은 월 10만원짜리 방을 얻어 산다. 생활비가 없어 병원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고 한다. 김씨는 딸을 상대로 6000만원 반환소송을 낸 상태다.

 민 의원 측은 김씨 자녀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민법개정안을 지난 3일 발의했다. <중앙일보 8월 31일자 1, 7면> 소위 ‘불효자 방지법’이다. 부모 학대나 그 밖에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 등이 있으면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게 했다. 지금은 이미 증여한 재산은 돌려받을 길이 거의 없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미 쓴 재산까지 토해 내야 한다. 월급도 압류할 수 있다. 민 의원은 “증여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자식이 배신하고 망은 행위를 하는데도 증여를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2002년만 해도 국민 10명 중 7명은 자녀가 노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여겼으나 지난해는 약 4명으로 줄었다. 김삼화 변호사는 “종전엔 물려받을 재산이 없어도 부모 부양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요즘은 안 모시려 한다. 노후 보장을 위해 불효자 방지법의 취지가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녀 부양 의식이 엷어지고 노인 학대가 증가하는 분위기를 타고 불효자 방지법은 인기 법안에 올라섰다.

 부양을 전제로 재산을 넘겨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 할머니(84)의 아들(61)은 2012년 정년퇴직 후 도시생활을 접고 농사를 짓겠다며 낙향했다. 아들은 “아프면 병원에 잘 데려가고 밥을 챙기겠다. 제사를 잘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할머니는 집과 임야를 넘겼다. 그러자 아들은 돌변했다. 신발과 막대기로 어머니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 아무도 모르는 데에 갖다 버리겠다”고 폭언을 했다. 할머니는 집을 나와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노인들이 자녀에게 재산을 먼저 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부모의 재산을 바라는 자식이 자식이냐. 재산을 갖고 있다가 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끝까지 보유’의 근거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인천 송도의 한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4형제가 거의 매일 방문하다 재산을 나눠주고 나니까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또 서울 강남의 할머니가 딸들한테 월 2000만원 임대료를 받는 빌딩을 넘기고 아들한테 20억원짜리 집을 줬더니 딸들이 소송을 걸었고, 할머니가 화병으로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이현민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부장도 “지난해 노인학대로 신고된 5772건 중 경제적 학대가 521건이었다”며 “노인의 독립성 유지와 학대 예방 차원에서 재산을 계속 보유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효자식 방지법에 대한 젊은 층의 생각은 다르다. 김민경(24·여)씨는 “부모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은 의무나 책임이 아니다. 사회에 환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불효자식 방지법은 너무 사적인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며 이미 준 재산을 되찾으면 부자 간의 연이 끊기는 부작용이 생기고 세대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호(23)씨는 “재산 증여는 부모의 뜻밖의 호의의 선물인데 호의가 사라졌다고 되찾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불효자식 방지법이 생기면 부모는 자식이 잘 하는지 못 하는지 평가하게 되고 자식도 (효를) 의무이자 부담으로 느끼게 돼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재(26)씨는 “법으로 효와 불효를 규정할 수 없다”며 불효자식 방지법에 반대의견을 냈다.

 김유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역모기지(주택연금)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9억원 이하 집을 잡히고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연금처럼 받는 제도다. 김 박사는 “가족회의에서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택연금 가입에 대해 자녀 동의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직 공무원 김도환(70·서울 마포구)씨는 2008년부터 매달 80만원의 주택연금을 받는다. 김씨는 “주택연금에 들면 자식들한테 부양 부담이 덜 간다고 설명했고 애들이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한 해에 5000명 이상이 가입하고 있고, 올 1~6월 전년보다 가입자가 24% 늘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다혜 ·김정희(고려대 영문학과·사회학과) 인턴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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